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의 미학

아메리카노는 티라미수와 함께

by HeukYi
13.


초등학생때 커피를 마시지 말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착한 아이였던 난 그 말을 듣고 커피를 입에도 대지 않고 멀찍이서 구경만 했다. 그러다 고학년이 되고 맞이한 수련회였던가. 복도에 커피 자판기를 마주하고 말았다.


그날의 충격은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어른들의 욕심으로 아이들에게 나눠주지 않는건줄 알았던 금단의 음료는 너무나도 맛이 없고 쓰라렸던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런걸 돈 주고 먹는건지. 나의 첫 커피 경험은 그렇게 안좋은 인상만 남겼다.


그러나 지금 와서 돌이켜보기를, 그 날의 커피가 쓰라린 이유는 그저 당시의 자판기 속에 '티라미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맛이란 조화다. 커피의 쓴 맛을 커버해주기 위해선 대등한 힘을 가진 무엇인가가 함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맛이란 조화


우리는 조화로운 것을 좋아한다. 눈코입도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예쁜 얼굴이고 소리도 화음과 불협화음이 함께 어우러질 때 명곡이 된다.


시끄러운 사람이 있으면 조용한 사람도 있어야 집단이 조화롭고, 외향적인 사람이 있으면 내향적인 사람도 있어야 안정되는 법이다.


커피는 몹시도 쓰린 맛이다. 그저 커피 한 잔으로는 조화로운 맛을 얻을 수 없다. 하지만 쓰라린 커피에 달콤함을 넘어, 부담스러우리 만큼 달달한 티라미수가 입속에 들어오면, 우리는 깜짝 놀라듯 커피로 미각을 씻어내려 한다.


그 과정에서 부담스러운 단맛은 씻겨 내려가고 우리는 입속에 어우러진 쓰라림과 단맛의 공존을 얻을 수 있다.


마치 조개 구이에 소주를 삼키듯, 삼겹살에 상추와 깻잎으로 쌈을 싸듯, 잘 익은 고등어 살점을 뜨듯한 흰쌀밥 위에 올리듯 두 개의 강렬한 맛이 입안에 함께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것이다.


커피를 맛으로 즐기는 사람들


기억하자. 커피는 티라미수와 함께. 하지만 커피를 맛이 아닌 경험과의 조화로 마시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특히나 바쁜 현대인들은 그러한 사람들이 많은데 간단히 설명하자면,


연인과 오붓하게 마시는 커피 한잔, 바쁜 업무 속에서 피로를 달래며 마셨던 커피 여러 잔, 조용한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마셨던 커피 한 잔.


이러한 커피들은 달달했던 기억, 열정적이었던 기억, 그리고 한적한 여유로운 기억들과 커피의 쓰라림이 연결되어 특유의 조화로움을 낳은 것이다. 즉, 자신은 커피의 맛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커피와 함께 했던 그날의 인상적인 경험들을 티라미수 삼아 함께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