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06 토의 기록

by 이덕준

1


아주 오랜만에 글을 쓴다. 아주 오랜만에 글을 쓴다는 건, 아주 오랜만에 출근을 했다는 이야기다. 아주 오랜만에 출근을 해도 어제 출근을 한 것처럼 익숙하다. 해야 할 일들을 알고 있고 어떤 불편함 없이 그런 것들에 순위를 매겨 일을 하고 있다. 그런 편안함과 익숙함. 다른 말로는 안정이다. 그 안정을 벗어나려 한다는 것을 자각했다. 나는 어리석은가?




2


쉬는 날에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했다.


목요일에는 남편이 부탁한 일 처리를 하고, 오랜만에 세차를 했다. 세차를 하는 동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었는데, 도무지 진도가 나지 않는 책에 짜증이 확 밀려왔다. 책이 지루한 건지 내가 피곤한 건지 몇 번을 졸았다가 깼고 몇 번이나 같은 곳을 읽었다. 그래도 아직도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된다. 그러고 나니 고전이 좋다고 해놓고서 아직도 고전은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이렇게 읽기 힘들었던 책이 돌아보니 괜찮기도. 읽는 내내 만족스러웠던 책도 덮고 나니 여운이 없는 책도(아주 드물긴 하다), 이 책은 읽자마자 중고로 팔아버려야지 했던 책이 몇 번이나 머릿속에서 스스로 회자하는 경험을 하고 보니, 이렇게 지금 힘든 책도 어쩌면 다 읽고 나니 오히려 좋았던 책이 되지 않을까 싶어 꿋꿋이 읽고 있다.

아무튼 그래서 목요일에는 시간이 있었지만 쓰지 못했다.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첫째 아이와 피아노 학원에 가서 수업을 시켰다. 20분 수업이었다. 선생님은 쌀쌀맞다랄까. 뭔가 미묘하게 무례하다랄까. 마음이 편치 않아, 여기는 안 되겠다 생각하며 스타벅스에 커피를 사러 갔다. 갔다가 돌아왔을 때, 선생님의 표정은 달라져 있었고 우주가 아주 잘하고 이해력이 아주 좋다고 말씀하셨다. 아이가 원해서 온 거냐며, 그래서 그런지 2단계씩 건너뛰어 알려주어도 아주 잘 따라온다고 했다.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학원을 나왔다. 학원에서 집으로 오기 위해서는 넓은 사 차선의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고, 걸어오는 길이 꽤나 멀어서 다른 학원들도 좀 더 알아보자고 했더니, 아이는 다닐 수 있다고 했다.

그래, 우리 좀 더 이야기를 해보자. 하고 말했다. 그리고 남편과 대화를 나누었을 때, 남편은 접근성을 이유로 들며 다른 곳을 더 알아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주장이 일리 있다고 생각했고 그러자고 했다. 그러나 아이의 생각은 달랐다. 어젯밤, 아이에게 월요일부터 다니는 건 어려울 것 같고 한두 군데 더 다녀보자고 하니 아이는 서럽게 눈물을 보였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우리는 그냥 그 학원을 보내기로 했다.



금요일엔, 또 너무나 바빴다. 아이들을 등교, 등원시키고 집으로 돌아와 설거지와 방 정리, 빨래를 조금 정리하고 영화관에서 아이들 먹일 간식거리를 좀 챙기고 운동을 갔다. 한 시간가량 운동을 하고 씻고 하다 선물을 위한 당근을 하고 점심은 먹지 못하고 하다를 데리러 갔다. 모래놀이를 하고 싶다는 하다를 달래어 우주를 데리러 갔는데 40분이나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우리는 운동장에서 축구를 한참이나 해야 했다. 찬바람을 맞으며 축구까지 허기가 더 졌다. 피로해져서 토스트를 한 개 사고 영화관으로 바로 갔다. 주토피아 2를 보기로 한 날이었다. 아이들과 주디 저금통 팝콘 세트를 사서 영화를 보러 올라갔다. 아직 밝은 영화관에서 외투를 벗은 두 아이는 꼭 붙어 종알대며 팝콘을 먹기 시작했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나는 좀 졸았고 일어나 영화를 마저 보았다. 우주는 주디 같고 하다는 닉 같았다. 서로 다른 개성, 그러나 더할 나위 없이 서로에게 꼭 맞는 파트너. 나는 우주와 하다가 주디와 닉처럼 서로를 아끼기를,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서로에게 자신을 이해 시 기키 위해 노력하는 형제가 되길 바랐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나서 닉 저금통을 하나 더 사서 하다에게 주었다. 아이들은 집에 오자마자 자신의 저금통을 개봉해서 새로운 저금통으로 옮겼다. 그런데, 우주의 저금통이 불량이었다.



하단부가 없었다. 교환을 위해 극장 연락처를 찾아보았지만 없었고, 문의 글을 3개나 올렸고, 1시간 만에 받은 답변은 와서 확인 후 환불 교환 가능. 결국 나는 피로한 몸을 이끌고 가서 새로운 주디 저금통을 받아왔다.



하루가, 이틀이 너무 길었다. 알찼고 그만큼 피로했다. 일하는 건 뭐랄까 조금 더 단순한 느낌. 아무것도 하지 않을 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출근했고, 사실


영원히 출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생각이 죽고 싶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3


이제 매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새로운 브런치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출근하는 날이 얼마 되지 않아 자꾸만 연재 읽을 놓치고 만다. 관리자 두 분과 근무를 했다. 별말은 하지 않았다. 그냥, 그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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