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과 사랑
17.
재미난 글을 읽었다. 예수는 사실 갱스터였다는 글인데 예수가 행한 오병이어의 기적은 사실 조폭의 회식 자리고, 베드로에게 깊은 물에 가 그물을 던졌더니 그물이 찢어지리만큼 많은 물고기를 잡았다는 구절을 베드로의 근력을 시험한 것이라며 등등의 내용으로 예수를 조폭으로 리모델링한 유머 글이었다.
그런데 조금만 더 상상을 더해보자. 만약 예수가 자신을 따르던 수천의 사람들을 군인으로 키우고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군량미를 마련했다면? 거기다 로마에 선전포고를 하고 전투 중 죽은 자들은 나사로를 되살린 부활 능력으로 다시 되살렸더라면?
그러하건데 필히 예수는 로마를 정복하고 말았을 것이다. 무한 군량미와 무한 목숨. 과연 이 조합을 이길 수 있는 군대라는게 존재나 할까? 국방비에 수천조를 쏟아 붓는 미군마저도 예수 앞에 무릎 꿇었을 것이다. 핵폭발을 내도 어쩔 도리가 없다. 단체 부활 하면 너가 뭘 할 수 있는데? 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농담이 아니다
이 얘기를 꺼냈던 건 사실 줄곧 꺼내던 힘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일어날 리 없는 망상이었지만 만약 예수가 진심으로 세계를 정복하고 싶었다면 세계를 정복했을 것이다. 실제로 예수를 로마군에 판 가룟 유다는 유대의 열심당원으로써, 예수가 이스라엘의 독립에 관심이 없는 것을 보고 실망하여 예수를 판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의 힘을 가지고 남을 몰락시키는데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 막강한 힘을 가지고도 가장 비참한 자리에서 죄를 뒤집어 쓰는 것을 택하고 말았다.
이것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힘이란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 가를 보여주는 최상의 모범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세계를 다스릴 힘을 가지고 세상을 섬기기로 선택한 것이다.
식칼과 흉기
예전엔 조폭이 사시미를 무기로 쓰기도 했다. 하지만 사시미의 원래 도구는 회를 뜨기 위함이다. 도구는 잘못이 없다. 어떻게 쓸 지 그것을 쓰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달려있을 뿐이다.
힘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힘을 옳게 쓴다면 조직의 규율을 세우고 외세로부터 가문과 국가를 지키는 방패가 될 것이다. 허나, 그것을 이기적으로 쓴다면 누군가에겐 필히 폭력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형태의 힘이든지 그것을 가지려는 자는 자신의 힘을 키우는 것 외에도 그것을 어떻게 쓸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동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가지지 못한 것 만도 못한 결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는 약육강식
모든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한다. 세계는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찬 곳이라고. 그것은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지만 결국은 나이가 들어가며 모든 아이들이 세상이 약육강식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세상은 힘이 아주 중요하다. 힘이 없다면 그 누구도 그 사람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 힘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힘을 사용하는 방향, 즉 근본적인 의도인 사랑으로 섬기는데 사용할 것이냐 아니면 자기 자신을 높이는 데 쓸 것이냐 오직 두 가지 뿐이다.
가인과 아벨, 뱀과 인간, 루시퍼와 예수. 성경에서 나오는 인물들의 가장 대조적인 차이점은 교만 혹은 섬김 사이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법이나 율법은 인간을 판단할 수 없다. 결국 인간을 판단할 것은 근본적인 의도, 사랑을 택하였느냐 교만함을 선택하기로 했느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