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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샤 Aug 17. 2023

잠 못 자는 밤

<주간 쌍둥이>


  "너 요새 잘 못 자는구나?"

  오랜만에 만난 아빠가 나를 보자마자 말했어. 다크서클이 짙어졌다고 말이야. 내가 잠을 푹 자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너 때문이야. 네가 감기에 걸리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나의 숙면을 방해하고 있거든.


  아마 첫돌 즈음이었을 거야. 너는 통잠을 자지 못했어. 잘 자다가도 '으애~' '악!~' 등 다양한 비명을 지르며 깨곤 했지.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잠에서 완전히 깬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어. 너는 마치 악몽을 꾸는 듯 비명을 지르고 울부짖다가 꾸물꾸물 다시 잠들곤 했어. 문제는 그 횟수였지. 하룻밤에도 5번에서 많게는 10번은 비명을 질렀어. 너에게 야제증이 생기고 세 달째 되는 날 한의원을 예약했어. 이대로 두면 발달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았거든. 그러자 거짓말처럼 통잠을 자는 거야. 그날 우리는 정말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잘 수 있었어. 새로 바꾼 유산균이 잘 맞았던 것인지, 나의 마사지가 통했던 것인지, 사리질 때가 돼서 사라진 건지는 모르겠어. 어쨌든 야제증은 치유되었고 예약을 취소했어.


  그 뒤로도 너는 잘 때 이따금씩 소리를 지르며 깨곤 했어. 어린이집에서 산타 할아버지를 만나 무서웠던 날, 사람이 많은 결혼식장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던 날, 키즈카페에서 스릴 넘치는 기구를 타며 놀았던 날과 같이 평소와 다른 경험을 한 날에는 어김없이 잠을 자지 못했지.


  사실 네가 자다 소리를 지르든 말든 나는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잠을 자도 상관없었어. 너는 울부짖으며 일어났다가도 내가 옆에 있다는 사실만 확인되면 다시 잠을 청했거든. 나는 그저 너를 무시하고 자면 되는 일이었어. 그런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어. 나는 남들보다 조금 더 예민한 사람이거든. 남들이 맡지 못하는 냄새를 맡고, 남들이 듣지 못하는 작은 소리를 듣고, 남들은 느끼지 못하는 맛의 차이를 느끼고, 피부가 약해 쉽게 두드러기가 나는 등 예민하지 않은 면을 찾는 것이 더 쉬울지도 몰라. 당연히 잠귀도 예민했지. 같이 자고 있던 누군가가 일어나서 나가려고 하면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나의 잠을 깨울 수밖에 없었어. 정말 피곤한 날이 아니고서야 깊은 잠에 들기 어려웠지. 그런 내가 그 크고 큰 비명소리를 어떻게 무시하고 잘 수 있었겠어. 네가 잠을 자지 못하는 날에는 나도 잠을 잘 수 없었어.


  이번 야제증은 지난 증상들과는 뭔가 달랐어. 그 '뭔가'가 뭔지 알아내기 위해 기록을 했어. 지난 3주간의 데이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아.


  0/0 22시 취침, 3시에 비명 지르며 깸

  6시까지 5번 깨서 나의 얼굴에 이불을 던짐

  (이불 덮어달라는 행동)

  0/0 21시 취침, 1시에 비명 지르며 깸

        이불 던지거나 비명을 지르며 6번 깸

  0/0 22시 취침, 3시에 비명 지르며 깸

        괴로워하며 비명 지르며 4번 깸

  0/0 21시 취침, 4시에 비명 지르며 깸

        4시에 잠이 깬 내가 자리를 비우자 바로 일어나서 나를 찾으며 움, 바로 들어가서 다시 재움.

        그 뒤로 소리 지르며 5번 정도 깸


  일정한 패턴이 있었고, 일어났을 때마다 반복되는 행동을 했어. 일반적으로 야제증은 잠이 든 후 2시간에서 2시간 반이 지난 후에 깨어나는데 반해 너는 충분히 숙면을 취한 후 새벽에 뜬금없이 깨곤 했거든. 그러고는 꼭 이불을 덮어달라고 요청했어. 그리고 자다 깼을 때 내가 옆에 없으면 나를 찾아 통곡하며 울었어. 너의 옆을 지키기 위해 나는 지난 3주 동안 육퇴를 하지 못했어. 함께 자고 함께 일어나야만 했어. 너는 왜 자꾸 깨는 걸까. 원인이 무엇일까. 나는 고뇌에 빠졌어. 스트레스 때문도 아니고, 아파서 그런 것도 아니고, 건조하거나 습해서 그런 것도 아니었어.


  답을 찾지 못한 나는 이번에도 한의원 진료를 예약했어. 그리고 그날 저녁, 너는 여전히 통잠을 자지 못했고, 나에게 이불을 던지며 말했지.

  "듭 주세요~"

  그 순간 네가 자다 깨서 이불을 덮어달라고 했던 지난밤들이 생각났어.


  야제증이 재발하기 전, 너는 평소에도 수시로 이불을 덮어달라고 했었어. 물론 자다 깨서가 아닌 자기 전에 한 행동이었지. 자기 전에 최소 10번 이상은 이불을 다시 덮어주었어. 그래서 나는 이번에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못 했던 것 같아. 너는 항상 자기 전에 이불을 덮어달라고 했으니까. 더운 날에도 추운 날에도 얇디얇은 너의 이불을 덮어달라고 말했으니까. 설마 추워서 덮어달라고 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에어컨 온도와 풍향을 재설정했고, 나는 다음날 한의원 예약을 취소해야만 했어.


  너의 야제증 소동은 이렇게 마무리되었어. 아니 그건 야제증이 아니었지. 너무 추워서 깬 것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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