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로부터 받은 선물
8.
내 인생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가장 먼저 실패한 것은 용감해지는 것이었다. 때는 초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무렵, 한 학기동안 내내 짝꿍을 하던 아이가 있는데 나는 연필도 빌리고 지우개도 빌리고 하루 종일 재잘대며 친하게 지냈다. 그러던 중 웬 키가 멀대같이 큰 애가 와서 말하기를, '얼레리 꼴레리 좋아한대요 사귄대요'를 갈겨버린 것이다.
너무 부끄러웠던 나는 어린 마음에 가장 친하던 짝꿍에게 마귀 할멈이라 놀렸다. 그러자 그 애는 쫓고 나는 도망치고 그렇게 다투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그러다 1학기가 지나고, 그 애는 전학을 가버렸다. 어느 날 나를 쫓아올 단짝이 사라졌다는 생각에 그 어린 나이에 처음으로 무력감을 느꼈다. 가기 전에 잘 해줬어야 했는데. 나는 내 마음에 솔직하지 못하고 비겁했다.
그 후로도 나는 종종 인간 관계에서 많은 실패들을 겪었다.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실패는 사람을 깊어지게 만든다. 그 말에 백번 동의한다. 허나, 실패를 겪고 있는 순간에는 세상에서 버려진 것 같은 소외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실패들은 내 자아상이 되었다.
실패에 잡아먹혔다.
자아상은 중요한 제 1 환경이다. 자아상이 부정적인 사람들은 똑같은 상황을 겪더라도 평범한 사람에 비해 심적 부담감을 많이 겪는다. 마치 게임 속에서 중독 상태에 걸려 가만히 있어도 체력이 깎이는 것 처럼, 자아상이 실패에 잡아먹힌 사람은 자력으로 벗어나기 어렵다.
이런 상태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을 위해 간단한 예시를 들자면, 못생긴 사람과 잘생긴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잘 생긴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의 호감을 받는다. 비유하자면 잘 생긴 사람은 집앞 마당이 잘 가꾸어진 꽃밭이여서 그 옆을 지나가기만 해도 향기로운 냄새와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있는 것이다. 당연히 행인들은 물론이고 그 집에서 사는 사람도 긍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찰 것이다.
하지만 못생긴 사람은 집앞이 온통 쓰레기 천지인 것이다. 자의로 쓰레기를 쌓았든, 남들이 무심코 던진 심한 말이 쓰레기가 되어 널브러진 것이든 그 앞을 지나가면 고약한 냄새가 나고 볼품 없어서 사람들이 무시하는 것이다.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이야 잠깐이지만 그 환경속에서 사는 사람은 얼마나 괴롭겠는가? 외모가 살면서 별 것 아닌 문제라 생각하는가?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비단 외모 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콤플렉스 및 실패에 잡아먹힌 자아상은 늘 이런 고통을 받는다.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왜 너는 평범한 사람만큼 못하느냐 비난을 하면 평범한 사람보다도 두 배의 고통은 더 받을 것이다.
실패한 자아상에서 벗어나는 법.
실패한 자아상에서 벗어나는 법은 그리 간단하진 않다. 그래도 방법을 설명하자면 먼저 외부의 환경을 바꾸고, 머릿속의 생각을 바꾸며, 실패한 분위기를 걷어내고 원하는 분위기로 채우면 된다.
환경(시각적으로 접하는 주위 환경)이 바뀌면 자연스레 생각이 바뀌어가며 생각이 바뀌면 나를 두르고 있는 분위기도 달라지기 시작한다. 분위기는 생각의 흐름을 바꾼다. 분위기가 바뀌면 생각도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면 내 행동도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주위 사람들도 긍정적인 분위기를 보고 모여들기 마련이다.
한때 깊은 수렁에 빠져서 스스로는 그곳에서 나올 수 없었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며 생각이 바뀌고 차츰 내면이 바뀌자 자연스레 나를 삼킨 자아상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이 회복의 경험은 어떠한 종류의 실패에 잡아먹혔든, 모든 사람이 겪어야 할 회복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실패로부터 받은 선물
실패한 자아상은 반드시 벗어나야 할 함정이지만 실패 자체는 우리를 깊어지게 만드는 과제이기도 하다. 실패 한번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은 실패에 타협하거나 도전해본 적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결국에 실패를 마주하게 된다. 천재든 둔재든 언젠가는 넘기 어려운 벽에 마주하고 좌절하게 된다. 우리는 이것을 보통 슬럼프에 빠졌다고 말한다. 실패한 자아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이러한 실패를 조금 일찍 겪었을 뿐이다.
실패의 가장 큰 유익은 내면의 깊이가 깊어지는 것과 나와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에게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깊이가 깊어지게 됨으로써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를 갖추게 되고, 외부로는 나와 같은 아픔을 겪었던 사람들을 품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일찍이 실패를 겪고 딛고 일어선 사람은 나이에 상관 없이 단단한 내면의 깊음을 느낄 수 있다. 반면에 실패에 합리화하거나 도망치기만 했던 사람들은 어딘가 편협하고 도통 타인을 품을 줄을 모르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