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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둘희 Mar 06. 2024

2. 성급했으니 신중하자.

존중을 제외한 대화는 곧 싸움이 된다.


인생에서 가장 슬픈 세 가지
할 수 있었는데, 해야 했는데, 해야만 했는데.
-루이스분





남편과 난 14살 차이가 난다.

남들은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데 대체 어떻게 만나게 되었냐며 신기해하곤 한다.

그리고 남편에게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 도둑놈이다라는 식의 말을 자주 하기도 한다.



… 남편도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



나의 자격지심일까, 남편에 대한 불안일까, 아니면 불신일까?

남편은 ‘전생에 나라를 팔아서 이렇게 삽니다.’라고 생각하고 있을거라는 확신 아닌 확신이 든다.  






한날 남편은 스마트폰 어플이 설치가 안된다며 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평소에도 기계치인 남편을 대신해 용량이 꽉 차있는 남편의 휴대전화에 불필요한 어플, 오래된 광고 메세지 등등을 삭제하며 휴대폰의 용량을 비우던 중  우연히 통화녹음 목록을 발견했다.


여러 통화녹음 목록 중 오래전 나와 통화를 한 기록이 있었고 당시 무슨 얘길 나눴었는지 궁금했던 나는 별 생각없이 녹음내용을 듣게 되었다.


그당시 회식 중이었던 남편은 나와 통화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실수로) 통화녹음버튼이 눌러진 듯 했다.


언제 즘 귀가할 거냐, 술 많이 마신거냐, 그러한 시시콜콜한 대화를 끝으로 서로 전화를 끊은 줄만 알았던 거다.


당시 남편은 함께 회식 중이었던 후배가 말을 꺼냈다.


형님은 형수님이 젊으셔서 정말 좋으시겠어요.”


후배의 말에 남편의 대답은 내가 기대한 것과는 사뭇 다른 대답이었다.


 “ 과연 그럴까? 네가 한번 살아봐라.


그게 괜스레 멋쩍어서 한 말이든, 혹은 진심이든

확실한 건 그 말마따나 지금의 남편은 나와 결혼생활에 많이 지쳐있단 거다.





만나게 된 계기는 특별할 것도 없었다.

남들처럼 우연히 알게 돼서, 서서히 알아갔고, 그렇게 알아가고 있는 어느 날부터 특별한 감정이 싹트게 되어 사귀게 된 것뿐이다.


그때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나는 14살 차이 나는 이 남자를 선택할까?


우습게도 ‘ 다시는 이 남자와 결혼하지 않겠어!’라고 확답할 자신이 없다.


아직 남편에게 미련이 많이 남은 걸까? 애정이 남아있는 걸까?

나도 남편에 대한 내 마음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남편과의 나이차이에서 오는 생각차이

그게 바로 불안과 불행의 시작이 되었던 건 확실하다.






내가 결혼 전 자취를 하며 회사에 다닐 때, 당시 룸메이트의 남자친구를 통해 남편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14살이나 많은 분을 처음부터 좋아하진 않았다.

그저 룸메이트의 남자친구가 자꾸 다리를 억지로 놔주는 통에 몇 번 연락을 주고받았을 뿐이고, 식사를 하자는 당시 남편의 조심스러운 제안도 몇 번이나 거절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이 많은 이 남자가 부담스럽고, 싫었다.


아는 사람 통해 알게 된 분이니 서로서로 불편해질 일 없도록 나름 예의를 갖춰,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답장 몇 번 해준 게 다였다.

남편도 집요하게 만남을 요구하거나, 귀찮게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6개월 가까이 가끔씩 인사치레로 주고받는 메시지가 다였고, 당연히 통화도 만남도 전혀 없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한다.

그 나무가 딱 내 얘기였나 싶다.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와 퍼주기만 했던 짧은 만남 후 이별을 하게 되고 마음이 무척 허했던 상태였다.

워낙 외로움도 많이 타는 성격이라 이별 후에 오는 공허함으로 하루하루 무기력하게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때마침 연락을 해 온 남편과 즉흥적으로 식사를 하게 됐다. 이렇게 무기력하게 있을 바에야 맛있는 거라도 먹고 기운 내자는 생각에 나갔다.


이별 후 너무나 외로웠던 걸까?

평소 티끌만큼의 관심도 없던 이 남자와의 식사시간이 왜인지, 썩 불편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맥주 한잔을 기울이며 끊이질 않는 대화를 하며 꽤 즐겁게 식사를 했다.


난 원래 첫인상을 잘 믿지 않기도 하지만, 남편은 첫인상과는 달라도 많이 달랐다.


식사를 하기 전까진 남편을 ‘나이 많은 주책바가지 아저씨’라고 생각하며 나갔는데, 식사를 마치고 나서 남편에 대해 드는 생각은 ‘생각보다 멋진 분.’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렇게 점차 호감을 갖게 되어 종종 가볍게 식사를 몇 번 하다 진지하게 만나게 된 이 아저씨가, 지금 나와 벼랑 끝에서 위태로운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남편이다.





나는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타입)였다.


막상 남편과 연애를 시작하니 우습게도 오히려 남편보다 내가 남편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하지만 좋아하는 감정과 함께 세대차이 또는 성격의 차이도 많이 느꼈었다.


20대 중반이었던 나와 30대 후반의 남편과는 생각이 달라도 한참 달랐다.


‘뭐하고 있어?, 출근길이 막힌다, 점심은 어떤 거 먹어? 오늘따라 일하기 싫다.’라는 식의 시시콜콜한 메세지를 자주 주고받고 싶어 하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무의미한 연락은 잘 하지 않았다.

미주알고주알 길게도 적어내는 나의 메시지에 돌아오는 대답은 대부분 단답이었다.


또 집에 혼자 있는 걸 싫어했던 나는 코앞에 사는 남편과 자주 만나기를 원했지만 남편은 3,4일에 한번 정도 만나기를 원했다.


내가 삐지거나 화가 나도 딱히 풀어주기보단 화가 풀릴 때까지 연락하지 않고 잠자코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잡은 물고기라 이건가?

내가 너무 좋아하는 티를 내니까 우월감을 느끼나?

아니면, 성격이 맞지 않는 걸까?





남편은 잡은 물고기라고 우월감을 느낄 사람은 아니었다.


단지 서로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아무리 남편이 젊게 살려고 한들 남편과 나는 세대와 생각의 차이 앞에서 늘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서 마찰도 잦았다.


그럼에도 나는 남편이 참 좋았다.

하는 행동은 본인 나이에 맞게 삼촌 같을 때가 많기는 했지만, 오히려 나이가 많다보니 또래 남자와는 다르게 어른스러운 점이 좋았고, 그럼에도 과하지 않고 깔끔하면서도 센스있게 옷을 입는 것도 멋있었다.

때론 나이답지 않게 귀여울 때도 많았다.


그렇게 나의 눈에 콩깍지가 단단히 씌워져 있을 때 내가 호기롭게 그의 가족들을 뵙고 싶다고 먼저 얘기를 꺼냈다.


20대의 당찬 패기 두 스푼에, 단단히 씐 콩깍지 덕이 여덟 스푼이었을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뵙고 싶다고 조르는 나(마치 솜사탕을 사달라고 조르는 다섯살 아이 같이 철부지로 느껴졌다고 한다.)와는 다르게 남편은 신중했다.


자신의 부모님께 날 소개 해준다는 것은 자신의 기준에서는 어느 정도 결혼이 전제되는 것인데,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시점에, 자신보다 14살이나 어린 저 친구의 뜬구름 같은 마음에 맞장구를 쳐주는 게 맞는 것일까, 그는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길지 않은 고민 끝에 어떠한 확신이 든 건지는 몰라도 남편은 나를 소개하기로 한다.





남편의 본가는 차로 2시간 반 되는 거리였다.


나는 아침부터 떨림 반, 설렘 반인 마음을 다잡고, 신중히 옷을 고르고, 머리에 과하지 않은 볼륨을 주고, 평소보다 얕게, 하지만 더 정성 들여 화장을 했다.


검은색 원피스에 하얀 카디건을 걸쳤다.

내 딴에는 나름 차분하게 입는다고 입었지만 남편은 나의 옷차림부터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릎 위로 올라오는 치마, 밝은 골드브라운 컬러의 머리, 귀에 몇 개나 뚫려있는 피어싱, 당신이 보기에는 다소 진한 아이라이너.


엄마가 네 귀를 보면 기절하시겠다.”

이런 말을 자꾸 반복하며 내 신경을 더 쓰이게 한다.


어쩌란 거지? 가지 말자는 건가? 난 최대한 차분히 한다고 한 건데? 이런 생각으로 평소에는 날 어떻게 만난 거지? 급하게 검은색으로 염색이라도 했어야 했나? 피어싱이 어때서? 왜 이렇게 꽉 막힌 거야? 한복이라도 입었어야 했나?


그렇게 남편의 부모님을 뵈러 가는 길부터 삐그덕 대기 시작했고, 결국 가는 도중 또 울며 불며 불같이 싸웠다.




세대차이인 걸까? 아니면 내가 생각이 없는 걸까?


세대, 또는 생각의 차이인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우리는 감정이 앞서서 존중하며 대화하는 방법을 잊었던 것 같다.


남편은 귀가 어쨌네, 옷이 마음에 들지 않네,

계속해서 지적하기 보다는 ‘부모님이 시골분이시라 많이 고지식하시기도 하시고, 많이 연로하셔서 여러가지 신경이 많이 쓰인다.’라고 차분하고 솔직히 얘기를 해주었음 더 좋았을 것이다.


나 역시 남편이 거슬린다는 피어싱은 잠시 빼고, 화장도 더 옅게 수정하면 싸우지 않았었을 수도 있다.


아쉽게도 세대차이라는 말을 뱉어가며 서로의 생각만 핏대 세워 내뱉기 바빴고, 결국 그 자리에서 서로는 아무것도 이해 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때 차를 돌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면

지금의 우리 둘 다 이토록 불행한 결혼생활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전 일을 천천히 글로 적다 보니

서로의 생각의 차이, 또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지 못 했던 것으로부터 시작부터 많이 어긋나 있었음을 늦게나마 알게 된 것 같다.


후회한다. 막연히 결혼을 후회한다는 것만은 아니다.


‘조금 천천히 했음 더 좋았을 텐데.’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 불같은 감정에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도 전에 성급히 모든 것을 시작했다.



그래도 하나 깨닫게 된 것은 분명히 있다.

시작은 성급했으니 마지막은 신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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