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펭귄

외로운 여정

by HeukYi
20.


그 펭귄을 아시나요? 2007년 베르너 헤이조크 감독의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한 펭귄은 무리를 따라 보금자리로 가지 않고 갑자기 산으로 오르는 기행을 보였습니다.


다큐멘터리 팀은 그 펭귄을 다시 무리로 되돌려보았지만 펭귄은 다시 무리를 이탈, 다시 산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러한 장면에 펭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던 나레이터는 'BUT WHY?'(그러나 왜?)라는 멘트를 달았고 이것은 근래에 들어와 하나의 밈이 되었습니다.


허무주의 펭귄


이 펭귄에게 달린 이름은 허무주의 펭귄. 자신의 본능을 거스르고 결과적으로 죽음이 기다리는 여정을 떠났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실제로 이 펭귄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다큐멘터리에 나오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펭귄의 끝을 예상했습니다.


먹이와 동료를 떠난 펭귄이 직면할 운명은 죽음일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재밌게도 이 밈의 의도는 허무가 아닙니다.


산으로 향하는 펭귄의 행동은 기행처럼 보이지만 미지를 향한 도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정말로 남극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저 산맥 뒤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현대인


이 펭귄이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이유는 펭귄의 삶과 우리가 닮아있기 때문입니다. 먹이를 구하고 무리를 따라 움직이는 반복된 삶과, 챗바퀴 돌듯 어제와 오늘이 같은 현대인은 본질적으로 그 의미가 같기 때문입니다.


물질적인 필요를 위해 기계적이 삶을 살아가는 것은 펭귄과 우리 모두 같습니다. 하지만 산을 오른다는 것은 전혀 물질의 영역이 아닙니다. 정신, 혹은 영적인 영역입니다.


현대인이 대단한 성공을 거두는 것은 미신 처럼 느껴지는 세상입니다. 이 혹독한 세상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바보 처럼 느껴지는 시대입니다. 모든 것은 만물주의이며 인간의 정신은 그저 뇌가 만들어낸 것 같은 환각처럼 여겨지는 지금. 우리의 영혼은 이 놀라운 펭귄의 모험에 깊은 울림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도대체 왜?


깊은 슬픔을 향한 공감


현대인은 각자의 삶에 주어진 과제를 피할 수 없습니다. 펭귄이 무리를 따르듯, 우리 또한 사회 속에서 우리의 본분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펭귄이 산을 올랐을 때 우리의 마음이 울린 것 처럼, 우리는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존재하는 동물이 아니란 것을 느낍니다.


산은 비유입니다. 정신적인 의미를 쫓는 것. 현대인은 과학과 무거운 과업으로 삶에 대한 의미를 잃었지만 그것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아버지라는 이름의 의미. 나라는 의미. 돈을 버는 의미. 가족에 대한 의미. 사랑에 대한 의미. 꿈과 노력에 대한 의미. 그러한 의미에 대한 물음이 스스로에게 향하고 우리 존재의 의미가 회복될 때, 어쩌면 우린 잠시 잠깐 세상에 혼자가 된 깊은 외로움을 느낄 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의미가 퇴색되는 세상의 흐름에 반하여 다른 길을 걷는 구도자들의 숙명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