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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둘희 Apr 24. 2024

12. 병들어 가는 우리 가족.

폐인이 되어버린 나 때문에.


남자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재산 또는 최악의 재산은 바로 그의 아내이다 - 토마스 풀러


집으로 다시 돌아온지 얼마나 지났을까?

앞전에 남편과 몸싸움으로 경찰서에 사건접수를 했었기에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고, 날짜에 맞춰 사건진술을 위하여 경찰서에 출석을 하게 됐다.


날 담당했던 수사관은 여자분이셨다.


그 분은 컴퓨터 모니터만 응시하며 딱딱하고 굉장히 사무적인 어투로 그날의 일에 대해 물었다.


딱히 남편을 감싸줘야겠단 생각은 아니었지만, 스스로 부끄러움이 몰려왔고, 좀 더 참지 못한 내 자신에 대해 자책감이 세게 몰려왔다.

이번일은 남편뿐만 아니라 내 잘못도 크다는 내용으로 진술을 해 나갔다.


‘남편이 먼저 때린 건 맞지만, 저 또한 같이 때렸습니다.’


그러자 담당수사관께서 여전히 딱딱한 말투였지만, 의외의 대답을 하셨다.


“그럼 그냥 맞고만 있으려고 했어요?”


그 말을 들은 나는, 우습게도 잠시나마 위로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나온 뒤 현타가 세게 왔다.


경찰서에 와서 조사를 받는 내 자신이 한심했다.

이 상황 자체가 부끄럽고 수치스러움이 쓰나미처럼 몰려왔고, 결국 또 그 화살이 남편에게 향하게 되었다.



경찰서에서 나온 직 후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퇴근 중이던 남편에게 펑펑 울며 수치스럽고 지친 내 감정을 토해냈다.



“ 다시는 손지검 하지 않겠다던 사람이! 시아버지도 나한테 손대지 말라고 당부하셨었잖아! 손지검은 고쳐지지도 않고! 오히려 점점 더 폭력 수위만 높아지고 있잖아! 이번에는 목을 발로 차서 날 죽이려고 했어! 하다하다 이젠 나뿐만 아니라 애기들과 내 친정아빠한테까지 피해를 주는 당신이 너무 싫어! 참고 지내보려고 했는데 안되겠어! 당신이 또 언제 때릴지 불안해서 못 살겠어! 나 그냥 친정아빠랑 살고 싶어! 제발 이혼만 해줘! 나 좀 놔줘! 내가 바라던 결혼생활은 이런게 아니란 말야! 제발 부탁이야!”


남편은 늘 그렇듯 계속해서 미안하단 말 뿐이다..





경찰서에 다녀온 후 나는 심각한 멘탈붕괴가 왔고, 우리는 냉전상태가 됐다.

아니, 나의 일방적인 냉전이었던 것 같다.

난 진심으로 이혼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고, 남편은 용서를 구하고 있었기에.




임신 막달에 목을 졸랐던 거


출산 후 두달도 안되었을 때 내 위로 올라와 뺨을 여러대 때리고, 쫓아내려고 했던 거


시어머니와 아이 앞에서 내 목을 졸랐던 거


날라차기로 내 목을 발로 차고, 길 한복판에서 내 머리채를 잡고 주먹으로 얼굴을 계속해서 가격했던 거


다음 날 발목이 아프다면서 낄낄거리고 티비를 보며 모든 육아는 나한테 미뤄뒀던 거



매일 같이 하나하나 곱씹었다.

이 전에는 내 탓도 크다며 반성을 했지만,

이젠 원인이 어찌됐든 남편 탓만 하게 되었다.



난 밤마다 아이들을 재우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몇날 며칠을 울며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제발 이혼만 해달라고 요구했다.


아이들 등하원시키는 일 빼고는 모든 집안일에 손을 놔버렸다.


깨끗했던 집 안 벽지와 가구들 전부 아이들의 낙서로 순식간에 지저분해졌고, 바로 바로 정리하던 장난감도 이젠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던 욕실청소도 물때가 끼도록 며칠을 방치했다.


나는 날이 갈수록 피폐해져갔다.


남편이 폐인꼴을 한 내 모습을 보며 욱한 마음에 싫은 소리를 조금이라도 하면 난 그 즉시 울며 불며 맞받아쳤다.

 

“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아이들이 잠들기만 하면 혼자서 술을 꼴짝 꼴짝 먹다 결국 취기에 감정을 컨트롤 하지 못하고 눈물로 지세우는 날들이 늘어갔다.


한번씩 울분을 토하는 나를 억지로 피하는 남편을 굳이 붙잡아 놓고 빈정대며 시비를 걸기도 했다.


“ 어디 한번 또 때려 봐. 때려보라고. 또 발로 차보시지? 아니지, 점점 수위가 세졌지? 그럼 이번 차례는 날 죽이려나?”


그러다가 혼자 분에 못 이겨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 마냥 눈물을 쏟아내다가 과호흡이 오고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119가 오는 경우도 있었다.


남편은 얼굴이 터질 듯이 시뻘게진 채로 들것에 실려가는 날 보며 상황의 심각성을 서서히 실감하는 듯 했다.






이후 난 꽤 자주 공황장애로 인한 과호흡이 와서 숨 쉬기 힘들어했었다.


연예인들이 걸리는 병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공황장애를 겪게 되다니…생각치도 못했다.



난 어리석게도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최악의 상황을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아이들이 잠들면 난 습관적으로 술을 꺼냈고, 남편은 내 뒤에서 지친 표정을 하며 날 지켜보았다.


그러다 텔레비전에서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장면이 나오거나, 도덕적으로 나쁜 사람들이 나오면 나는 남편을 겨냥하며 빈정댔고, 남편이 아주 조금이라도 그만하라며 언성이 높아지려하면 또 때려보라며 덤비는게 생활이었다.


새벽 내내 울다가 지쳐 잠드는 날도 여전히 계속 됐고, 한번은 펑펑 울다가 머리가 터질 것 같이 아프다며 두통약 한곽을 한꺼번에 먹다가, 놀란 남편이 어서 뱉어내라며 내 등을 두들기며 억지로 토하게 한 적도 있었다.


남편은 점점 망가져가는 내 모습을 보며 본인이 퇴근 후 빨래며, 식사준비며 집안 살림을 맡아서 했다.


싸움이 날 것 같으면 본인도 욱하는 마음을 꾹 참고 일단 방으로 들어가 그 상황을 최대한 피하는 듯 했다.


폐인이 된 내 모습이 남편에게 큰 계기가 된 것인지 더이상 남편은 어떠한 상황이어도 나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죽일듯이 달려드는 나에게 욱해서 조금이라도 터치를 하게 되면 난 더 흥분을 했고, 그때마다 과호흡이 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뒤로 넘어갔고, 한번은 어지러움이 심하여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니 저혈압에 당장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7.5의 심각히 낮은 빈혈수치, 거기다 급성탈모까지 와 머리카락 절반이 다 빠졌다.





우린 많이 달라져있었다.


남편은 이제 내 앞에서 화는 커녕 싫은 소리 한마디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됐고, 난 악처 중에 악처가 되어있었다.


나는 남편을 향한 공격성은 늘 풀로 채워져 있었고, 항상 극 예민해 있었으며, 이젠 술 없이는 잠을 잘 수도 없었고, 종종 술에 취해 신세한탄을 하며 펑펑 울어댔다.


우리 집에 웃음이란 게 사라지고 있었다.

아이들에게도 다정함이나 애틋한 감정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이러다가 내가 죽을 것만 같았다.

이러다가 아이들에게 영영 씻을 수 없는 상처만 주게 될 것 같았다.


나, 어떻게 해야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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