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 차원의 알아차림
18.
필자는 동성애, 바이섹슈얼, 논바이너리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보수적인 세계관을 파괴하는 사상을 옹호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러한 사상의 천국이 되어버린 미국을 보며 늘 의문을 가졌었다. 도대체 저 나라엔 무슨 일이 있었기에 소수자가 소수가 아닌 문화가 되어버렸는가?
그러던 어느날 넷플릭스에서 한 애니메이션을 보고 깨달았다. 아아. 미국이란 나라는 이야기 속에 담긴 프로파간다가 대중의 무의식에 스며들었구나.
이야기와 장기기억
예수는 교훈을 설명할 때 여러 종류의 비유를 통해 대중에게 설교했다. 그 이유는 아마 이야기 형식을 통한 전달은 장기 기억에 유리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억이란 단일 정보를 기억하기보다는 정보와 연관된 다른 정보들과 거미줄 처럼 엮일 때 더 잘 기억된다. 예를 들어 땅콩, 기차, 강아지와 같이 연관성 없는 단어를 기억하는 것 보다 땅콩이 든 기차를 급습하는 강아지 와 같이 단어의 연관성만 넣어줘도 뇌는 훨씬 쉽게 내용을 저장하게 된다. 가독성과 같은 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을 이용해 원하는 주제나 메세지를 이야기를 통해 깊숙히 대중에게 입력할 수 있다. 아동용 채널에 장례나 주방 용품 및 별의 별 광고가 들어가는 것은 결코 마케팅 오류가 아니라 고도의 심리학적 전략인 것이다.
전제와 프로파간다
이야기가 프로파간다를 심기 좋은 이유에는 또 하나의 원리가 들어가 있다. 바로 관점과 전제의 법칙 때문이다. 어떤 관점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것의 전제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나 다름 없다.
예를 들어 부자의 관점으로 세상을 본다고 한다면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전제를 받아들일 확률이 높다. 그것이 부자의 부유함을 합리화하기 좋기 때문이다. 선한 주인공의 시점이라면 권선징악의 전제를 받아들일테고, 빌런 히어로의 시점이라면 사적제재의 전제를 받아들일테고, 논바이너리 주인공의 시점이라면 성소수자 옹호 전제를 받아들이기 쉬울 것이다.
이처럼 작품의 직접적 주제가 아닌 주인공의 관점과 전제의 관계를 통해 대중들에게 어떠한 프로파간다를 심을 수도 있으므로 어떠한 작품을 볼때 어딘가 불편한 감정이 든다면 주의할 필요가 있다.
영적인 전쟁
필자가 보았던 모 작품은 주인공이 무성의 외계인인 작품이었다. 작중 내내 외계인은 인간에게 해악을 끼치지만 그것을 유머로 포장하고 자꾸 논바이너리의 관점으로 느끼는 소외감이나 이점등이 에피소드에 나오는 것을 보며 결국 작품을 꺼버렸다.
점차 논바이너리에 대해, 또 인간에게 해악을 끼치는 것에 대해 당연하게 느껴지는 느낌에서 불편함 뿐만 아니라 모종의 악의를 느낀 것은 단순한 필자의 피해의식만은 아닐 것이다.
이야기는 인간의 무의식 영역을 자극하며 알게 모르게 메시지를 심기에 효율적이다. 어떤 메시지나 이야기가 거짓말이든 사실이든 그것을 접한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그 메시지가 마음에 심겨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중들은 자신이 무엇을 보고 듣고 있는지 종종 알아차림의 순간이 필요하다. 좋은 씨앗은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씨앗은 나쁜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