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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찬 Dec 11. 2023

퇴근길 사거리 신호등

퇴근길 신호등이 출근길 신호등!

퇴근을 한다. 아침에 출근했던 그 길로 퇴근한다. 퇴근길 사거리가 많다. 많은 사거리에 많은 신호등이 있고, 이 신호에 맞춰 자동차들이 멈춰있다. 멈춰있는 차들에게서 나오는 정렬된 불빛들이 퇴근길 어두운 길가를 환하게 비추고 있다.


하지만, 신호가 바뀌면 상황이 달라진다. 이 불빛들이 파란불로 바뀌면 서로 산발한다. 신호가 바뀌자 뛰쳐나가는 차가 있는 반면, 느긋하게 출발하는 차, 뒤에서 빵빵거리면 그제야 출발하는 차들이 있다.


무엇이 그렇게 급하게 한 것인지, 무엇이 그렇게 느긋하게 한 것인지, 무엇이 그렇게 멍 때리게 한 것인지 멈춰있던 차들이 출발하는 것은 제각각이다. 이 차들이 서로 얽히면서 도로에 밝은 불빛의 물감을 뿌린다.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에게 달려가는 것일 수도 있고, 가족이 아파서 빨리 가는 것일 수도 있고, 아이가 혼자 있을까 봐 노심초사하며 달려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반겨줄 가족과 연인이 없어 느긋하게 퇴근이라는 향을 맡은 것일 수도 있고, 하루 내내 일처리를 하지 못해 퇴근길마저 일에 대한 생각을 떨궈내지 못한 것일 수도 있고, 아파서 아픔을 참기 위해 멍 때리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의 삶도 퇴근길 사거리 신호등 같다. 나아가지 말라는 삶의 빨간불에는 멈춰있다. 또, 나아가라는 삶의 파란불에는 나아간다. 하지만, 같은 파란불일지라도 서로 다르게 나아간다. 나아갈 때 앞다퉈 가는지, 느긋하게 가는지, 멍 때리면서 뒤늦게 가는지만 다를 뿐이다.


하지만, 앞다퉈 나아가도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을 것이며, 뒤늦게 나아가도 어려움이 발생할 수도 있다. 오히려, 멍 때리면서 천천히 나아가는 삶이 나을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가 지키는 사회의 질서에는 빨간불과 파란불이 있어서 큰 문제와 어려움이 발생하지는 않지만, 우리 삶의 신호등에는 수많은 난관과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


삶이라는 무게를 무리하게 나아가고 버티지도, 그렇다고 늦게 나아가며 버티는 것도, 또 생각 없이 나아가며 버티는 것도 결과는 같아질 수 있기 때문에 정해진 신호에 정해진 속도로 정해진 목표를 향해 앞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또, 어차피 우리의 퇴근길 신호등은 오늘의 아침 신호등이었고, 내일의 아침의 출근길 신호등일 것이다. 이처럼 삶의 시작과 끝 역시 같은 신호등에서 정해진 것에 맞춰 나아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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