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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샤 Jul 27. 2023

두 돌 생일파티(中)

<주간 쌍둥이>


  쌍둥이들의 생일날. 쌍둥이들에게 보다 즐거운 생일을 만들어주기 위해 엄마는 아침부터 바쁘다. (사실 어린이집에서 다 해주고, 엄마가 할 일은 별로 없다)


  오늘의 주인공들을 위해 특별히 메이드 의상까지 다림질해 두었다. 이제 2살이 되는 아가들이지만 원피스를 입혀주면 그렇게 좋아한다. 천상 여자인 이놈들 머리를 짧게 깎았으니 얼마나 속상했을꼬....


  머리를 짧게 자른 것은 3개월 전의 일이다. 당시에는 어찌나 매일 같이 싸움을 해대는지... 손에 잡히는 것이 머리카락이니 서로 머리끄댕이를 잡고 싸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물론, 아이들이 좀 싸운다고 해서 바로 머리를 밀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머리를 빡빡 밀어버리면 덜 싸우려나? 하고 벼르고 벼르던 어느 날, 잠깐 한눈 판 사이 추뚱이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 질질 끌려가는 방뚱이를 보았다. 이 장면을 보고 뚜껑이 열리지 않는 엄마가 있을까? 이건 달리 답이 없었다. 무조건 밀어야 했다.

  여자아이들의 머리를 미는 일은 정말이지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내 딸들 머리 하나 미는 데에도 양가 어른들의 허락이 필요했다. 그러나, 한 달이 넘는 설득에도 허락은 떨어지지 않았다. 어른들은 여자아이 머리카락은 절대 짧게 잘라서는 안된다고 만류하셨다. 그렇다고 해서 머리채를 쥐어 뜯기는 아이를 방관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결국, 어른들의 말씀을 무시한 채 이발을 강행해 버렸다. 아이들은 이발을 할 때도 울고 집에 와서도 하루 종일 울었다. 특히 방뚱이는 잊을만하면 떠오르는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한동안 슬퍼했었다. 3개월 동안 많이 기르긴 했지만 여전히 짧은 머리 스타일 덕에 동네 어른들의 대부분은 아들 쌍둥이라고 알고 계신다. 그러나, 우리 딸들은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좋아하는 천상 여자아이들이다.



  메이드복을 차려 입히는 데는 성공했지만 양말은 끝끝내 사수하지 못했다. 어쩌겠는가 아이가 신고 싶다면 신겨야지. 35도가 넘는 이 여름에 도톰한 크리스마스 양말을 꼬~옥 신어야 하는 방뚱이다. 방뚱이는 유난히 고집이 세다. 특히 등원 전 똥고집은 이길 수가 없다. 시간은 촉박하고 생일날 아침부터 울리기 싫었다. 자식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생일날 아침 방뚱이는 초록빛이 찬란한 발로 등원했다.


  쌍둥이 엄마는 두 아이를 등원시켜 놓고 바로 차의 시동을 켠다. 미리 예약해 둔 케이크를 픽업하기 위함이다. 무려 유기농 재료를 사용하는 베이커리에서 만드는 블루베리알이 살아있는 달지 않은 생크림 케이크이다. 유난쟁이 엄마는 절대 아무 케이크나 대충 먹이지 않는다. 고작 케이크 하나 픽업 하는데 40분이나 소요했다.


  케이크 픽업 후 오는 길에 미리 주문해 둔 떡까지 찾았다. 막 나왔는지 따끈따끈하다. 그때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의 재촉 전화가 왔다.


  "어머니, 케이크는 언제 오나요?"

  "지금 갑니다!!!!"


  부랴부랴 어린이집에  도착하여 케이크와 떡, 과자를 드린 후 경비실과 이웃집에 생일 떡을 돌린 후에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소파에 기대앉아 갓 지어 말랑말랑한 백설기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오, 보들보들 개 꿀맛!' 갓 지은 떡은 정말 맛있었다. 떡을 먹고 있자니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났다.


  할머니는 설날이 되면 방앗간에 떡국떡을 주문하셨다. 할머니가 방앗간에 가실 때마다 나는 할머니 손을 잡고 쫄래쫄래 따라가곤 했다. 할머니를 따라가면 방금 나온 따끈따끈한 가래떡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꿀, 설탕 다 필요 없다. 그냥 먹어도 쫀득하니 치즈처럼 쭉~ 늘어나는 환상적인 식감이다. 하루 종일 가래떡만 먹으라고 해도 먹을 수 있을 것만 같다.

  할머니는 작년 추석에 방뚱이로부터 전파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돌아가셨다. 명절에 내려가기 전에 소아과를 들렸다가 옮은 바이러스였다.(망할) 갑자기 떠오른 할머니 생각에 제멋대로 흘러버린 눈물이 떡으로 뚝 떨어졌다. 눈물 젖은 떡이라니. 아직은 눈물 없이 할머니를 떠올릴 수 없나 보다. 방뚱이로인해 돌아가신 할머니, 그리고 그 할머니를 쏙 빼닮은 방뚱이. 그래서일까 할머니의 빈자리를 방뚱이가 채워주고 있다는 느낌이다.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 장면을 바라보며 묘한 감정이 든다. 할머니를 빼닮은 방뚱이를 꼬옥 안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해지고 하루의 고단함이 풀리곤 한다. 가끔은 요 녀석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나를 꼬옥 안아주기도 하는데, 그럴 땐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온몸에 사무친다.

  오늘밤은 누군가의  따뜻한 품이 그리운 밤이다. 그 품이 할머니를 닮은 방뚱이라면 더없이 좋겠다. 그러나, 이 작은 고슴도치 같은 녀석은 잘 때 만큼은 결코 곁을 내어주지 않는다. 아마도 나의 잦은 뒤척거림이 숙면에 방해가  된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등을 돌리고 자는 녀석.  나는 그런 방뚱이의 뒤통수에 코를 박고 잠을 청한다.

   눈물 없이 할머니를 생각할 수 있을 때까지 방뚱이라는 애착인형에 의지해본다.



*참고로 추뚱이는 스킨십을 별로 안 좋아함. 안기고 싶은데 안아주질 않음. 엄마 좀 안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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