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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둘희 Mar 13. 2024

3. 시어머니의 관심(=감시)

갈등이 시작되고 있었다.


한때 자신을 미소 짓게 만들었던 것에 대해 절대 후회하지 마라. - 엠버 데커스


그의 부모님을 처음 뵈러가는 길에 우린 불같이 싸웠다.


결국 싸우다가 집에 돌아가겠다며 억지로 차를 세워 길 한복판에 내렸고, 화장이 다 번지도록 엉엉 울었다.


그렇게 싸우다, 눈물보가 터진 후 어느정도 진정이 되었고, 웃기게도 조금 전 싸웠던게 무색할 정도로 금방 서로 화해를 하게 되었다. 그 덕에 남편의 가족들도 무사히 만날 수 있었다.






남편의 부모님과의 첫만남은 내가 생각해왔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일단 밖에서 부모님과 식사를 하고 들어가자는 남편의 말에 서로 격식을 갖추고, 클래식이 흘러나오는 레스토랑이나 조용한 한정식 집 같은 곳에서 만나리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그의 부모님보다 먼저 도착하게 된 우리는 내가 생각했던 레스토랑이나 한정식 집이 아닌, 동네 낙지요리 전문점으로 들어갔고, 그 곳에서 빨간 낙지볶음을 시켰다.



곧 남편의 부모님과 남편의 둘째 동생 부부가 도착했다.


남편의 부모님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연로하셨고, 남편의 어머니(지금의 시어머니)는 맨 발에 몸빼바지 차림으로 오셨다.


그리고 같이 온 남편의 남동생과 그의 아내는 날 보자마자  당황하며 ‘ 많이 어리시네요.’가 첫인사였고 그 후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남편의 부모님 역시 식사를 하면서 별 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남편의 어머니께서만 간간히 질문을 하셨고, ‘식사는 하셨소?’, ’ 나이는 어찌 되오?’, ‘어디 살고 있소?’ 질문도 이게 전부였다.



다들 나에게 별 다른 질문도, 별 다른 얘기도 하지 않으시고, 그저 공기밥이 담긴 대접에 낙지볶음만 슥슥 비벼서 먹고 있는 이 상황이 철없던 20대 중반의 나는 참 불편했고, 가시방석이었다.



그래도 많이 연로하신 남편의 부모님을 뵙고 나니 남편이 날 소개해주는 것에 대해 왜 그리 망설였는지, 무엇이 그렇게 걱정이었던 것인지 알 것 같았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늘 일정한 주기로 했던 생리가 생리 예정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임신테스트기를 했고, 테스트기에 희미한 두줄을 보고 남편에게 연락해서 바로 산부인과로 가서 피검사를 했다.


피검사 결과 임신이라고 한다.

내 뱃속에 아이가 있다고 한다.



마냥 남편이 좋았을 때라 아이가 생기면 기꺼이 낳을 생각이었고 임신을 확인한 순간 마치 임신을 기다렸던 사람처럼 우리는 기뻐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얼마가지 못 했던 것 같다.


결혼은 10퍼센트의 로망, 나머지 90퍼센트는 현실이라고 들었다.


결혼에 대한 로망에 촉촉이 젖어있던 나는 그 90퍼센트의 현실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난 남편의 부모님을 뵙고 난 후 어머님, 아버님과 자주 전화를 주고 받았었다.


그 날도 임신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전화를 드렸다.


그저 가족들의 축하를 듣고 싶었을 뿐인데, 어머님은 축하인사 외에 다른 말도 꺼내 놓으셨다.


어머님은 내가 임신이라 하더라도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 쭉 일을 하라고 하셨다.


맞는 말씀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호르몬 변화가 심해서였을까, 입덧이 시작돼서였을까?

무언가 뻘쭘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기대한 축하인사가 아니라서 철없는 마음에 서운 했던걸까?


어머님의 말씀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었지만 마음 속으로는 마냥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무언지 모를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우습게도 불안한 예감은 거의 틀리지 않는 것 같다.

예상했던 데로 어머님의 불편한 연락이 점차 늘어갔다.






남편과 나는 남편의 본가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하기로 했다.


남편의 직업은 업무상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하는 일이라 어느 곳에 딱 정착하기가 애매했다. 그래서 남편의 뜻을 존중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이사를 앞두고 아쉽게도 시어머니의 뜻과는 달리 심한 입덧으로 어쩔 수 없이 난 퇴사를 했고 이사 전까지, 한두달 정도는 집에서 쉴 수 있게 되었다. (임신 소식을 룸메이트에게 알린 후 룸메이트는 따로 거처를 구해서 나가게 됐다.)


허나 그런 내가 걱정되셨던 것인지, 혹시 못 미더우셨던 것인지 시어머니는 나에게 전화를 거는 일이 점점 많아지셨다.



한 날, 평소 친한 언니와 점심 즘 만나 간단히 식사를 하고 오래간만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그때 시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최근 시어머니와는 하루에도 여러번 통화를 했고, 오늘 오전에도 통화를 길게 했었기에, 굳이 나가서 부랴부랴 전화받느라 수선 떨고 싶지 않았다.

양쪽으로 사람들이 있어서 나가기도 불편했기도 했고, 영화가 끝나면 나가서 콜백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 뜻과는 다르게 시어머니는 내가 받을 때까지 전화를 걸어왔다.


결국 영화 보는 중간에 잠시 나와서 어디서, 누구와 무얼 하는지, 점심으로 무엇을 먹었는지, 언제 집에 갈 것인지, 시어머니의 여러 질문에 모두 다 대답을 하느라 약 20분가량 통화 후 다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그날 이른 저녁 집으로 귀가했다고 알려드리기 위해 시어머니께 전화를 드렸고, 시어머니는 저녁에는 무얼 해먹을 거냐고 물으셨다.


김치찌개를 할 거라고 말씀드렸고, 어머니의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김치찌개는 할 줄 아느냐, 어떻게 끓이는지 설명해 보아라, (사골육수에 끓일거라고 하니) 김치찌개에 사골육수를 넣어도 되는거냐, 밥은 해놨느냐, 밖에서 자주 사 먹냐, 뱃속에 있는 아기가 아들이어야 할 텐데 등등 나로써는 점점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셨다.


가만히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있다보니 가슴이 답답했다.

시어머니의 많은 관심이 점점 지나친 간섭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적응되겠지, 어머니도 혹시라도 내가 못미더우신 거라면 언젠가 날 온전히 믿어주실 날이 오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답답한 마음을 꾹 꾹 눌러 담았다.





남편이 한 달 정도 출장을 가게 되었다.


평일은 시어머니와 하루에 몇차례씩 통화를 하며 대부분 집에서 혼자시간을 보내다가 주말에는 남편과 시간을 보냈다.


크리스마스이브 날.

이 날만큼은 혼자 있고 싶지 않아 아침부터 일어나 김밥을 싸서 남편이 있는 곳으로 갔다.

버스를 타고 4시간이 넘는 거리였지만 크리스마스이브이기도하고, 한참 신혼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들떠있었다.


며칠 만에 보는 남편인가!

보고싶었던 남편과 사이좋게 마주 앉아 김밥을 나눠먹으며 하회탈 마냥 함박웃음을 지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시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하루에 몇 번씩 통화를 했던 터라 오늘도 역시나 하며 전화를 받았다.


시어머니는 크리스마스인데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왜 보러 오지 않냐고 넌지시 서운함을 비추셨다.

어머니의 말씀에 굳이 남편을 보러 왔다고 얘기하지는 않았다. 남편이 쉰다는 걸 아시면 더 서운해하실 것 같았기 때문이다.

주말에 꼭 가겠노라고 약속을 드리고 나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 엄마가 뭐라셔?”

“ 크리스마스인데 안 가서 내심 서운하신가봐. 나중에 전화나 한통 드려.”



그리고 우리는 곧 미리 예매해 둔 영화를 보러 갔다.

오래간만에 데이트다운 데이트를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남편의 손을 꼭 잡고 평소 좋아하는 양파맛 팝콘도 큰 걸로 사서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영화가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서 시어머니께 다시 전화가 왔다.


남편이 나중에 받자고 해서 받지 않았다. 사실 남편이 말리지 않았더라도 굳이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았다.


잦은 시어머니의 전화에 짜증이 슬슬 밀려오기 시작했나 보다. 때 되면 꼭 감시하려고 전화를 하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2시간 가까이 되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시어머니는 계속 전화를 하셨다.

극장에서 나오자마자 또다시 걸려오는 전화에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 너, 어디냐?”


전화를 받자마자 시어머니의 질문이 쏟아졌다.

취조받는 기분이 들어 살짝 불쾌했다.


“ 아- 사실 오빠가 오늘 쉬는 날이라 오빠가 근무하는 곳에 와있어요. 오빠랑 근처 극장에서 영화 보느라 미처 전화를 못 받았어요. 죄송해요.”


어머니께 전화를 못 받았던 이유를 설명 해드리고 굳은 표정으로 통화를 끝냈다.


남편도 내 표정을 읽은 건지 잠시 아무 말이 없었는데, 그 순간 다시 시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나에게 전화를 거신 게 아니라, 남편에게 전화를 하셨다.


남편은 퉁명스럽게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고, 이 내 화를 내기 시작했다.


“ 아, 엄마! 금방 와이프랑 통화하지 않았어? 극장이라고. 그거 확인하려고 전화한 거야?”


시어머니께서 남편에게 굳이 확인전화까지 한 걸 알고 너무나 불쾌했다.

시어머니는 왜 저렇게까지 날 못 미더워하시는 걸까?


시어머니의 간섭이 느껴지자 어머니의 연락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새해가 되었고, 나의 생일을 맞이하여 남편과 외식을 하게 됐다.


남편은 맛집이라며 한우구이집에 데려갔고, 그 곳에서 우리 둘은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저녁 외식 후 오늘 길에 마트에 들러 장도 보고, 집에 와서 간식을 먹으며 소소한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 때 시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 네, 어머니”

“ 뭐하고 있냐.”

“ 아, 오빠랑 밖에서 저녁먹고 오는 길에 마트에서 장보고 들어와서 티비보고 있어요.”

“ 밖에서 저녁 먹었다고? 왜야. 무슨 날이냐.”

“ 아, 그냥 뭐 겸사겸사…”


그 때 남편이 뒤에서 큰소리로 말했다.


“ 엄마~! 오늘 며느리 생일이야~”


“ 오메! 오늘 네 생일이냐.”

“ 네, 어머니.”

“ 오메,오메, 그럼 떡이라도 해줄텐데. 이번주에 내려오니라. 떡이라도 해줄테니.”

“ 아… 어머니 저 괜찮아요. 안 해주셔도 돼요.”

“ 왜야! 떡 해준다니까? 내가 네 생일인지도 모르고. 오메. 하기사 나도 내 생일 땐 네 시아버지가 아무것도 안해준다. 그래도 우리 아들은 착해갖고, 자기 마누라 생일도 챙겨주고 그런다잉.”

“ 아… 어머니. 오빠 바꿔드릴게요.”


최근 어머니의 연락이 부담스럽고 불편했던 난, 어머니의 ‘우리 아들’ 스토리가 시작되기 전 남편에게 어머니의 전화를 넘겼다.


남편은 어머니와 몇마디 나눈 후 전화를 끊었고, 곧 바로 나에게 물었다.


“ 엄마가 뭐라고 했어?”

“ 아니이.. 생일이라니 떡해주신다고 하셔서 괜찮다고 했어..”

“ 근데 갑자기 날 왜 바꿔줬어?”

“ 휴, 그냥 몸도 피곤하고 그래서.”

“ 울 엄마 서운했겠다.”


남편은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로 인해 어머니가 서운하셨겠다며, 나에게 무척이나 서운해했다.


내가 어머니 연락으로 답답하다고 중간중간 얘길 했었는데, 그런 나에게 이해커녕 서운해하기만 하는 남편이 제일 미웠다.


남편과 큰 문제 없이 잘 지내고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치도 않은 곳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마음이 복잡하고, 머리 속에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전 02화 2. 성급했으니 신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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