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것

인생의 메인 퀘스트

by HeukYi
9.


내게는 불같은 시절이 있었다. 힘을 쥐는 법을 배웠고 싸우지 않고 이기는 요령들을 배웠다. 배운 것을 활용할 수록 승리는 늘어갔고 밑바닥에 있던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워낙 타오르던 시기인지라 당시엔 힘이 최고의 덕목인줄 알았다.


그러나 치고 올라가는 것과 조직을 품는 다는 것은 다르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내 밑으로 나 같은 후임 몇이 들어오자 곧 깨달았다. 드센 성격을 가진 사람을 품는건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구나. 나 때문에 불편했던 사람들이 여럿 있었겠구나.


(그렇다고 드세기만 하고 뭔가를 못했다는 말은 아니다. 드센 것과 탁월한 정도는 구분 짓는 애송이였다.)


시간이 지나고 힘을 어떻게 써야하는 지 배웠다. 내가 배운 바, 힘은 중요하다. 힘이 있으면 때론 남을 상처 입히기도 하지만 힘은 질서를 바로 세우기도 하고 소외된 사람에게도 이목을 실어줄 수 있다. 힘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용할 때 종종 추해진다. 올바른 힘 사용 법은 내부로는 질서를 세우고, 외부로는 위험성을 억제할 수 있을때 가장 옳게 사용하는 것이다. 나의 이득과 공공의 이익이 부합할 때, 그 때가 가장 힘을 사용하기 좋은 때라는 것을 배웠다.


태동


그러나 여전히 갈 길은 멀었다. 공공의 안녕을 위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위한 상황인가? 조직에 튀는 사람들의 개성을 조용히 누르는 것? 조직 내에서 적당히 능률을 내며 조용히 묻혀가는 것? 이런 것들을 위해 힘을 써도 되는 것인가?


상상해보라. 만약 당신이 당신의 사장을 엄청나게 부요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데 그렇게 하면 당신의 일감이 늘어나게 된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유지하면 당신은 적당히 힘들고 적당히 인정 받는다. 당신은 당신의 사장을 위해 되돌아오는 것 없이 최선을 다해줄 수 있는가? 혹은 당신의 후임은 거칠고 드세다. 그와 함께 있는 것 만으로 힘들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의 능력으로 그의 기를 죽이고 그를 다른 사람처럼 평범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는가? 그것이 정말로 옳은 일일까?


당연히 대답은 열심히 하는 것. 그리고 후임의 기세를 죽이지 않고 품는 것이라는 것이다. 원래 남의 사업이 내 사업보다 쉬운 일이다. 그러니 남의 사업에서 최선을 다해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없다면 내 사업에서도 좋은 결과는 얻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다. 사실 정말 그런지 그렇지 않은 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것은 사고 방식의 문제이다.) 그리고 후임의 드센 특성을 누르지 않는 것, 그 어떤 조직이든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중요하다. 국가에 군인이 있듯, 회사에 보안 요원이 있듯, 어느 조직이든 발톱을 키우지 않는다면 조직은 충분히 강해질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위의 답이 정답인지 아닌지는 잘 모른다. 중요한 것은 나의 사고가 확장됐다는 것이다. 나는 어떤 것이 올바르게 힘을 쓰는 것일까 고민을 하며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 종종 쾌거를 맞이하기도 했다. 나는 닳고 아물고 단단해지며 점차 바로 볼 수 있게 되었고, 점점 조직을 바라보는 관점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안에 무엇인가가 태동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더 이상 나의 안녕을 위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사람들의 행복을 보며 사고하고 움직이는 관점이었다. 그것은 사랑의 관점이었다. 나는 비로소 사람들을 위한 올바른 일들이 무엇일까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할아버지의 관점


오래 전, 스무살에 군대에서 그런 생각을 했었다. 군대에서의 2년조차 시간이 지루하게 가는데 마흔이 되고 쉰이 되어도 나의 남은 생은 사십 년 가까이를 더 살아야 한다는 걸. 심지어 젊은 조차 시들어버린 중년와 노후의 삶에 무슨 낙으로 삶을 살아갈까? 최대한 동안이 되어서 아내랑 즐겁게 노후를 지낼까. 일찍이 은퇴하고 세계 곳곳을 여행해야겠다. 아니면 반려 동물이라도 키우며 젊어서 못한 일들을 할까.


그러나 지금은 조금 다른 관점으로 노후를 바라보게 되었다. 내가 노년이 되면 자식들이 있을 것이다. 자식의 손주들까지 보고 있겠지. 나는 분명 멋진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론 부족하다. 나 뿐만 아니라 내 가문이 행복을 누릴만큼 강해져 있어야 한다. 게다가 나의 혈육들 뿐만 아니라 내 젊음을 다 바쳐 만든 내 회사, 내 사람들. 그들이 행복함을 영위하리만치 강해져야 하고, 또 지혜로워져야 한다.


교육이란 중요하다. 하지만 교육의 되물림은 더더욱 중요하다. 내 사람들이 내가 영위할 자리를 누릴 만큼 지혜롭게 해야 하고, 그 다음은 그들이 그들의 사람들 까지 동일하게 되도록 교육하는 것을 옆에서 검토해야 한다. 내가 죽은 다음에는 늦다. 내가 살아있을 때 내 후계자들이 실수하는 모습을 보고 그것을 이겨내는 모습까지 옆에서 지켜봐줘야 한다. 거기까지가 내 의무인 것이다.


물론 이것이 옳은지, 혹은 또 다시 여러 사건들을 겪으며 달라지게 될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상상해보라. 쉴틈 없이 공공의 안녕을 위해 힘쓰는 모습을. 노년의 눈동자에 청년처럼 불타는 사랑이 깃든 노후를.


답은 언제나 사랑


우리의 뇌는 사랑하면 상대방을 나와 동일시 여긴다는 말이 있다. 사랑은 나의 확장인 것이다. 어떤 힘을 가지고 있든 나 하나만을 위한다면 그것은 우물 안 개구리일 뿐이다. 좁은 그릇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사랑은 힘을 요한다. 힘이란 외부의 위협은 억제하고 내부로는 질서를 세우는 것이다. 내 사람이 위험한데 무섭다고 침묵하는 것은 비겁한 것이며, 내 사람을 규율하지 않는 것은 방종하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성장을 요구한다. 성공은 사람의 지위를 높이지만 실패는 사람의 내면을 깊게 한다는 말이 있다. 모든 종교 중에서 가장 사랑을 강조하는 기독교에서, 기독교인이 특히나 실패하고 조그마한 것에 넘어지며 괴로움을 겪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유산을 남기는 것은 오로지 사랑 뿐이다. 명을 다해 오늘 밤 삶을 끝내야 한다면 모두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려 할 것이다. 결국 성장이든 아픔이든 고난이든 성공이든, 사건의 의미를 관통하는 것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인생이란 모험의 메인 퀘스트를 시작하는 것과 같다. 비로소 사랑 할 때에야 우리는 올바른 길을 찾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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