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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둘희 Apr 24. 2024

13. 다시 느껴본다.

소소한 행복이란 것을. 감사함을.


삼 주 동안 서로 관찰하고, 석 달 동안 서로 사랑하고, 삼년 동안 서로 싸우고, 30년 동안 서로 참는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 아폴리트 텐


난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나서는 하루종일 방에서 꼼짝없이 누워있었다.


7.5수치의 심각한 빈혈 때문에 어지러움도 심했던 것도 이유 중에 하나였지만, 제일 큰 이유는 삶에 의욕이 없었다.


그렇게 난 하루종일 침대와 한 몸이 되어있고,

아이들은 유치원이 끝나고 미술학원, 태권도학원을 갔다가 오후 6시즘 집에 온다.

남편은 주간 근무일 땐 아이들보다 일찍 퇴근해서 집에 왔고, 퇴근하자마자 빨래,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야간근무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남편이 식사준비를 다하면 나와 아이들을 부르고 난 딱 식사만하고 다시 방에 들어갔다.

남편이 일이나 회식 등의 이유로 집에 없는 게 아닌 이상 맨정신에는 거의 남편과 한공간에 있지 않았다.



엄마인 나에게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하고 싶은게 많은 아이들은 아빠가 있는 거실과 내가 있는 방을 왔다 갔다하며 재잘거린다.


저녁 9시가 넘어가면 아이들이 잘 시간이라 양치와 세수를 시켰고,

잘 준비를 마친 아이들은 내 옆에 나란히 누운 뒤 재잘재잘 떠들다가 잠이 들면, 그제서야 난 거실로 나가 맥주 한캔을 꺼내 마신다.


남편도 회사일하랴, 집안일하랴, 긴 노동에 지쳐서 본인 방에서 일찍 취침을 하고, 난 그렇게 쭉-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이 불행하고 병든 생활을 1년 반을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난 아이들에게 잘 웃어주지 않고, 언제부터인지 같이 대화도 많이 하지 않고, 사소한 잘못에도 야단을 치는 나쁜 엄마가 되어있었다.


“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으면 정리를 해야지!”

“ 밥 먹으면서 왔다갔다 하지마!”

“ 양말은 또 어디다가 벗어 놓고 온거야!”

“ 아이스크림 좀 그만 먹어! 벌써 몇개 째니!”

“ 음식을 골고루 먹어야지!”

“ 침대에서 뛰지 말랬지!”

“ 그만 놀고 숙제해!”


난 아이들한테 점점 많은 제약을 두고, 자주 야단치며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다.



하루는 둘째에게 한글을 알려주고 있었다.


둘째는 ‘ㅏ’자를 ‘+’ 이런식으로 십자가 모양으로 썼다.


십자가 모양으로 쓰면 안된다고 했지만 계속해서 반복되는 실수에 야단을 쳤다.


그때 방에 있던 첫째가 신경질을 내며 짜증난다는 혼잣말을 하는 걸 듣게 되었다.


난 첫째를 불러서 어떤 부분이 짜증이 나는거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 어떤게 짜증이 나는지 얘기해 줄 수 있어?”


“ 엄마가 동생한테 화내는 거 싫어!”



그 말에 둘째를 바라보니 한글책을 펼쳐놓고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둘째가 보였다.


… … 아차 싶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게 이렇게까지 혼낼 일이었을까?

내 마음이 힘들단 핑계로 아이들에게 감정을 푼 것은 아닐까?

아이들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그린다고 생각한다는데 내가 너무 한 것은 아닐까?



많은 생각과 죄책감이 머리를 강하게 때렸다.






둘째를 달랜 후 이야기를 나눴다.


“ 우리 동희는 엄마가 좋아,싫어?”

요즘 엄마 미워.”


몹시 충격이었지만

슬프게도 조금은 예상을 했던 대답이었다.


“ 엄마가 왜 미운지 얘기해 줄 수 있어?”

“ 요즘 엄마는 매일 짜증내잖아.”


그래. 엄마가 그랬지.

최근에는 잘 웃어주지도 않았구나…


둘째 아이의 대답에 멍-한 표정으로 한참을 허공을 응시하고 있던 나를 보고있던 남편이 갑자기 많은 감정이 복 받쳤는지 눈물을 뚝뚝 흘린다.


“ 갑자기 왜 우는거야?”


“ 다 나 때문에 당신이 많이 아픈거 알아... 활동적이고 부지런했는데… 나, 정말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고, 앞으로도 속죄하며 살게.. 염치없는 거 알지만.당신도 예전처럼 잘 웃고, 외출도 하며 지내면 안될까?..  당신한테 집안일을 하란게 아니라 예전처럼 아이들이랑 같이 시간을 보내고 같이 대화도 나누고 싶어.. 내가 정말 잘못했어.. 병원도 꾸준히 다니면서 상담도 같이 받아보자.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제발 부탁이야..내가 정말 잘못했어..진짜 잘못했어.. “



오열을 하며 우는 남편을 보니,

괘씸한 감정과 안쓰러운 감정 등이 뒤엉켜 묘한 감정이 느껴진다.


결국 다시 방 안에 들어가 밤이 새도록 많은 고민을 했고,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아이들 사진을 넘겨보며 눈알이 빠지도록 펑펑 울었다.




이렇게 살다가 우리 가족 모두 불행할 거란 생각에 밤새도록 이혼을 고민을 하다가, 자는 남편을 깨워 많은 대화를 했고 정말 마지막으로 노력해보기로 했다.


특히 엄마인 나를 점점 낯설어하는 아이들을 보며 마음을 다잡기로 다짐했다.


그 날 이후 아이들부터 상담을 받았고, 집으로와 아이들과 많은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웃는 얼굴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엄마를 사랑하지만, 엄마가 화를 낼 때면 무섭고 밉다고 한다.

엄마가 요리해주는 음식을 먹어보고 싶다고 한다.

잠들기 전 엄마와 사랑한다는 말을 주고 받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아빠는 회사도 가고 요리도 하고 설거지도 한다고 한다.

아빠는 늘 피곤하단 말을 한다고 한다.

아빠는 무섭지 않다고 한다. 그래도 한번씩 짜증낼 때는 서운하다고 한다.

아빠가 우리한테 짜증낼 때마다 엄마한테 이르면 엄마가 대신 아빠를 혼내준다고 한다.

엄마,아빠랑 바닷가에서 텐트를 치고 캠핑을 하고 싶다고 한다.

엄마,아빠랑 배를 타고 낚시를 하고 싶다고 한다.

그러려면 엄마가 빨리 나아야하는데, 엄마가 지금은 많이 아프다고 한다.

엄마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간 내 마음이 힘들다는 핑계로 아이들에게 가장 큰 죄를 짓고 있음을 피부로 강하게 느껴졌고 죄책감에 가슴이 찢어지는 듯 했고,

우리 가족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아이들의 말에 눈물이 쏟아졌다.


아이들 때문에 참고 산다고 해놓고선,

대체 나, 우리 애기들한테 무슨 짓을 한거지…?




상담 그리고 아이들과의 오랜 대화 이 후 더 늦기전에 몸과 마음을 빨리 추스르기로 한번 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 후 나는 아이들을 재우고 혼자서 폭음을 하기 보단 아이들과 대화하며 아이들은 주스, 난 맥주 한캔씩 즐겼다. 기분좋을 정도로만 취기가 살짝 오른 날은 텔레비전으로 유튜브를 틀어놓고 아이들과 함께 첫째가 좋아하는 아이돌 댄스를 따라추기도 했다.


남편은 춤추는 아이들과 내 모습을 보고 과일을 깎다가 우리와 같이 엉덩이를 씰룩씰룩 흔들며 함께 춤을 춘다.


남편이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자지러지게 웃는다.


“ 아! 아빠! 진짜 웃겨! 깔깔-“



기분이 좋은 둘째가 ‘엄마 건배하자!’라며 제안을 한다.


“ 좋아! 뭐라고 하면서 건배를 해볼까?”


“ 음. 우리는 하나다!”


“ 뭐? 푸하하! 좋아! 엄마가 먼저 외칠게! 자! 주스잔들고! 우리는!”


하나다! 짠!”


꺄르르 웃는 아이들 모습에 미소가 지어진다.




난 그 후 아이들 대화를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

큰아이는 나의 어릴 적 얘기도 하며 같이 울고 웃기도 했고, 둘째가 좋아하는 그림 그리기도 했다.


한날은 기특하게도 둘째가 한글을 점차 알게 되면서, 엄마얼굴을 그린 종이 위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엄마 종와]=(엄마 좋아)를 적어왔다.


자기 전 침대에 나란히 누워 구구단 놀이도 자주 했고, 외식도 자주 했다.

사랑한단 말도 틈나는 대로 했다.


남편도 종종 자유시간을 즐기라며 아이들을 데리고 시댁에 가기도 했다.

그 전에는 나와 아이들과 다같이 가던지, 남편 혼자서 시댁에 가서 자고 오곤 했는데… 큰 변화였다.


남편과 난 사이가 많이 나아졌다.

특히 아이들 앞에서 남편과 대화도 많이하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


아이들은 그런 아빠와 엄마를 보고 많은 안정감을 느끼는 듯 했다.


남들은 평범하게 잘만 사는 것 같은데, 우린 참 돌고 돌아 이제서야 진정한 평온을 서서히 찾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너무 늦은 건 아닐까 걱정도 되고, 아직도 부모로써 아이들에게 한참 부족하지만, 그만큼 더 노력을 할 것이다.






상담을 하며 지난 일을 다시 생각해보니 난, 애초에 이혼할 마음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 그리고 스스로 반성도 많이 했다.

‘ 남편에게 더 다정히 대할 걸, 그 때 잔소리를 하지 말걸, 나도 잘한 것은 없구나. ’  그런 생각이 자꾸 들었다.



앞으로 남편과 언제 또 난투극을 할 지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남편은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욱해서 날 들이받기 보다는 일단 스스로 진정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 같다.

힘들거나 화나는 걸 마음에 쌓아두지 않고, 대화로 푸는 방법을 알게 된 것 같다.



여전히 나는 한번씩 과거일이 떠오를 때면 눈물을 글썽이며 남편을 원망하지만, 남편이 미안하다며, 평생 잘하겠단 말에 금방 감정을 추스르곤 한다.


아이들에게 아빠,엄마에게 서운하거나 불만인 점을 자주 묻고 대화를 하며, 아이들 생각을 존중해주고 칭찬해주며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공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앞으로도 노력할 것이다.





오늘도 여느때처럼 난 아이들의 숙제를 봐주고, 남편은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그리고 식사 후 설거지까지 하고 쇼파에 앉아 피곤한 얼굴로 영화 한편을 보고 있는 남편을 가만히 바라본다.


여전히 마음 한켠에 그에 대한 미움이 있다. 하지만 남편이 무척 안쓰럽기도 하다.


“ 오늘도 수고했어! 내일 저녁은 내가 할게.”


남편은 환히 웃으며 정말이냐고 되묻는다.

아이들은 내일은 엄마가 맛있는 거 해주는 거냐며 벌써부터 신났다.


“ 엄마! 그럼 메뉴는 내가 정하면 안돼?”


“ 뭐 먹고 싶은데?”


“ 음. 불고기! 아니야! 떡볶이! 아냐.아냐. 김밥!”


“ 김밥? 알겠어! 그럼 내일은 다 같이 김밥을 만들어보자!”


“ 와! 신난다! 오예쓰!”


아이들이 신나서 춤까지 춘다.

이런게 소소한 행복인가보다. 감사함이 든다.





남편은 오늘도 나에게 얘기한다.


내가 평생 속죄하면서 살게. 잘 살자. 우리.”


그런 남편 손을 잡고 오늘도 서로 약속한다.

아이들을 위해서 힘내자, 노력하자, 건강하자, 행복하자.



남편과 저의 일을 수개월에 걸쳐 글로 적어 내려가다보니 생각과 마음이 많이 편해지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울고, 웃고, 분노하고, 용서하고, 반성하고, 다짐하며 마음을 많이 추스를 수 있었습니다.
브런치, thank you - !
그리고 제 이야기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단 말씀을 드립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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