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이가 네 명이에요. 처음부터 이렇게 계획한 건 아니었는데, 첫 아이 키우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 번 힘들 바에야, 그냥 한꺼번에 다 키워버리자.”
그래서 터울도 거의 없이, 두 살, 한 살 차이로 아이들을 줄줄이 낳았습니다. 지금은 아이들끼리 참 잘 놀아요.
누가 봐도 형제자매지간이 아닌 전우 같달까요. 매일같이 싸우기도 하고, 또 금세 손잡고 놀기도 하고. 북적북적한 모습이 이제는 익숙해졌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을 돌아보면요, 아이들을 키우면서 ‘예쁘다’는 감정을 느낄 틈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첫째가 여섯 살일 때, 둘째는 네 살, 셋째는 세 살, 막내는 겨우 한 살이었어요. 그 예쁘고 귀여운 나이들이었는데, 저는 그저 매일 생존하듯 하루하루를 버티기 바빴습니다.
모유 먹이고, 분유 먹이고, 기저귀 갈고, 돌아서면 이유식 만들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울고 토닥이고, 씻기고, 재우고, 또 울리고… 진짜 말 그대로 ‘전쟁터’ 같았어요. 그래서였을까요. 아이들을 품에 오래 안고 있을 여유도, 하나하나 충분히 들여다볼 여력도 없었어요. 이름을 불러주고, 눈을 마주치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평범한 순간들조차 그땐 사치처럼 느껴졌거든요. 그 시절, 너무 힘들어서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끼지도 못했어요.
오늘은 지역 축제라 바깥나들이를 했는데요, 요즘 제 아이들은 제법 커서 자기들끼리 알아서 잘 놀아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문득, 다른 엄마가 아기 띠로 아이를 품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됐어요. 그게 그렇게 부럽더라고요.
아이와 한 몸이 되어 다니는 그 모습이요. 작디작은 심장이 내 가슴에 기대어 뛰던 그 시절이요. 내 품에서 곤히 잠들던, 내 작은 우주 같던 아이. 그게 그렇게나 그리울 줄은 정말 몰랐어요. 그땐 너무 힘들어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데 급급했으니까요. 왜 선배 엄마들이 “지금이 가장 좋을 때야”라고 말했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아요. 그땐 진심으로 믿지 않았거든요.
“이 힘든 시간이 제일 좋다고? 설마.” 그런 마음이었죠.
하지만 지금 어른들이 말해요.
“지금이 제일 좋을 때야.”
아직은 아이가 엄마 품을 찾아오고, 눈물을 보이며 “안아줘”라고 말해주는 시기니까요. 우리 막내도요, 혼이 나거나 속상할 때면
“엄마 안아줘.”
하면서 두 팔 벌려 다가옵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미어지죠. 사실 저도 그 품이 필요한데, 화가 나 있는 순간에는 아이를 바로 안아주는 게 쉽지만은 않아요.
얼마 전엔 <폭삭 속아 수다>라는 방송에서 동명이가 밥 먹다 말고 몰래 사탕을 먹다가 혼나는 장면을 봤어요. 울면서 “엄마 안아줘”라고 하는데, 엄마는 미처 안아주지 못하고 그냥 혼만 내죠. 그 장면이 참 오래 마음에 남았어요.
그걸 보며 저도 다짐했어요.
“아이가 안아달라고 할 때는, 무장해제하고 안아주자.”
지금 제 다짐은 아주 단순합니다.
많이 안아주자.
이 시간이, 이 팔 벌림이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을 테니까요. 사춘기가 오고,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엄마 안아줘” 하고 달려오는 일은 아마 사라질 거예요.
아니, 분명 사라지겠죠. 그래서 지금, 그저 안아주는 것만으로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을 짓는 우리 아이들을 더 많이, 더 자주,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어요.
그때는 정말 몰랐어요. 이런 평범한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기억이 되어 돌아올 줄을요. 그러니 오늘, 여러분도 지금 옆에 있는 아이를 꼭 한 번 안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