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갈밭을 구르는 유리바퀴 같은 우리 사이.
나는 30대가 훌쩍 넘었음에도 여전히 철부지에다가, 감수성이 너무나 풍부해 잘 삐지고 , 잘 울고, 잘 웃는다.
또 아이 둘을 키우는 전업주부 치고 자유롭고 편히 생활을 하는 편이다.
그런 나와 살고 있는 우리 남편을 보면서 ‘보살’ 같다는 생각을 하다가 곧 ‘다 당신이 자초한 일이야.’라고 속으로 되뇌인다.
현장에서 일을 하는 남편은 고된 회사일을 마치고 바로 집으로 온다. 늘 그렇듯이 방에서 꼼짝 않고 널브러져 있는 나를 대신해서 저녁준비, 설거지, 빨래 등 웬만한 집안살림을 모두 한다.
회사일, 집안일까지 모든 일과를 마치고 파김치가 되어있는 남편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여러 감정들이 솟구쳤다.
한없이 안쓰러운 마음이 물 밀듯 밀려오다가 결국 끝에서야 드는 한 줌의 원망.
남편에게 늘 안쓰러움과 원망이란 두 개의 감정이 양날의 검처럼 함께 공존한다.
안쓰러움과 원망 그 사이에 사랑이란 감정은 더 이상 우리 부부에게는 없는 걸까?
어릴 적 우리들의 부모님들이 그러셨던 것처럼 아이 때문에 참고 사는 듯한 나날들이 반복되고 있었다.
유리바퀴가 자갈밭을 구르듯이 그렇게 오늘도 아슬아슬하게 하루가 지나간다.
남편에게 이혼이야기를 먼저 꺼낸 적이 있었다. 예전 이야기를 꺼내다가 조금은 욱하는 마음에서 뱉어낸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처음은 아니고 몇년째 반복 되고 있는 중이다.
이혼이야기를 꺼냈던 그 날, 난 남편과의 예전일을 또다시 들먹이며 남편을 원망하고 있었고, 감정도 극에 달한 상태였다.
“ 나는 오빠를 만나서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쳤어. 미안한데 날 좀 놓아주면 안 될까? 제발 부탁이야.”
남편도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대답을 했다.
힘들어하는 날 보며 자신도 이혼생각을 진지하게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우리 부부 사이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감정의 골이 깊어진 게 피부로 느껴졌다.
이렇게 서로를 원망하며 남남처럼 살 바에야 서로를 위해서 하루라도 빨리 갈라서는 게 나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렇다면…
이혼 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지?
결혼 후 경단녀(경력이 단절된 여자)가 된 지 10년 가까이 되는데, 이혼 후 내가 원하는 직장에 취업이 이나 할 수 있을까?
원하는 곳에 취업이 안된다면 뭘 해서 먹고살아야 하지?
우리 아이들은 어쩌지?
아이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과연 나 혼자 우리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예쁘게 잘 키울 수 있을까?
난 친정 도움도 받을 수 없는데, 내가 직장에 간 사이 아이들이 아프거나 다치면 어떻게 해야하지?
현실적인 문제가 코 앞으로 턱 하니 다가온 듯한 기분이 들면서 두렵고, 무서웠다.
남편과 헤어지고 홀로서기를 잘할 수 있을지,
그리고 아이들과 나, 이렇게 셋이서 지금보다는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지..
눈앞이 캄캄해진 채로 밤을 지새웠다.
다음날
이혼 이야기는 먼저 꺼내놓고서 되려 서운함, 화남을 가득 담은 표정을 하고 있는 나에게
늘 그렇듯이 남편이 먼저 다가왔다.
오늘도 남편은 나에게 용서를 구한다.
아이들 위해서라도 잘 살아보자고 한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과거에 갇혀 남편을 원망하고 미워하고 있는 나는 언젠간 남편을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나 또한 그에게 했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어쩌면 나만 바뀐다면, 내가 이제라도 노력하고자 한다면 꼬일 데로 꼬여버린 우리 관계를 더 늦기 전에 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엉켜버린 실타래를 풀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여기 브런치, 나의 공간에 남편과 나의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벼랑 끝에 선 우리 부부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