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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샤 Jul 20. 2023

두 돌 생일파티(上)

<주간 쌍둥이>

  새벽 3시,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서 눈이 떠졌다. 소화제를 영양제 먹듯 먹고 급체를 밥 먹듯이 하는 나였기에 바로 알 수 있었다.

  '이건 급체다!'

  자기 전에 먹은 떡볶이가 원인이었다. 조금이라도 정신이 멀쩡할 때 약을 먹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약통을 꺼내 소화제 2알을 입에 쑤셔 넣었다. 그러고 나서 옆 방에서 자고 있는 여비를 흔들어 깨웠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어찌나 위로가 되던지… 그에게 대뜸 사랑고백을 할 뻔했다.

  "여비야~ 손 따줘…"

  자다 깬 여비는 졸린 눈으로 나의 상태를 확인한다. 땀에 젖은 머리칼과 웃음기 제로의 얼굴. 즉각 심각성을 인지한 그는 몸을 일으켜 사혈기를 찾아온다. 그 사이 나는 흐르는 식은땀에 의해 잠옷이 흠뻑 젖는다. 여비는 전문가의 손놀림으로 손가락 열개 발가락 열개에 구멍을 내 막힌 혈을 뚫어준다. 거실 바닥에는 피 묻은 휴지들이 쌓여간다.

  "소화제 먹었어?"

  "응"

  "언제?"

  "3시에..."

  시계는 어느덧 3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다. 여비는 심각한 표정으로 알 수 없는 약을 2알 가져온다.

  "이거 더 먹어"

  "아까 먹었는데?"

  "또 먹어, 괜찮아"

  정말 먹어도 되는 것인지 의심스럽지만 지금은 대꾸할 체력이 없다. 일단 주는 데로 받아먹고 여비의 마사지까지 받고 나자 상태가 좋아지기 시작한다. 식은땀이 더 이상 흐르지 않았고 배가 살살 아프온다. 식체 후 화장실에서 쏟아내는 일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변기에 아무리 앉아있어도 아무런 신호가 오질 않는다. 아뿔싸, 여비가 가져다준 약이 바로 지사제였던 것이다. 불편한 속을 달래지도 못한 채 5시가 되었다. 엄마를 찾는 추뚱이의 울음소리에 서둘러 침실로 들어갔고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아이를 재우다가 같이 잠들어 버렸다. 


  아침 9시, 이번에도 나와 방뚱이를 깨우는 것은 추뚱이었다. 힘겹게 일어나려 해 보지만 두통은 여전하다.

  "엄마~"

  귀여운 목소리로 아침을 알리는 추뚱이다.

  "응~ 엄마 아파~"

  "아파요?"

  "나가~ 나가~"

  아프냐고 물어보는 아이는 방뚱이고, 눈 뜨자마자 나가자고 조르는 건 추뚱이다.

  "엄마 머리 아파~ 호 해줘~"

  호~ 해달라는 요청에 누가 누가 호~ 잘해주나 배틀이 붙었다. 방뚱이는 깊은 호흡으로 '후~~~~~후~~~~', 추뚱이는 스타카토 호흡으로 '호-호-호-호-호-'하며 경쟁을 한다. 분명 머리가 아프다고 했는데 코에다 입김을 불어주는 바람에 아침 입냄새 공격을 받아야 했지만 덕분에 두통이 사라졌다. 약과 마사지, 시간으로도 사라지지 않던 두통을 없애는 힘. 그것은 아이들이 내게 주는 엔돌핀이 아닐까.


  "맘마 주세요~"

  눈을 뜨자마자 맘마를 달라고 하다니, 정말이지 위대한 아이들이다. 쌍둥이들에게 밥을 먹이고, 귤을 먹이고, 까까에 주스까지 먹이고 난 후 대청소를 시작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삼촌이 뚱뚱이들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오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방문은 뚱뚱이들을 춤추게 했다. 뚱뚱이들은 특히 삼촌을 좋아한다. 영상통화를 하면 계속 삼촌만 찾는다.

  "따뚠~"

  "쭈총~"

  아직 삼촌이란 발음이 되지는 않지만, 이 말은 누가 들어도 '삼촌'이다. (아님 말고) 그렇게 오매불망 기다리던 삼촌이 막상 눈앞에 나타나면 눈을 마주치기도 부끄러운지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착 달라붙어 있다. 쌍둥이들이 삼촌과 내외를 하는 동안 나는 생일케이크를 준비했다.


  조카들의 생일이면 항상 케이크를 샀다. 생일자를 앞에 앉혀두고 하얀 생크림 케이크에 초를 꽂아 불을 붙인다. 그러면 누군가 일어나서 전등 스위치를 내리고 동시에 나머지 일행들의 생일 축하 노래가 시작된다. '사랑하는 OO의~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가 끝나면 첫째 조카가 초를 후~ 불어 불을 끈다. 그러면 다시 불을 붙이고 또 노래를 부른다. '사랑하는 △△의 생일 축하합니다~' 이번엔 둘째 조카가 후~ 하고 불을 끈다. 이게 한 세트이다. 기본 3세트는 반복한 후에야 케이크를 먹을 수 있다. 뚱뚱이들도 평소에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며 케이크 그림에 후~ 하고 부는 무한반복놀이를 하곤 했기에 나는 여러 개의 초를 준비했다. 그러나, 생일 축하 노래를 한 곡 이상 부르는 일은 없었다.

  뚱뚱이들에게 케이크 한 조각과 포크를 쥐어주고 어른들도 케이크를 나눠 먹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의 주제는 추석맞이 가족여행이다. 장소는 제주도로 정해졌다. 각자 하고 싶은 체험이나 가고 싶은 명소가 있는지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제주도에서 가고 싶은 곳은 딱 한 곳이었다. 바로 요조가 운영하는 서점인 '책방무사'이다. 책을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들을 데리고 숙소 반대편에 있는 서점에 가자고 하면 과연 누가 좋아할까? 며느리가, 형수가 가자고 하니 군말 없이 따르겠지만 얼마나 시간낭비라고 여길까? 제주도 까지 와서 무슨 책방이냐고 하지 않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책방무사'의 ㅊ도 꺼내지 못하고 대화는 끝이 났다.


  차로 30분을 달려 송도현대프리미엄아울렛(이후 송현아)에 도착했다. 쌍둥이들과 함께 있으면 언제나 시선이 집중된다. 오늘은 하필 추뚱이가 코에 밴드를 붙여달라고 하는 바람에 개구쟁이 이미지까지 더해져 더 많은 이목을 끌었다. '어머 귀엽다~', '쌍둥인가봐' 하고 수군대는 소리를 뒤로하고 반미를 파는 식당에 들어갔다. 중학교 때부터 친구인 연과 함께 갔던 베트남 여행에서 먹어본 기억이 난다. 유명한 맛집이라고 연이 데려온 곳이 바로 반미전문점이었다. 질긴 쌀빵에 알 수 없는 맛의 소스와 속이 꽉 찬 반미는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앞에서 연이는 맛있다며 와구와구 먹는다. 대체 이걸 무슨 맛으로 먹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베트남 현지에서 먹었던 반미보다 송현아에서 먹은 반미가 오히려 맛있었다. 한국인에게 맞춰 변화를 주었나 보다. 역시 현지음식보다는 퓨전이지.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소스 묻은 손을 내 옷에 닦는 추뚱이를 보고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아… 아끼는 옷인데…"

  그날 내가 입은 옷은 2023 서울국제도서전 헤엄출판사부스에서 구매한 '새 마음으로' 티셔츠였다. 한정판일 뿐더러 흰색이었다. '오 마이갓' 순간 머리가 하얘졌지만 체념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 애 키우는 엄마가 흰색 옷은 선 넘었지…' 아끼는 옷을 입고 나온 나를 자책하며 추뚱이의 손을 물티슈로 박박 닦아주었다. 아주 힘껏.


  본격적인 쇼핑타임이 시작되었다. 송현아는 천국이었다. 아기옷들은 어른옷만큼이나 비싸다. 귀엽다고 이 옷 저 옷 개념 없이 사다 보면 금세 지갑이 탈탈 털리고 만다. 평소 나는 예쁜 옷을 보다 저렴하고 다양하게 입히기 위해 브랜드 옷보다는 인터넷이나 지하상가를 주로 이용하고, 중고마켓도 애용하는 편이다. 그런데 송현아의 어느 매장에 중고마켓보다도 저렴한 옷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눈이 뒤집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 이건 사야 돼' 기회는 이때다 거침없이 옷을 챙긴다. 눈이 돌아간 나를 보며 여비가 한 마디 한다.

  "왜 이래? 정신 차려… 충동구매하지마!"

  인터넷가격보다 절반이상 저렴한 가격 앞에서 정신을 차릴 수 있겠는가? '뚱뚱이들아. 이제 매일매일 다른 옷 입혀줄게!!' 어느덧 열 벌이 넘는 옷을 손에 들고 있는 나에게 점원은 특유의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쇼핑 바구니를 가져다준다.

  "여기 담으세요"

  "감사합니다"

  불현듯 밀려오는 창피함에 얼굴이 빨개졌다. 가게를 둘러보니 흥분한 사람은 나뿐이었다. '다들 이 정도 가격에 익숙한가? 나 지금 촌스러운 건가?' 하기사 어린 쌍둥이들과의 외출은 쉽지 않은 나는 주로 인터넷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들에게 이 정도 외출은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태연하게 정말 필요한 옷만 바구니에 담았다. 나름 고르고 골랐는데도 나중에 영수증을 보니 15개의 가격이 찍혀있다. 그런데 5만원도 나오지 않았다. 5만원이면 좋아하는 아동복 쇼핑몰에서 티셔츠 세장밖에 살 수 없는 금액이었다.


  광란의 쇼핑을 마치고 우리는 저녁을 먹기 위한 식당을 찾았다. 한식을 먹자는 나의 의견을 무시한 채 여비가 고른 식당은 고기위주의 텍사스 식당이었다. 여기서 내가 비건임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여비뿐이다. 플렉시테리언*인 나는 평소에는 채식을 하지만 시댁 어른들이 계신 장소에서는 비건임을 티 내지 않고 육식을 한다. 여비는 의도적으로 비건인 와이프가 고기를 먹을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든 것이다. 여비는 항상 이런 식이다. 비건선언을 했을 때도 '널 응원해', '나도 같이할게'라는 반응까지 바라지는 않았지만 내심 어느 정도는 지지해 주길 바랐다. 그러나 그는 생각보다 이성적이었다.

  "그래, 비건 하는 건 좋지만 나에게 강요하지는 마"

  한 번은 매사에 날카롭게 반응을 하는 날 보며 여비가 말했다.

  "비건 안 하면 안 돼? 당신, 비건하고 나서 너무 예민해졌어."

  배란기였다. 일시적으로 예민해진 건 호르몬 탓이었는데 매번 비건 탓으로 돌리는 여비다.

  "지금은 젊으니까 모르겠지만 나중에 영양불균형 온다. 후회할 거야"

  비건을 시작하고 안 하던 요리도 하면서 나름 영양 밸런스를 맞춰가며 골고루 먹고 있는데도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고기를 먹어야 한다며 가끔은 강요 아닌 강요까지 한다. 특히 이렇게 외식하는 날엔 고기를 시킨 후 먹으라고 권유한다. 날 걱정해서 하는 행동인 것은 알지만 비건인 나의 입장에서는 불쾌한 일이다. 나는 여비에게 채식을 하자고 강요하지 않는데 여비는 왜 나에게 고기를 먹으라고 강요하는 걸까.


  이런 상황을 모르는 가족들은 주문을 하느라 바쁘다. 나도 메뉴판을 훑어보았다. 어쩜 메인메뉴는 하나같이 고기가 들어가는 건지. 아가들 핑계를 대면서 고기가 들어있지 않은 사이드 메뉴를 4개나 시켰다. 미디움으로 구워진 스테이크가 나왔다. 눈길도 주지 않으려 하는 나에게 여비의 눈빛이 말을 건다.

  '빨리 먹어라'

  흥, 어쩔 수 없이 접시에 한 점을 옮겨 담고 샐러드 위주의 식사를 하며 아이들에게 밥을 먹였다. 너무 안 먹어도 눈치가 보일 수 있어 작게 난도질한 스테이크도 조금씩 먹었다. 뚱뚱이들을 챙기느라 정신없던 찰나 접시 위에 스테이크가 한 점 더 놓여있었다. '헐… 삼촌이 둔 건가?' 애들을 챙기느라 못 먹고 있는 날 배려해서 챙겨준 삼촌의 마음이 느껴졌다. 삼촌을 생각하면 남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꾸역꾸역 다 먹고 나자 햄버거 1/4조각이 접시 위에 놓여 있었다. 이번에도 삼촌이 챙겨준 것이었다. '아 고마워요, 그런데 저 비건이에요!'라는 말이 턱밑까지 올라왔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그냥 먹었다. 불쌍한 소가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보다는 내가 먹는 게 나으니까 열심히 접시를 비웠다.

  식사를 하는 내내 방뚱이가 집중을 하지 못했다. 평소 같았으면 나보다도 많이 먹는 방뚱이었다.'왜 저러지?' 하며 걱정스럽게 방뚱이를 바라보자 스멀스멀 구수한 냄새가 올라왔다.

  "방뚱아~ 응가했어?"

  "응~"

  아… 어쩐지… 맘마에는 항상 진심이었던 방뚱이가 이렇게 안 먹는데, 엄마란 사람은 아빠랑 눈빛싸움하느라 딸내미가 응가한 줄도 모르고 있었다니!! 미안한 마음에 방뚱이를 안고 화장실로 달렸다. 싼 지 오래된 응가가 사타구니에 잔뜩 끼어서 굳어있었다.

  "미안해 얼마나 불편했을까…"

  응가를 하면 바로 '응가~응가~'를 외치는 추뚱이와는 달리 방뚱이는 응가를 하고도 티를 내지 않는다. 다행히(?) 응가냄새가 심한 편이라 멀리서도 냄새를 맡을 수 있어 오래 방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거실에서 응가를 했는데 부엌에 있던 내가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집이라는 막힌 공간과는 달리 탁 트인 밖에서는 종종 방뚱이의 응가는 방치되곤 한다. 상쾌해진 방뚱이와 배가 빵빵해진 추뚱이를 웨건에 태우자 둘이 꼭 붙어 눕는다.

  짧은 다리로 뛰어다니느라 많이 피곤했나 보다. 10분 정도 누워서 체력을 보충한 쌍둥이들은 송현아를 활보하고 다닌다. 손도 잡지 않겠다고 하고, 뒷짐을 진 채 신나게 돌아다닌다. 매장 문이 열리면 혼자 들어가서 인사하고 나오기도 하고, 앞뒤 재지 않고 직진하다가 시야에서 사라진 엄마와 할머니를 찾는다고 헤집고 다니기도 하며 민폐를 끼친다. 맘충소리 듣기 전에 억지로 끌고 와서 다시 웨건에 태웠다.


  돌아오는 길에 뚱뚱이들은 코를 골고 잠이 들었다. 운전하는 여비에게 말했다.

  "하루가 왜 이렇게 길지?"

  "나도, 너무 피곤해…"

  새벽부터 위 속의 떡볶이와 씨름을 해서 그런가 유난히도 길고 빡센 하루였다. 오늘은 씻지도 말고 그냥 자야겠다. 몸이 천근만근 무겁다. 



*플렉시테리언 : 채식을 하지만 때때로 육식을 한다. 나는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은 자리에서만 육식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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