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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둘희 Apr 03. 2024

8. ‘우리 귀한 아들’을 외치던 시어머니

저도 저희 집에서는 귀한 딸이에요

결혼은 당신과 당신의 배우자가 일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의 시험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역경에 직면했을 때 가장 많은 시험을 받습니다. 한 팀으로 역경을 헤쳐 나갈 수 있다면 절반은 승리한 것입니다.
- 글쓴이 미상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둘째가 태어났다.


둘째가 태어난지 100일 쯤 되었을 때 일이다.


며칠간 시어머니와 함께 지내게 되었는데, 어머님의 불편하신 허리 때문에 정형외과를 모시고 다녀온 후, 시어머니 앞으로 실비보험이 없다는 걸 인지했다.


남편이 결혼 전에 가입해 둔 (보험료가 꽤 비싼) 변액보험 하나만 있었다.


회사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해서 물었다.


“ 오빠, 어머니 실비 보험은 왜 가입하지 않았어?”


“ 당시 엄마가 병력이 있어서 가입이 안된다고 했어.”


남편과 통화 후 혹시나 해서 나와 아이들의 보험을 관리해 주던 보험설계사에게 물어보니 실비보험 가입이 가능하다고 했다.


성격이 급한 난 참지 못하게 곧바로 남편에게 전화해서 한 소리를 했다.


“ 실비보험 가입이 가능하다는데 지금껏 알아보지도 않고 괜한 변액보험에 한 달에 몇십 만원씩 내고 있던 거야? 친한 친구한테 가입했다면서 이런 비싼 보험만 추천해 주고 실비보험은 권유도 안 했데?”


남편도 싫은 소리를 하는 나에게 화가 났는지, 곧 큰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 아,일하고 있는 사람한테!! 엄마 보험 얘길 굳이 지금 해야돼?”


“ 아니.. 실비보험 가입이 되는데 엄한 보험만 들어놨으니 답답해서 그래.”


“ 아 그러니까!! 굳이 지금 보험 하나 때문에! 일하고 있는 사람한테 따지는거냐고!!”


남편은 전화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그런 남편의 반응에 깜짝 놀랐지만 나 역시 왜 갑자기 큰소릴를 내는거냐며 같이 큰소리를 냈다.






남편은 퇴근하고 바로 집에 올라오지 않고, 어머니 보험을 추천하여 가입까지 시켜준 보험담당자(당시 남편의 친한 여사친)에게 전화를 했다.


어머니의 실비보험 가입이 가능하냐고 물어보니 그 담당지는 다른 쪽에서 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으면 가능한 게 맞다 했고, 남편은 그 친구에게 왜 진작 알아봐 주지 않고 비싼 변액보험만 추천해 준 거냐며 원망의 말을 한 듯했다.



잘 알고 지냈던 담당자와도 보험 때문에 사이가 갑자기 틀어진 것도 나름 속이 상했고, 회사에서 일하는 와중에 보험이 어쨌네, 저쨌네 따지는 나에게 화가 잔뜩 난 남편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시어머니가 계심에도 불구하고 내 어깨를 밀며 욕을 뱉으면서 화를 냈다.


난 남편의 갑작스런 행동에 같이 화를 내기 시작했고, 시어머니는 쩔쩔 매시며 우리를 뜯어말렸다.


“ 아이고! 그만들 좀 해라!”


“ 이 씨. 엄마 놔봐. 씨X. 야! 네가 잘 했어? 네가 오늘 한게 잘 한거야? 어?”


“ 지금 이게 뭐하자는 거야? 내가 전화해서 10분, 20분 질질 끈 것도 아니고 잠깐 전화한건데 이렇게까지 난리칠 일이야? 이렇게 욕 먹으면서 밀침 당할 정도로 잘못하지는 않았어!!”


남편은 점점 더 폭주했고 끝까지 잘했다는 내 태도에 결국 남편은 이성을 놓고 내 목을 잡고 작은 방까지 끌고가 벽으로 밀쳤고, 또다시 시작된 손지검에 가만히 맞고 있지 않겠다며 목을 졸린 채로 손을 휘저으며 남편의 몸을 때렸다.


그리고 곧 나의 목을 조르던 남편의 손에 힘이 빠졌지만, 이번엔 시어머니께서 양손으로 나의 두 어깨를 때리시며 외치셨다.


“ 오메, 오메! 이 사람보소! 우리 귀한 아들은 왜 때리냐!!”





남편은 황당하게도 이 일을 수습도 하지 않고 나와 아기들, 시어머니만 두고 그대로 나가버렸다.


“ 어머니. 저 사람 곧 들어올테니 잠시만 둘째 좀 부탁드릴게요. 아기 깨면 분유만 좀 먹여주세요. 죄송합니다..”


남편이 괘씸했던 나 역시 짐을 싸서 엄마,아빠가 싸우는 걸 고스란히 보았을 첫째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왔다.



첫째 아이와 택시를 타고 처음 와보는 동네에 내렸고, 맥주 피처 두개를 사서 근처에 있는 한 숙박업소로 들어갔다.


아이는 새로운 곳에 온 게 신기했는지 나에게 까꿍놀이를 하며 한껏 애교도 부리고, 신나서 구석구석 탐색하기도 했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아 내며, 맥주만 들이켰다.




아이가 놀다가 지쳐서 잠에 들었다.

계속해서 휴대폰이 울려댔고 발신자는 시어머니였다.


난 시어머니께서 얼른 집으로 들어와서 남편과 화해하라는 내용으로 전화를 거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지나친 착각이었다.


“ 대체 어디냐!! 애기가 자꾸 울어대는데, 나는 도저히 애기 못 보것다. 빨리 와서 애기 봐라!! 나 죽것다! 아이고! 나 죽어야!”


지금 집에 가서 남편과 마주하고 싶지 않으니, 남편에게 전화해 보시면 안되냐고 사정하듯 말씀드렸으나, 어머니는  ‘ 나 죽겄다!’를 외치시며 화를 내셨다.


결국 내가 남편에게 전화를 했고,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남편의 목소리는 살짝 취한 듯 했다.


“ 둘째가 보채서 어머니가 힘들다고 하시니 얼른 들어가.”


“ 내가 왜?”


“ 첫째는 내가 데리고 나왔어. 그러니 얼른 가서 둘째라도 좀 봐. 어머니 힘드시다고 계속 화내신 단 말야!”


“ 아, 그러니까. 내가 왜-“


남편은 끝까지 말을 베베 꼬며 사람 속을 긁어놓았고, 그런 남편의 태도에 나도 서럽고, 너무 화가 나 미칠 것 같았다.


 “ 애기 걱정은 안되니? 하…”


“ 그렇게 걱정되면 둘째도 데리고 나가지 그랬냐?”


“ 휴… 지금 당신 기분 나쁘다고 끝까지 비꼬지? 그래. 끝내자. 끝내! 다시는 나랑 첫째는 볼 생각도 하지마. 당신은 분명 후회할 거야.”


그리고 바로 휴대폰 전원을 꺼버렸다.


지금 내 상황이 너무나 기가 막혔다. 죽고 싶은 마음에 화장실에서 수건을 들고 멍하니 서있기도 했다.

허나 나란 사람은 죽을 용기도 없었다.


잠든 첫째 이이를 보면서 생각했다.


‘ 아가야, 엄마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맥주 피처 하나를 다 비우고 취기에 멍하니 앉아있는데 숙소 창문 밖으로 빨간색, 파란색 불빛이 번쩍거린다.


밖을 내다보니 경찰차가 돌아다니고 있었고, 설마 하는 생각으로 휴대폰 전원을 켰다.


모르는 번호로 찍힌 부재중 전화, 그리고 ‘선생님, 경찰입니다. 전화 좀 받아주세요.’라는 식의 메시지가 몇 통 들어와 있었다.


다시 전화벨이 울렸고, 난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 선생님. 지금 어디십니까.”


“ 아이랑 근처 숙박업소에 있어요. 그런데 이게 다 무슨 일이죠?”


“ 남편분께서 선생님과 아이 사진을 들고 와서 신고를 하셨어요.”


경찰분의 말은 남편이 내가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갔는데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서 연락이 두절되었다고 신고를 했다고 한다.


기가 막혀서, 코까지 막힐 지경이었다.


“ 귀찮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아이도 저도 괜찮으니 이만 돌아가셔도 될 것 같아요.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경찰분의 입장은 신고가 접수된 거라 현장을 확인하지 않고 철수하는 건 불가한 상황이라고 했다.


“ 선생님, 신고가 접수되었고 혹시 위험한 상황은 아닌 건지 저희가 꼭 확인을 해야 합니다. 선생님과 자녀분건으로 지금 순찰차 여러대가 움직이고 있으니, 협조 좀 부탁드릴게요. 괜찮으신지 확인만 하고 바로 가겠습니다.”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부부싸움이 이렇게 크게 번지다니. 이 상황이 창피하고 수치스러웠지만 그들의 수고스러움을 알기에 난 내가 있는 곳을 말씀드렸고, 곧 경찰분들과 남편이 왔다.


경찰분들은 우선 나와 잠든 아이를 확인하셨다  


“ 남편과 두분만 있어도 괜찮으시겠어요?”


“ 네. 괜찮아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경찰분은 내 대답을 듣고 돌아가셨고,

경찰분 뒤에 서있던 남편은 룸 안으로 들어와 잠든 아이 옆에 앉았다.


뒤척거리던 딸이 기척을 느끼고 잠에서 깼다. 그리고 잠에서 깬 자신을 안아주려는 아빠(남편)를 보더니 소스라치게 놀라며 나에게 안겨 자지러지게 울었다.


그 모습이 남편에게는 충격으로 느껴졌는지 당황해서 아이의 이름만 반복적으로 중얼거린다.


난 딸아이의 저런 반응이 당연하다고 느껴졌다.



“ 아이가 보는 앞에서 욕하고 소리치며 날 밀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아이가 당신 얼굴 보고 놀래서 자지러지니까 당황하는거야? 애기가 아직 많이 어리니까 아무것도 못 느낄 줄 알았던 거니? 그리고 어머니 앞에서 내 목을 조르니까 어떤 기분이었어? 그리고 어머니도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날 먼저 때린 건 당신인데 왜 귀한 당신 아들 때리냐고 되려 날 때릴 수가 있냐고!”


속사포처럼 화가 나고 분통 터지는 마음을 표출했다.


남편은 고개를 숙인 채로 미안하다고만 하고 있었다.

그놈의 미안하다는 소리, 지긋지긋하다고 울며 불며 외쳤지만 결국, 늘 그랬듯 달라진 것도 없이, 다신 그러지 않겠다는 지켜지지도 않을 약속만 받아낸 체로 집으로 돌아갔다.




남편과 집으로 돌아와 시어머니를 마주 했다.


둘째는 곤히 자고 있었다.


“ 오빠가 들어와서 아기 재운거야?”


“ 응, 집 앞에 있었거든. 당신 전화 받고 바로 와서 둘째 분유먹이고 재웠어.”


“ 트림은 잘 시킨거지? 애기 많이 울었던 거야?”


“ 걱정하지마. 집 오니까 엄마가 막 분유타고 있었고, 내가 잘 먹이고 트림도 시켰어. 옹아리하고 놀다가 바로 잠들었어.”



옆에 계시던 시어머니는 내 눈치를 보고 계셨고 내가 둘째 젖병을 치우고 있는데 자꾸 내 주위를 맴도시는 듯했다.

버릇없게 느끼실지 모르겠지만 속병들 바에야 할 말은 해야겠다 싶었다.



“ 어머니.. 저도 저희 집에서는 귀한 딸이었어요.”


“ 안다.알어… 내가 미안하다.”


어머니의 짧은 사과를 받고,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어머님 앞에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싸운 내 탓이 크다고 생각했기에…

또 워낙 일만 하시며 아들들만 바라보며 살아오신 어머니이기에…



그 날은 그렇게 마무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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