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르게 배우는 법

살불살조, 길에서 부처를 만나거든 죽여라.

by HeukYi
3.


세상에 고정된 것은 없다. 불교의 연기성을 쉽게 설명한 말이자 상황에 따라 모든 것은 변한다는 말이다. 오늘의 정답이 내일의 틀림이 되고, 과거의 패배가 오늘의 승리가 되는 복잡한 세상속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특정한 방법이나 사실을 맹신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채롭게 들이닥쳐오는 상황 속에서 그때 그때 최선의 수를 두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한때는 착실한 저축이 지름길이 되는 시대가 있었지만, 은행의 이자율이 낮아지며 단순 저축은 바보가 되는 시대가 오기도 했다. 둘 다 똑같이 저축한다는 행위이지만 이자율, 기준 금리라는 변동사항에 따라 언제는 올바른 선택. 언제는 바보 같은 선택이 되기도 한다.


결국은 어떤 지식이나 기술을 도구로써 바라보며, 그것을 주체적으로 사용할 책임감과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스스로가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는 주체성과(스스로를 높임) 조사들의 가르침을 하나의 방법, 수단으로 여길줄 아는 마음가짐(상대방을 높게 보지 않음)이 필요하다. 물론 이러한 마음 가짐에는 겸손이라는 덕목으로 방점을 찍어줘야 스승들과 이웃들에게 미움받지 않는다.


청출어람


푸름에서 더 깊은 푸름이 나오다. 보통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음을 의미하며 제자의 천재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배우는 이들의 마음가짐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뇌는 스스로 한계지은 영역 너머로는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신경은 매초마다 감당할 수 없는 정보를 접한다. 그러나 무의식 프로세스가 필요 없거나 관심 없는 영역에 대해선 알아서 필터링하기 때문에 우리는 쾌적한 양의 정보들을 접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것은 곧 한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 스스로 배움이 필요한 존재, 스승을 넘을 수 없는 존재로 인식한다면 결국 스스로에게 한계를 거는 것에 불과하다. 스승을 뛰어넘을 지식과 지혜를 발견하더라도 뇌에서 그것을 필터링 한다고 생각해보라. 끔찍하기 그지 없는 일이고, 실제로 그것은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병에 갇힌 벼룩처럼. 목줄을 차는 시늉에 사육사를 따라 걷는 경마처럼. 우리의 행동은 생각의 지배를 받는다. 생각이 스스로 부족한 존재라고 믿으면 행동은 그 흐름을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배우는 자는 실제론 배움이 필요한 수준일지라도 스스로가 최고이며 천재라고 믿어야 한다. 실제론 그것이 아니더라도 이미 그것이라고 믿어야만 하는 것이다. 단 1%의 가능성을 올릴 지라도 말이다.


살불살조


앞에서 스스로를 높였다면 이번에는 상대를 높게 보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다. 논리는 좀 전과 같다. 내가 아무리 지혜롭다고 자부하더라도 상대방을 높게 본다면 결국 스스로보다 높은 존재를 만드는 것이다. 결국은 스스로를 한계짓는 행동인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은 관계라는, 상대성을 의미한 연기성을 기억하자.


만약 엄청나보이는 스승을 높게 평가 했다고 보자. 허나 그 스승은 그 당시의 상황과 조건에 부합해서 좋은 결과를 낸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의 말을 맹신하고 변화된 상황에 똑같이 적용하려 한다면 큰 낭패를 볼지도 모른다. 마치 저축과 투자 사이에서 고민히다 과거 저축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며 현시대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하는 상황처럼 말이다.


(물론 저축을 비하하려는 말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지금도 저축은 훌륭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개개인의 상황과 특성을 고려하라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지식과 교훈에 리스펙을 보이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하나의 수단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이용하기 위해선 상대를 맹신해선 안 된다. 그것을 불변의 진리라는 엄청난 지위에서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옵션으로 낮추라. 그래야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유연한 대처를 할 수 있는 중도의 덕목을 갖출 수 있게 된다. 더더욱이 상대성으로 인한 스스로에게 거는 한계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당신은 능동적이 됐을때로서야 비로소 시작하는 것이다.


수동적인 것을 인생이라 부를 수 있던가. 선택하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가 정해준 길속에서 사회의 요구를 따라 하루 종일 일하며, 돈을 갈구하지만 부자가 되지 못하며, 병들어가며 늙어가다 어느 순간 세상을 떠나야 한다. 기술은 발전하고 편의는 향상되었지만 우리의 영적인 모험은 지연되고, 인간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되며, 절망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우리는 알게 모르게 사회라는 철창에 갖혀 소위 엘리트라 불리는 이들을 위한 동물원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가 정하지 않은 사회의 통념을 따라가며 그것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선택지를 강요받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올바르게 배운 다는 것은 나를 한계 짓지 않고 어떤 지식을 옵션으로써 내가 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선택할 수 있을 때 인간은 비로소 자유롭다. 그리고 자유롭기 위해서는 실제론 자유롭지 않더라도 자유롭다고 믿어야 한다.


길에서 부처를 만났는가? 겸손히 그가 주는 지혜에 감사하라. 그리고 그를 죽이고(마음속에서 낮추고) 대장부처럼 스스로 걸어가라(스스로를 높여라). 그럼 당신은 비로소 선택자가 되고 인생을 능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