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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둘희 Mar 19. 2024

5. 남편은, 또.

반복의 시작


인생이란 결코 공평하지 않다.
이 사실에 익숙해져라. - 빌 게이츠



임신 막달인데 남편은 또 타 지역으로 발령을 받게 된다.


지금 신혼집으로 이사 온 지 몇 달 안 되었기 때문에 남편은 나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 같이 이사를 가는 게 나을까, 주말부부를 하는 게 나을까?”


난 주말부부는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임신 기간 내내 남편과 함께 한 시간보다 혼자 외롭게 보낸 시간이 더 많았는데, 출산 후에도?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 이사가자.”


고민할 것도 없었다. 당연히 남편을 따라가기로 했고, 우린 다시 급하게 집을 구했다.


이사 날짜는 출산예정일+산후조리기간 1개월까지 계산해서 잡게 되었는데, 날짜를 정한 뒤로 문제가 생겼다.

이삿날은 점점 다가오는데 뱃속의 아기는 아직 방 뺄 생각이 없는 건지 출산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가진통도 없었고, 배뭉침도 뜸했고, 뱃속에 우리 아기도 아직 자궁문 쪽으로 내려오지 않고, 저~ 위에 있다고 한다.


결국 고민 끝에 유도분만을 하기로 결정했다.


“ 애기는 아직 안 나오고 싶어하는데, 굳이? “


당시 다니던 산부인과의 담당 의사 선생님은 뱃속에 아기는 나올 생각이 없는데 왜 억지로 유도분만을 하려는 거냐며 이해하지 못하셨다.


하지만 임신 28주 때 산후조리원 예약을 하며 예약금도 지불해놓았고, 이삿날도 정해진 상태였기에 당시 우리로써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다행히 자연분만으로 예쁜 딸을 무사히 출산했고,

출산 후 3주가 조금 지나고 이사 날짜에 맞춰서 무사히 이사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산후조리를 하고 갈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기와 단둘이 지낼 자신이 없어 남편을 따라 무작정 이사를 오긴 했지만, 역시나 남편은 야간근무로 여전히 바빴다.


주변에 아는 사람도, 아는 곳도 없었다.


나는 혼자 아기를 안고 집 밖으로 나가는 것도 엄두가 나질 않았다.

낯선 곳에 혼자 버려진 기분이 들었고, 혼자 무언가를 할 엄두가 나지 않고, 마냥 두려웠다.

그렇기에 이곳에서 내가 의지 할 데라고는 남편 밖에 없었다. 그런 남편에게 나는 늘 힘들고, 외롭다며 닦달을 했고, 어린아이처럼 회사에 가지 말라고 우는 경우도 잦았다.


그래서 남편은 늘 아기와 단둘이 집에 갇혀있다시피 하는 날 위해 쉬는 날은 온전히 가정에 에너지를 다 쏟았던 것 같다.


내가 너무 우울해하는 날에는 회사에 사정을 얘기하고 쉬기도 하면서 나와 아기에게 최선을 다 했다.

하지만 난 여전히 남편 껌딱지로, 때로는 미저리처럼 남편만 바라보고, 혼자 집에 있기 싫다며 걸핏하면 회사도 가지 못하게 막아섰다.


산후우울증이란 명목 하에 히스테리를 부리는 나를 남편은 묵묵히 받아내고 있었다.





아기가 태어난 지 두달 즈음.

막내서방님(남편의 막내 남동생)과 막내동서가 놀 러오고 싶다고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남편이 당연히 놀러 오라고 할 줄 알았는데, 내 생각과는 달랐다.

남편은 대뜸 막냇동생에게 버럭 화를 냈다.


“ 여기에 놀러 올 시간이 있으면, 그 시간에 부모님한테 좀 가라!”


나는 막내동서와 사이가 나쁘지 않았고, 낯선 이 곳에서 아는 지인 하나 없이 쓸쓸히 지내고 있는 와중에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놀러온다기에 기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내 마음과는 달리 대차게 거절하는 남편에게 왜 못 오게 했냐며 서운해했지만, 본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 오면서 시댁에 자주 갈 수가 없으니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나는가 보다~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며칠 뒤

시어머니와 통화를 하는데 시어머니께서 물으셨다.


“ 막둥이(막내 서방님)가 너네 집에 간다고 했다던데, 왜 못 오게 했냐. ”


‘ 제가 못 오게 한 것이 아니며, 여차저차해서 남편이 한 소릴 하더라.’라고 설명을 해드리고, 혹시나 막내동서도 어머니처럼 오해를 하고 있을까 싶어 전화를 했지만 받질 않아서, 연락 달라는 메세지를 남겼다.


막내동서는 바쁜 것인지 연락이 없었고, 기다리다 못해 몇 시간 후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여전히 받질 않아 다시 메세지를 남겼다.


[ 많이 바쁘신지 연락이 안되네요. 다름이 아니라 저번에 저희 집에 놀러 오신다고 했는데 갑자기 남편이 화를 내가지구, 결국 못 뵈어서 아쉬웠어요. 이 일로 시어머니께서는 뭔가 오해하고 계시던데 행여 동서께선 오해하지 않으셨음 해요.]


그런데 이 메시지가 사건의 시작이 되었다.






막내동서네는 남편에게 한소리 들은 게 기분이 나빴던 것일까? 아니면 어머니가 하신 말씀처럼 내가 오지 못하게 한 걸로 오해하고 있었던 걸까?


나의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를 보고 콜백을 준 막내동서는 자신이 무슨 오해를 했다고 그러는 거냐며, 이게 뭐라고 이렇게 전화를 하고, 사과 메시지까지 남기면서 예민하게 구는 거냐며 느닷없이 따지기 시작했다.


시어머니께서 무슨 말씀을 하신 걸까?

전달이 잘못되었나?

바쁜 일이 있는데 내가 전화해서 그런 걸까?

내가 오지 말라고 한 게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 달라는 말이 잘못 이해되었나?

혹시 평소 나에게 화난 일이 있었나?



아직도 난 그 때 막내동서가 나에게 화를 낸 이유를 잘 모르겠다.(화해하고 나서도 그 이유를 듣지 못했다.)


영문도 모르고 막내동서의 신경질을 그대로 듣고 있다가 황당함과 불쾌함에 전화를 끊었고, 나는 곧바로 모처럼 고기를 굽고 있는 남편에게 화살을 돌렸다.


“ 애초부터 놀러 오고 싶다는 사람, 당신이 못 오게 한 건데 시어머니도 막내서방님 댁도 다 나를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막내동서가 앞뒤 설명 없이 나에게 이렇게 쏘아붙이는 게 맞는 거야!? ”



막내동서에게는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서 오히려 남편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내 분풀이를 가만히 듣고 있던 남편은 갑자기 고기를 굽던 집게를 바닥에 집어던지고 막내동서에게 전화를 걸어 뭐가 그렇게 기분이 나빴던거냐고 큰소리로 화를 내며 따지기 시작했다.


수화기 너머 막내동서의 고성도 들려왔다.


“ 아주버님이 무슨 상관이에요! “


그 모습에 나는 엉엉 울면서 갑자기 물 밀듯이 복받쳐 오르는 서러움에 눈앞에 보이는 빈 플라스틱 바구니를 발로 걷어차며 분풀이를 했다.



그런데,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바구니에 분풀이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본 남편이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남편은 막내동서와 통화를 하던 중 휴대전화를 바닥에 집어던지고, 날 밀어 넘어뜨렸다.

그리고 곧바로 내 배위로 올라타 내 뺨을 몇 대 때렸다.


처음있는 일이 아니어서였을까,

전처럼 벌벌 떨지않았다.


되려 발악발악 소리를 지르며 왜 때리는 거냐며 욕을 했고, 정신없이 남편을 향해 팔을 휘저었다.


“ 왜 때려! 왜 때리냐고! 당신이 뭔데 날 때려! 내 위에서 내려와! 비키라고!!”


곧 남편은 날 때리는 걸 멈추고 일어섰다.

난 남편한테 깔린 상태로 발악을 하느라 일어설 힘도 없었지만,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 짜내, 팔을 휘둘 러 남편의 정강이를 때렸다.


기습공격을 당한 남편은 나에게 맞은 정강이를 부여잡고 ‘윽!’ 소리를 내더니, 곧 고통이 가셨는지 다시 내 배위로 올라와 욕을 하며 나의 뺨을 두어대 더 때렸다.

그러고선 자신의 밑에 깔려있는 나의 티셔츠 목덜미를 잡고서 현관으로 질질 끌고 갔다.


“ 너 같은 애, 필요 없으니 내 집에서 당장 나가.”


현관 앞에서 힘겨루기를 하듯 옥신각신 했다.


“ 이거 놔! 내가 왜 나가?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가? 절대 못 나가!!”



내 멱살을 잡고 계속해서 억지로 끌고 나가려는 남편을 향해 문 앞에 택배상자 개봉용으로 있던 사무용 가위를 집어들고 차라리 같이 죽자고 소리쳤다.


그 때 곤히 자고 있던 아기가 울기 시작했고, 아기의 울음소리에 남편은 이성이 돌아온 듯 손에 힘을 풀었고, 난 재빨리 작은방으로 기어들어가 문을 잠근 후 나오지 않았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어느새 캄캄한 밤이 되었다.


두어번 남편이 문을 두드렸지만 난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에는 방 밖으로 나가서 남편을 마주해야 했다.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니 온 집 안은 컴컴했고, 아기는 분유를 먹고 잠들어 있었다.


잠든 아기 옆에 남편은 넋이 나간 듯이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리고 곧 방 밖으로 나온 나를 보더니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하고 조용히 지나쳐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날 밤 난 심란한 마음을 뒤로하고 아기와 나란히 거실에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남편은 자고 있는 날 흔들어 깨웠다.

내 얼굴은 퉁퉁 부은 것인지 당장 거울을 볼 수 없어서 모르겠지만, 양볼과 입술에서 묵직함이 느껴지고, 남편에게 맞은 볼이 얼얼했던 그 느낌이 생생하다.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을 억지로 부릅 떠가며 내 앞에 있는 남편을 찬찬히 쳐다보았다.


정말 우습게도 남편은 또.

또,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 내가 정말 잘못했어. 마지막으로 기회를 줘. 또다시 당신에게 손을 대면 그때는 전재산을 당신한테 주고 내가 조용히 나갈게. 지금 내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놔도 되고, 각서라도 쓰자면 쓸게. 공증받자고 하면 받을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용서해 줘.”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나는 당장 가 있을 곳이 없는데 어떻게 해야만 하는 걸까?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없으란 법 없는데 그때마다 난 어떻게 해야지?

우리 아기는 어떻게 해야 해?

나 혼자 이 핏덩이를 키우며 살아갈 수 있을까?

남들은 평범하게 잘만 살던데, 난 왜 자꾸 이런 시련이 닥치는 걸까?

성격이 너무 안 맞는 걸까?

내 탓인가? 그렇다쳐도 이게 맞는 건가?


갑자기 많은 부정적 감정들과 생각이 나의 마음과 머릿 속에 휘몰아친다.


남편이 너무나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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