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직원 쉼터가 12월 1일부터 공사를 시작했다. 그래서, 상주직원 라운지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글을 쓸만한 곳엔 자리가 없다. 키가 작은 나는 선호하지 않는 바 스타일의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글을 쓰려면 의자는 없어도 테이블은 있어야 한다.
2
일하는 날엔 더 많은 것을 한다. 일찍 일어나 출근을 하고, 쉬는 시간엔 책을 읽고 점심시간엔 글을 쓴다. 퇴근 후엔 종종 헬스를 하기도 한다. 집에 가면 아이들을 돌보고 먹이고 재운다. 쉬는 날엔 일을 하지도 않고, 쉬지도 못하고 읽기도 쓰기도 하지 못하며 생각처럼 마음껏 아이들을 돌보지도 못한다. 이상한 노릇이다. 그저 12월이 한참이나 지난 3일이 되어서야 글을 쓴다는 변명을 해본다.
3
지난 며칠간 알고 있었으나 알지 못했던 일을 알게 됐고 심하게 흔들렸다.
28일. 저녁 근무 표를 받았다. 관리자가 물어는 봤으나 나는 동의하지 않은 연차를 6일이나 사용했고, 이틀의 연차가 남았다. 그로 인해 나의 퇴사 일자는 1월 2일이 되었다.
29일.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까 고민했지만 하지 않기로 했다. 평소처럼 열심히 일했다. 열심히.
30일. 12월 스케줄엔 행사가 많았다. 회식인 날이 하루 있었다. 회식날에 나는 오후 근무로 9시 반까지 근무를 해야 하고, 다음날은 6시 반까지 출근을 해야 한다.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회식에 올 생각은 하지 말라는 스케줄이었다. 연차를 물어보던 날, ‘아 나를 조금도 더 오래 보고 싶지 않아 하시는구나’ 싶어서 회식은 불러도 고사하겠노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의 어떠한 의견도 물어보지 않은 채 회식 날에 근무를 넣어 짰다. 그리고 한 직원에게 그날 스케줄을 짜며 한 이야기를 들었다.
28일.
직원 A : “회식날 누구는 일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요?”
관리자 1 : “**씨는 회식 안 가잖아? 그리고 라희 걔, 걔는 곧 그만두잖아? 걔 넣어.”
회식이 뭐라고 그 말이 그렇게 서운하게 느껴지던지. 하긴 그 말을 듣지 않았더라도 알고는 있었다. 회식은 예전에도 가고 싶지는 않았다. 사람이 좋아서, 가서 술 한 잔을 기울이다 보면 그 사람의 보지 못했던 속내를 알 수가 있어서. 그래서 다음날이면 그 사람이 더 좋아지고, 더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겨있다. 그래서 나는 회식을 갔다. 술은 한 잔밖에 못하지만. 한 잔을 두고도 수많은 세계를 알아갈 수 있었으니까.
지금도 회식이라고 가고 싶은 건 아니었다. 다만, 함께 해온 직원들에게 고마웠다는 말을 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1년간 고생했다며 토닥이는 그 시간을 함께하고 싶었다. 그뿐이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아까운 거구나. 밥 한 끼가. 술 한 잔이. 나에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앞에서는 위하는 척, 경험해 보라는 말을 해놓고서는 이미 나는 버려졌다. 뭐든 열심히 하는 나이기에 여기서 일하는 1년 반을 대충 했을 리 없다. 나만큼 일하는 사람이야 쉽게 구하겠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애정을 쏟아도 돌아오는 건 이런 것뿐이다 싶어 순간 마음이 울컥했다.
오해일 수 있으니 관리자에게 이야기를 해보라는 정신 선배의 말에 울컥 눈물이 났다. ‘여기서 뭐가 오해일까요?’ 되묻지 못하고 눈물이 났다. 이 눈물을 보고 선배는 말했다.
“라희야 왜 그러니. 너 사회생활을 너무 짧게 해서 모르니? 네가 지금 울면 내가 널 위로해 줄 수는 있지. 달래줄 수도 있고. 그런데 정말 모르니? 사회의 인간관계에서 뭘 기대하니. 네가 선택한 일이니, 그에 따른 일도 네가 책임져야 하지 않겠니?”
정말, 사회에서 만나는 관계들이 다들 이렇게 쓰레기 같냐고 묻고 싶었다. 동료애 같은 것은 없는 거냐고. 그러나 어쩌면 어떤 사람들은 그 정도의 감정으로 대하는 게 맞는지도 모른다. 나는 혼자 너무 동화 같고 드라마 같은 마음으로 일을 했는 지도 모른다. 떠나면 끝일 사람들을 두고 너무 깊이 마음을 두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여기에 아무도 없어서. 내가 아는 사람들은 당신들 뿐이라서. 아마도 그래서 직장을 같이 다니는 동료뿐일 사람들을 친구로 오해했는지도 모르겠다.
성과라는 게 나올 리 없는 일을 하면서도 인정받을 수 없는 일을 하면서도 가슴에 존재하는 성취욕과 인정 욕구를 꾹꾹 눌러가면서, 사람이라도 좋으니 여기가 좋다고 믿어왔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말에 눈물이 나면서도, 그래 상처를 받았으면서도 머리는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이곳의 대부분은 이렇게 마음 쓸 가치가 있는 관계가 아니라는 생각에.
그저 나는 내가 아끼는 사람들을,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연이 다하는 날까지 마음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몇몇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여기서 그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두를 응원하고 있다. 좋아하고 있다.
그리고 30일 퇴근 후 나의 두서없는 이야기를 하염없이 들어주던 환희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이런 게 사실 삶의 동화 같은 점이다. 물론 직장은 나의 잔혹 동화고. 12월의 끔찍한 스케줄 표도 잔혹하지만, 버텨야 하는 시간도 잔혹하다. 특히 몇의 사람들. 쉬는 날 나를 좀 더 돌아보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보며 심란하고 혼란한 매일을 써볼 생각이다. 31일 중 16일만 근무를 한다. 보통은 퇴사를 한다고 하면 뒤에서 자르지만 내 휴무는 휴 휴 출근 휴 휴 출근(토) 출근(일) 24 출근 25 휴 26 출근 뭐... 이런 식이 지다. 어휴, 그래도 뭐 나는 나만의 동화를 쓰면 되는 일이 아닌가. 오늘은 12월 3일이다. 아직은 한참이나 남았다. 속상해하며 연말을 보낼 수는 없다.
4
연말 일본 도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이렇게 쓰니 벌써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삿포로냐, 도쿄냐 하는 고민에 우주가 해리포터 테마파크를 너무 가고 싶어 해서 내가 양보하기로 했다. 삿포로는 정말 그때 그 몸무게로 가보는 걸로.
5
요가
헬스만 했더니 몸이 너무 뻣뻣하고 불편한 느낌이라 요가를 하기로 했다. 어제저녁 요가를 하고 잤는데 오늘 아침 몸이 아프다. 밤새 누가 나를 구석구석 두드려 때린 느낌이다.
가끔은 힘들이지 않아도 힘든 일이 있다. 그리고 그게 잘 풀리는 신호일지도 모르고.
6
힘이 센,
레그 프레스는 240킬로까지 한다. 4세트를 전부다 하지는 않는다. 사실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무릎이 다칠까 봐 굳이 하지는 않는다. 그것과 스쾃과 데드리프트를 하는 걸 보더니 트레이너 선생님은 내가 힘이 세다고 했다. 하다 보니 는 것 같다고 하니 고개를 저으며 그냥 힘이 센 것 같다고 했다. 칭찬 같은데 뭔가 부끄러웠다. 그래도 힘이 세니까, 그 힘으로 누굴 지킬까 생각해 봤다. 우선 당장 나 하나는 지킬 수 있을 것 같아 기뻤다. 헬스가 시시해지면 권투라도 배울까 싶다. 우리 아들들 괴롭히는 나쁜 녀석들을 만나면 본때를 보여줘야지.
그래도 남편에겐 비밀로 해야겠다. 레그 프레스를 240킬로씩 미는 와이프의 짐을 들어주려고 하지는 않을 것 같으니까.
“힘든데 재밌어요. 운동.”
“그래요?”
“삶이 힘들면 운동이 재밌대요.”
“근데 전 왜 운동이 싫을까요?”
“그건 선생님한테 운동이 삶이니까?”
밝아 보이기만 하는 사람도,
운동을 그렇게 잘하고 멋진 몸을 가진 사람도,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도 삶은 힘든 거구나 싶었다.
뭐라고 말을 해줄까 생각만 하다가 돌아왔다.
7
<황야의 이리>, 헤르만 헤세
환희는, 밝다.
이름처럼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밝고 밝기만 할 줄 알았는데 우울하다고, 잠을 못 잔 시절이 있었다고 했다. 여기서 일하고 나서는 몸이 힘들어 좀 잔다고.
환희 같은 애도 우울하구나.
나는 나 같은 애나 우울한 줄 알았는데.
그러고 나니 우울이 별게 아닌가 싶어졌다.
누구나 그럴 수 있다면
정말로 우울은 감기 같은 것일지도 몰라.
우리는 모두 다른 얼굴의 황야의 이리일지도 몰라.
그래서 나는
집에 있는 나의 작은 이리에게,
엄마도 때로는 우울하다고 말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나의 이리도
그렇구나. 엄마도 우울할 때가 있구나 싶어 하며
나처럼 오늘을 살지도 모르니까.
8
오늘은 여기까지. 이제 돌아갈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출근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책을 좀 더 읽고,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