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도 출근했다. 내가 들어가도 될만한 박스(엄청나게 커다랗다는 이야기다)를 3개 정도 끄집어 내려 정리를 했다. 그러다가 상처가 났다. 상처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팔목 안쪽의 가장 연하고 하얀 부분이라 조금 도드라졌을 뿐이다. 그러나 그 상처는 오직 나만을 향하고 있었고 어느 하나 내가 다친 것을 보지 못했다. 말하지 않았으니 아무도 모른다. 그런 상처가 출근할 때마다 마음에 수도 없이 생긴다. 팔목 안쪽 상처와 다른 점이 있다면,
꽤나 아프다는 것이다.
2
아무도 없다
아무렇지 않으려고 해도 아무렇지 않지 않다. 아주 힘들었던 시기를 돌이켜 보면, 사실 아픈가? 싶기는 하다. 그러나 누군가 나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고, 또한 의도적으로 비난하고 있으며, 의도적으로 따돌리고 있다면 아무리 무시해도 힘든 것은 사실이다. 어느 때와 비교했을 때 그 힘듦의 강도가 적다고 할지라도. 아픈 것은 아픈 거니까.
다른 사람들은 모르게, 티 나지 않게 하는 괴롭힘.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를 하려고 하고 싶어도 뚜렷하지 않는다는 점과 아주 미묘하게 사람을 괴롭게 만든다는 점은 내가 어떤 시도도 할 수 없게 만든다. 괴롭힘을 당하며 무력감을 느낀다. 내가 다른 브랜드가 아니고 다른 직장을 구해 나갔다면 그들은 다른 모습으로 나를 보내줬을까? 날 덜 비난하고 덜 힐난하며 덜 수군덕 대고, 덜 심한 말을 했을까?
아무것도 몰라서 가만히 있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떤 바보도 감정은 있다. 감정이 없는 사람은 사이코패스다. 어떤 바보도 누군가가 자신을 저격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모든 바보도 아프고 슬프다. 그러나 나는 바보가 아니다. 그러니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안다. 진짜 바보는, 돌을 던져대면서도 상대방이 다칠 줄 몰랐다고 하는 사람들이다.
일 년 중 이번 달이 가장 힘들다. 조금 서러운 것은 다음 달이 지금 보다 덜 힘들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이 있다면, 오늘 관리자 1 과는 마지막 근무인 것 같고(아니었다...), 그건 꽤나 안심이 되는 포인트다. 그리고 관리자들이 나를 의도적으로 피해 주고 있기 때문에, 나 또한 그들과 마주칠 시간이 적다. 그런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건 그대로 불편하지만 반면에 그대로 편안하다. 다만, 다른 이들보다 휴게 시간을 적게 주는 건 매번 화가 난다.
진상 손님에 대해서 기대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건, 사과다. 진심이 담긴 사과는 하지 않는다. 사과를 할 줄 안다는 것은 상대방의 마음이 상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을 만큼 똑똑하다는 것이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고, 정의에 대한 생각을 한 번쯤 해본 사람이다. 그들은 사과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지금 일련의 사건을 만든 사람들을 내 인생에서 만난 진상쯤이구나 하고 넘겨야 한다는 뜻이다.
가위로 자르듯이 그들에 대한 생각을 싹둑 잘라내고 싶다. 그리고서 뿌리째 뽑아내고 싶다. 곁에 좋은 기억들이 사라진다고 해도 잠시나마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다. 이런 표현이라면 지금의 마음이 잘 드러난 것일까?
오늘 여동생은 말했다. 아픈 곳이 있는데 이런 힘듦을 털어놓을 상대(남자친구)가 있어 다행이라고. 그래 다행이지.라고 답장을 쓰면서 갑자기 퍽 외로워졌다. 나는 누가 있지? 환희의 조언대로 정신의학과를 다녀 아 할까. 언제나 고민을 털어놓고 싶지만, 털어놓을 대상이 없다. 상담사나 의사를 찾아가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가슴이 두근대고 답답하다. 묵직한 것에 무게가 자꾸만 더해져 걷는 걸음이 느려지고 발걸음에서 둔탁한 소리가 점점 들린다. 나는 계속 작아지고 바닥으로 녹아드는 것 같다. 이럴 땐 지금처럼 쓴다. 쓰다 보면 명확해지는 것이 있다. 감정이든 사실이든. 그것을 찾아가다 보면 명확해지는 만큼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읽는다. 아주 낯 선 문장에서 필요한 위로를 얻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책이고 씀이고를 떠나 나는 사실 말할 데가 아무 데도 없다. 아무도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버려진 땅의 이리 같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나를 괴롭히는 문제가 있다면, 아직 나의 근무는 한참이나 남았다는 것이다. 지금도 돌아가서도 한참을 더 일해야만 집에 갈 수 있다. 그리고 매번 퇴근하고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집에 바로 돌아가지도 못한다. 초상집에 다녀온 사람처럼 마음이 무거워서 바로 집에 갈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여긴 지금 내 마음의 초상집이다. 거대한 무덤이다. 어디에도 창은 없다. 누군가에게는 거쳐가는 곳이지만 당사자에게는 끝인 곳이다. 죽어버린 신뢰와 죽어버린 존중과 다시는 피어날 일 없는 썩은 애정의 씨앗만이 커다란 상자 안에 담겨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래, 여긴 이미 상갓집이다.
초상집의 상주는
나다.
죽어버린 것이 온통
나의 것이므로.
3
사회생활이 짧아 직장 내 인간관계를 이해하지 못했느냐며, 성인이 된 스스로가 한 선택이니 지금의 결과를 받아들이고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던 선배가 나를 피한다.
어쩌면 나도 그녀를 피했는지 모른다. 그녀의 말이 다 맞아서 상처받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 줄 알았는데, 수풀에서 기어 나온 사람처럼 여기저기가 쓰라리다. 애정의 매도 매다. 애정이 아픔의 연고가 될 수는 없다.
그래, 어쩌면 나는 그녀를 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무 대놓고 그녀가 나를 피하는 바람에 나의 이런 마음은 무색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매장 밖으로 나가려다 내가 있으면 돌아 들어간다 든 지, 휴게 고지를 나 이외의 사람에게만 한다든 지,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 손짓만 한다든지, 마주칠 것 같으면 홱 소리가 날 것 같은 속도로 고개를 돌린 다 든지, 인사를 하면 눈으로 보고 고개를 숙인다든지)
지금은 이렇게까지 나를 피하는 그녀를 위해 내가 좀 더 피해드려야 하나 싶다.
우리는 사회적 관계였나 보다.
퍽 서글퍼졌다.
그러나 거기까지도 내가 감당할 부분이라고 다잡아보았다.
4
이제 상주는 시체를 눕히러 돌아간다. 일하는 동안 그리 최악은 아니었으나, 마지막은 최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