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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샤 Aug 10. 2023

두 돌 생일파티(下)

<주간 쌍둥이>


  그날은 원래대로라면 생일파티의 피날레를 장식했었어야 했다. 비극은 생일파티 당일이었던 금요일 오후, 방뚱이의 코에서 제멋대로 줄줄 흐르던 콧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어린이집의 에어컨 바람에 또 콧물이 흐르는 것이겠거니 하고 구태여 병원 진료를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진료가 아닌 영유아 검진을 위해 방뚱이만 먼저 하원시키고 병원으로 향했다. 방뚱이는 몸 상태가 정말 좋지 않았는지 차 안에서부터 울기 시작했다. 어찌나 울어대던지 병원까지 가는 10분이 마치 100분처럼 느껴졌다. 기차화통 삶아 먹은 듯한 방뚱이의 울부짖음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어찌나 골이 아픈지 친할머니, 외할머니 모두 고개를 저을 정도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주차장은 만차 상태였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예약시간 보다 한 시간 일찍 도착했다는 것이다. 지하 2층으로 내려가는 길에 이미 주차를 포기하고 올라오는 차를 만나 후진으로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정말이지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웬수 같았다. 운전을 시작한 지 고작 3개월밖에 되지 않은 왕초보운전자인 나는 좁은 주차장에 들어가는 것조차도 벌벌 떠는데 이중 주차까지 되어있는 좁은 주차장을 후진으로 나와야 한다니... 이렇게 주차자리 찾기도 힘든 와중에 방뚱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한참을 씨름한 끝에 나가는 차량을 포착하고 빛의 속도로 달려갔다. 이때도 후진이었다. 또 이렇게 성장하는구나. (당시에는 뿌듯했지만 아쉽게도 운전실력은 그대로였다.) 주차를 마치고 방뚱이의 상태부터 확인했다. 40분 내내 운 방뚱이는 머리끝부터 기저귀 속 엉덩이까지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오 마이갓.

  1층 카페에서 수박주스로 목을 축이며 방뚱이를 진정시키고,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말려주니 예약시간이 되었다.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울음꼭지가 다시 틀어져버렸다. 여태까지 진정시키려 애쓴 애미의 노력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우는 아이를 달래 가며 키와 몸무게, 머리둘레를 측정했다. 여전히 키는 작고 몸무게도 적게 나가고 머리는 크다는 매우 흔한 데이터를 받아 들고 진료실에 들어갔다. 여자 선생님인데도 불구하고 울고 경계하기 바빠 도무지 검사를 진행할 수가 없었다. 열은 이미 38도를 훌쩍 넘고 있었다. 방뚱이의 상태는 검진 따위를 받을 컨디션이 아니었다.

  방뚱이의 진료와 심화검사 상담을 받는 내내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어찌나 신경이 쓰이던지. 상담이 끝난 후에 확인해 보니 부재중전화가 10건이나 찍혀 있었다. 그것도 전부 영상통화. 우리 모녀가 병원에 있는 사이에 추뚱이를 하원시킨 여비가 SOS 영상통화를 건 것이었다. 여비에게 영상통화를 걸자 눈물 콧물로 범벅된 추뚱이가 화면에 나타났다.

  "엄마~ 엄마~"(추뚱)

  "추뚱아~ 조금만 기다려~ 엄마 금방 갈게~"

  "기다려~ 갈게~"(방뚱)

  검진센터에서 선물을 받고 기분이 좋아진 방뚱이는 추뚱이에게 장난을 치면서 은근슬쩍 약을 올린다. 약국에서 약을 타자마자 부랴부랴 추뚱이에게로 달려가야 하는 애미는 오늘따라 하루가 긴 것 같아 깊은 한숨을 쉰다. 심신이 아프고 쑤신다.


  그날 밤, 방뚱이가 애처로운 목소리로 나를 깨웠다.

  "엄, 마~"

  "왜 그래?"

  "아파요~ 약~"

  "아파?"

  팔에 약을 발라달라며 고통을 호소한다. 그러고 보니 몸이 후끈후끈하다. 체온을 재 보니 39도였다. 해열제를 먹여 재웠으니 괜찮겠지라고 생각한 안일함이 문제였다. 애들이 한동안 안 아팠다고 감 떨어졌나. 혹시나 하고 추뚱이도 재 보니 37.9도였다. 옮아버렸다. (훌쩍)




  일정대로라면 주말 동안 외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이모네 가족들과 함께 마지막 생일파티를 하며 신나는 주말을 보낼 예정이었다. 밤새 열이 끓었던 두 아이를 데리고 다시 병원을 방문해 보니 둘 다 구내염이라고 한다. 생일파티가 취소되었음을 가족들에게 알리고 집에서 푹 쉬기로 했다. 하필이면 생일에 아프다니 안타깝구나. 

  주말 일정 중 취소할 수 없는 스케줄이 하나 있었다. 바로, 두 돌 기념으로 예약한 스튜디오 촬영이다. 컨샙은 '쇼미더머니'. 의상과 소품준비는 완벽했으나 가장 중요한 최상의 컨디션이 준비되지 못했다. 추뚱이는 그나마 포즈를 취하며 촬영을 즐겼지만 방뚱이는 계속 우느라 한 장도 건지지 못했다. 사실, 방뚱이는 아프지 않았어도 크게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50일을 제외한 100일, 200일, 돌 사진 속 방뚱이는 항상 울고 있기 때문이다. 스튜디오 자체를 싫어하는 아이인데 아프기까지 하니 제대로 된 사진을 찍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심지어 사진기사님이 남성분이셨다.(헉쓰) 애미가 사전에 여성 사진기사님을 요청했어야 했는데... 센스가 부족했다. 다음(기회가 생긴다면)에는 꼭 여성분께 부탁드려야지 다짐하는 초보엄마다.

  그날 밤, 방뚱이는 악몽을 꾸는지 잠을 설쳤다. 스튜디오 촬영이 힘들긴 힘들었나 보다. 덕분에 엄마의 눈 밑에는 거무스름한 다크서클이 자리를 잡았고 면역력이 떨어졌는지 덩달아 콧물까지 흐르기 시작했다. 망했다. 누가 그랬지, 엄마는 아플 자격이 없다고. 언제 들어도 명언이다.

  이번 감기는 유난히 지독했다. 마치 지긋지긋하던 코로나19에 다시 걸린 것 같았다. 몸살이 온 듯 온몸 구석구석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고 콧물은 줄줄 흘러 설거지를 하다 보면 콧물이 싱크대로 뚝뚝 떨어졌다. 이 정도였구나. 방뚱이가 칭얼댄다고 뭐라고 해서는 안 됐었구나. 많이 힘들었겠다. 방뚱이는 예민한 축에 끼지도 못하겠구나. 어른인 나보다 낫다...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방뚱이는 여전히 38.9도 추뚱이는 38.3도 애미도 38.3도로 고열파티가 열렸다. 아픈 나를 배려하여 여비가 아이들을 봐주고 잠시 작은방에 누웠다. 물론 그 덕에 여비까지 감기에 걸리기는 했지만 나부터 살아야지. 아픈 몸으로 밤새 열보초까지 서야 하는 애미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체력을 비축해 두어야 한다.

  방뚱이는 과거 야제증을 앓았던 경험이 있다. 심하지는 않지만 통잠을 자지 못하고 자다 깨서 소리 지르며 울다 다시 자는 식이다. 겨우 완치되었나 싶었는데 아프니까 다시 야제증이 도진 것 같다. 체감상 10초에 한번 꼴로 소리를 지른다. 열 번이 넘어가자 그만 좀 하라고 손을 잡아주려고 해도 뿌리친다. 소리 한번 '꽥'지르고 다시 잠이 드니 괜찮을 것 같지만, 문제는 잠귀가 예민한 내가 잠을 못 잔자서 미치겠다는 것이다. 잠도 못 잔 상태로 두 아이와 함께 보내는 일주일을 보내야 했다. 아니 버텨야만 했다. 빨리 나아서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을 때까지. 죽어라 버텨야 한다. 생일의 후유증이 크고도 길구나.






  아침 해는 뜬다. 그것도 매우 멀쩡하게.

  5분만 더 자고 싶은 무거운 몸을 애써 일으킨다. 육아 치트키 스티커모음집을 2개나 사놨는데 하루 만에 그것도 오전 중에 모두 소진되었다. 그리고는 질렸는지 더는 관심이 없다. 오후에는 또 다른 치트키인 도장을 꺼냈다. 찍으라는 종이에는 찍지 않고 소파, 벽, 바닥, 문, 몸.. 등에 찍어대는 통에 바로 압수했다. 큰일 났다. 이제 뭐 하고 놀아주지? 더는 준비된 놀이가 없는데? 하루 온종일 칭얼대는 두 아이와 삭신이 쑤시는 엄마는 대체 무슨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까.

  '아, 진짜... 영상 보여주고 싶다.'

  '참자. 어떻게 버틴 건데 여기서 무너질 순 없어.'

  현실 속에선 육아전쟁이 마음속에서 천사와 악마가 전쟁을 치르고 있다. 어린이집이 그립다.

  "어부바~ 어부바~"

  어부바와 일어나서 안아주기는 웬만하면 해주지 않는 것이 나의 육아 철칙이다. 한 아이를 안아주면 나머지 한 아이도 안아달라고 하기 때문이다. 24개월 동안 어부바를 해 준 횟수는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이다. 업히는 자세를 잡는 방법조차 모르는 추뚱이녀석이 어부바를 해달라고 난리다. 칭얼대는 소리에 지쳐 결국 어부바를 해 주었다. 그리고 홀로 남은 방뚱이와 신나게 놀아주었다. 최선을 다해 신나게. 과장된 리액션까지 동원해서 놀아주었다.

  "빼~ 빼~"

  자신은 꼼짝 못 하고 업혀있는데 방뚱이는 신나게 노는 것이 부러웠는지 이제 와서 포대기를 풀어달라고 한다. 추뚱이의 애절한 목소리에 갑자기 장난이 치고 싶었다.

  "어부바를 하기는 쉽지만 풀어나는 건 결코 쉽지 않을 것이야! 절대 안 풀어줄 테야. 흥!"

  추뚱이가 어부바를 싫어하게 하기 위해 일부러라도 끈질기게 버텼다. 그 뒤로 다시는 어부바의 어자도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아직까지는)


  저녁 식사 후 뒤처리를 하는데 너무 조용해서 고개를 들어보니 추뚱이가 거실에 누운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정신사나움의 아이콘인 추뚱이가 가만히 누워서 나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웠다.

  '애 상태가 저런데 설거지가 대수냐'

  설거지를 뒤로하고 약을 먹여 재웠다. 아이들이 곤히 잠든 모습을 보니 이제 와서 온몸에 힘이 빠지고 구석구석이 아파온다. 애미는 자기 자신의 안위보다 자식의 안위가 더 중요한 생존기계인가 보다. 아무리 아파도 자식들의 자는 모습과 미소 한방에 피로가 사르륵 풀려버리니 말이다. 심지어 내일을 살아갈 힘까지 생긴다. 이렇게 세 모녀가 아파서 골골대는 와중에 여비는 거래처 대표와 식사자리가 있어서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 예쁜 짓을 99번을 하고도 이런 날 한번 자리를 비우면 욕을 먹는다니. 어쩌겠는가. 하필 이런 날 자리를 비웠으니 할 말이 있어도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부부의 법칙이었다. 



  생일파티날 감기에 걸린 뒤로 열흘이 지났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이는데 칭얼대기를 멈추지 않는다.

  "아파요~"

  "안아~"

  "도대체 어디가 아픈 건데? 열도 없고 밥도 잘 먹고 응가도 잘하면서 대체 왜 그러는 건데?"

  돌아오는 대답은 '아파요'뿐이다. 혹시라도 진짜로 아픈 것일 수도 있으니 확인을 위해 병원을 방문했다.

  "또 오셨네요?"

  "선생님, 제가 보기엔 다 나은 것 같은데 아이가 입 속을 가리키며 계속 아프다고 해서요. 혹시 어디가 아픈 건지 구석구석 잘 좀 확인해 주실 수 있나요?"

  "음~ 아무리 봐도 아플만한 곳이 없네요~ 우리 추뚱이가 왜 그랬을까? 추뚱아~ 선생님이 비타민 사탕 줄 테니까 이거 먹으면 이제 안 아픈 거야~"

  "네"

  이 녀석 역시 엄살이었구나. 그 뒤로도 아프다고 할 때마다 선생님의 말씀을 언급하며 달래주니 잘 먹혔다.

  "아파요~"

  "선생님이 비타민 사탕 먹고 나면 안 아프다고 했지? 이제 안 아픈 거야~"

  "네~"

  역시 애들은 엄마말은 안 들어도 선생님말씀을 기똥차게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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