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봄, 그 자리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담장 너머
수수꽃다리가 피어납니다.
소리 없이 피었지만
그 향기는 누구보다 깊습니다.
한 번쯤 다가와 주기를
말없이 기다리며
햇살에 고개를 드는 그 모습은
참 조용한 용기입니다.
연보라 꽃잎 하나하나에
오래된 마음을 묶어두고
흩날릴 바람에도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맡깁니다.
누군가는 그저 스쳐가는 봄의 장식이라 해도
수수꽃다리는
기억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오래 피어 있습니다.
그 담장을 지난 이들은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무언가 오래된 것을
가만히 떠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