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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에 Oct 17. 2019

나는 미국에 가서 슈퍼스타가 될래

집회 시위와 나의 유학과의 상관관계

2019.10.17


 나는  학기에 지은 죄가 많아서 18학점을  채워서 들어야만 했다. 그중 3개는 다른 학교에서 합동으로 진행하는  e-러닝이라서 성적이  나오거나 패스를 받지 못해도 "살려주세요 교수님." 못할지도 모르는 실정이었다.


졸업을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면서 졸업 시나리오를 썼고, 다큐멘터리 1편을 만들었으며 개발도상국의 아동노동에 대한 소논문을 쓰고 인류 역사의 산업기술사를 공부하며 엔진기관을 외웠고 간간히 이력서도 돌리면서 대외활동도 하겠다고 설치다가 울면서 그만뒀고 소비자심리, 특허법 공부 등등 4 동안 채워야 했을 교양을 억지로 머릿속에 집어넣으면서 졸업 사정회를 준비하고.. 아무튼 과부하가 걸리면서 살았다. 게다가 통학은 왕복 3시간이 걸린다. 서울에서 서울로 이동하는데 도대체 ...


 위에서 말한 다큐멘터리의 주제는 경복궁역 주변 흔히 서촌이라고 불리는 지역의 시위에 관한 내용이다.

필름 카메라로 찍었더니 쓸데없이 감성이 터진다. 하지만 이 만큼 갬성 서촌이 겪는 아이러니를 잘 표현할 수 없다. 위의 사진은 평소보다 적은 정도의 시위.
2016년 11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관련해 촛불 집회가 계속됐고 처음으로 청와대 앞까지의 행진이 허용됐다. (일몰 후) 집회행진의 자유가 주민들의 주거의 평온 권리보다 우선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청와대 주변엔 무려 다섯 개의 학교가 위치하고 있으며 네댓 개의 카페들과 푸르메 센터, 한두 개의 프랜차이즈와 편의점을 제외하고는 주민들이 살고 있는 '동네'이다. 박근혜 탄핵 이후 주민들은 집회도 끝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을 돌려내라는 시위가 계속해서 이어졌고 그것이 매주 토요일이다가 이젠 거의 매일 언제가 될지 모르게 불쑥불쑥 찾아와 주민들을 미치게 만들고 있다. 그들뿐이 아니다.

 전국 여러 단체의 여러 목소리가 이 좁은 동네로 모여들고 있다. (이곳은 정말 좁다, 애초에 집회를 위한 공간이 아니었을뿐더러 여전히 청와대 안까지는 행진하지 못해 입구의 도로 쪽에서만 집회를 허락하고 있다. 그리고 그 도로는 주민들의 생활 반경이다.


 창문을 모두 닫고 있어도 몇 시간 동안 음악소리가 들리고 마이크에 대고 소리를 지르면 온 동네 개들이 짖을 정도로 시끄럽다. 그 소음을 듣고 있다 보면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누구인지를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이다. 주말과 공휴일이면 어김없이 찾아와 아침부터 밤까지 기약 없이 스피커로 소리를 지르는 단체들이 있다.


 동네 사는 언니를 만났는데 그는 거실에서 서로 이야기하는 것이 들리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주민이 아니면 모를 이야기라고 생각해 다큐멘터리를 찍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내가 휘두를 수 있는 유일한 권력은 카메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카메라를 들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에게 같이 찍어달라고 말할 때마다 대부분은 공감하지 못하거나 시위 현장에 오는 것이 꺼려진다는 것을 내비쳤다. 결국 집회 현장을 혼자 카메라를 들고 찍을 수밖에 없었다. 소리로만 듣고 피하던 집회 현장을 실제로 본 때의 공포심을 잊지 못한다. 결국 거의 혼자 카메라를 들고 인터뷰를 따고 편집에 자막까지 입히고 다큐멘터리를 완성해 과제로 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영화를 만들 때와는 다르게 나 혼자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하고 싶은 만큼 시도하고 시간을 들여 무엇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에 커다란 감격을 느꼈다. 혼자서라도 창작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을 하나 찾은 것 같아 가슴이 벅찼다.

<출처> 네이버 영화, "내가 언제 연주를 멈추라고 했지?"

 열심히 편집하면서 나는 위플래쉬를 다시 보면서 누가 나한테 심벌즈를 좀 던져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신 차려! 멈추지 말고! 심벌즈를 타투로 새길까 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니까. 그맘때는 살짝 미치고 분노에 차있었다.

 

환멸이 난 나는 창작 활동을 이어나가고 싶다는 생각 반, 이 동네를 떠나지 않고선 정신적으로 병이 들 것 같다는 생각 반으로 유학을 가겠다고 부모님께 이야기했다. 그러니 8할은 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 덕에 미국행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이곳에서 집회하시는 분들이 그분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분들은 꾸준히 3년 째 출석을 찍고 계시고 규모도, 소음도, 가장 임팩트 있다. (합법적인 신고 시위이다)

<출처> 네이버 영화, 으아아아아 졸업... 하고싶다다다다아니 하기싫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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