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조커> 리뷰
조커의 재발견
나는 재발견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그렇게 대단하지 않은 것에도 너무 상투적으로 붙는 표현이기도 하고, 실질적으로 재발견이라는 단어를 붙일만한 것들이 21세기에는 그렇게 많다고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싫어하는 ‘재발견’ 이라는 단어를 이번에는 써야겠다. 토트 필립스와 호아킨 피닉스는 조커를 재발견 해냈다.
오롯이 담겨져 있는 조커의 이야기
영화 ‘조커’는 실사 영화중에서는 거의 처음으로 빌런의 단독무비로 세상에 나온 영화일 것이다. 소니에서도, 마블에서도, DC에서도 빌런의 팀업 무비, 또는 빌런이었지만 결국 선역으로 전향하는 캐릭터의 얘기를 솔로 무비로 내었을지언정, 그 뼛속부터 악역인 캐릭터를 단독영화로 내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더군다가 그 캐릭터가 조커다. 이미 팀버튼의 배트맨, 각종 애니메이션과 만화,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가장 최근의 수어사이드 스쿼드에까지 등장하며 이미 너무 많이 소비되어버린 캐릭터. 이름만 들어도 얼굴이 떠오르고, 대략적으로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이 되는 캐릭터. 영화로 만들기에 정말 좋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익숙해져있기에 과연 어떤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가 기대가 됐고, 걱정스러웠다. 그리고 토드 필립스와 호아킨 피닉스는 그런 걱정을 비웃듯이, 역대 최고의 조커 영화를 만들어냈다. 지금껏 그 어떤 영화에서도 담아내지 못했던, 오롯한 조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아무도 건드리지 못했던 조커의 이야기
조커라는 캐릭터가 세상에 처음 모습을 1940년 이후로, 아직도 조커는 본명도, 탄생경위도 불분명한 캐릭터이다. 코믹스에 따라서 그의 본명과 탄생을 다룬 코믹스도 있었지만, 결국 사실이 아니거나 그 순간에만 쓰인 설정으로 끝나고는 했다. 이는 영화/애니메이션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조커의 기원의 불분명성은 오히려 조커라는 캐릭터의 매력을 심화시키는 장치로 쓰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조커의 기원을 이 영화에서는 메인 스토리라인으로 삼고 있다. 조커가 어떻게 탄생하였는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다. 그리고 그 도전은 보기 좋게 성공하였다.
아서 플렉은 평범한 남성이다. 정신적으로 약간의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겉으로는 큰 티가 나지 않으며, 사람들을 웃기겠다는 꿈을 가지고 광대일 을 하고 있는 남자이다. 하지만 고담시는 그런 그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사소한 실수로 그는 광대일 에서 쫓겨났고, 그의 장애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은 그를 좋게 보지 않는다. 광대라는 이유만으로 공격을 받을 때도 있다. 그는 고담시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영화는 이처럼 평범한 소시민인 아서 플렉이 어떻게 조커가 되어 가는지를 아주 세심하고 진지한 시선으로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아서 플렉의 처지, 상황을 너무나 잘 묘사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서 플렉이 사람을 죽였을 때도 그를 이해하고, 그의 상황을 동정하게 만든다. 조커의 기원을 다루고 있지만, 오히려 그를 처음부터 특별한 사람이 아닌 여러 가지 불행을 마주하는 평범한 소시민으로 만듦으로써 아주 영리하게 조커의 기원을 다루어낸다. 그가 처음부터 싸이코패스였다면, 그가 처음부터 범죄자였다면 사람들은 그에게 이토록 공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평범한 소시민이고, 사회적인 약자였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공감하고, 조커의 기원을 납득하고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간의 조커와 다른 조커
조커의 기원을 다뤘다는 점에서 이번 영화는 그간의 조커를 다룬 수많은 작품들과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차별성에도 불구하고 어찌됐든 조커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잭 니콜슨, 마크 해밀, 히스 레져, 자레드 레토와 계속해서 비교될 수밖에 없는 숙명을 타고난 영화였다. 앞에 언급한 조커들 중 자레드 레토를 제외하면 작품도 연기도 모두 절륜하다고 평가를 받는 조커들이었기에 더욱 비교가 되고,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부담 속에서, 호아킨 피닉스는 조커가 어떤 존재인지를 그의 절륜한 연기력으로 마음껏 이 세상에 보여주었다.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가 다른 조커들보다 차별 점으로 가지고 가면서 또한 어려울 수밖에 없었던 포인트는 아마도 그가 아서 플렉에서 조커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었을 것이다. 다른 조커들은 작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조커였기에, 그들의 광기를 유지하고 정제하고 갈고 닦아서 보여주는 것에만 집중하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호아킨 피닉스는 아서 플렉이라는 소시민이 어떻게 조커가 되는지를 설득력 있게, 관객들의 호응을 끌어내면서 변신해야 했기에 더욱 힘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싸이코패스 살인마를 사람들의 동정을 끌어내면서 변신시키는 일은, 각본의 힘도 중요하지만 그 각본을 소화하는 배우가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한다면 실패하고 말테니까. 그 역할을 호아킨 피닉스는 너무나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사람들이 조커에게 공감하고 그가 살인마임에도 불구하고 온 마음을 다해 비난하지 못하는 것은, 호아킨 피닉스의 눈매가 너무 슬퍼서 아서 플렉의 처지와 조커로의 변신에 감정적인 동조가 간 부분이 없지 않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배트맨의 안티테제
다른 조커들과의 비교에 한 가지를 더해 보고자 한다. 이번작의 조커와 다크나이트 사가의 다크나이트와의 비교. 나는 히스레져의 조커보다 오히려 이번작의 조커가 더 다크나이트, 배트맨의 안티테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배트맨은 전통적으로 항상 자기 자신을 악에 대항하는 상징으로 만들어왔다. 정확히는 범죄자들에게 심어주는 공포의 상징. 다크나이트 사가에서 그는 범죄자에게 과도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망설이지 않고, 필요하다면 불법적인 심문을 하기도 하였다. 심지어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불법 도청을 하면서까지 범죄자를 잡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범죄자들을 상대하는 모습으로 그는 공포의 상징이 되었고, 마지막 순간에 스스로를 희생하면서 모든 누명을 뒤집어쓰고 고담을 지켜내는 다크나이트가 되었다. 폭력과 희생으로 그는 고담을 지키는 밤의 자경대, 범죄자들에게 철퇴를 내리는 공포의 상징으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한다.
반면에 이번작의 조커, 아서 플렉은 스스로를 상징으로 만들려 하지 않았다. 그는 박해받는 소시민이었고, 사회의 약자였으며, 그저 사람들을 웃기고 싶은 남자였다. 그의 첫 번째 살인은 숭고한 사명의식이나 목적을 가지고 한 살인이 아닌, 그저 홧김에 우발적으로 저지른 살인이었고, 그의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살인 모두 계획적인 살인이 아닌 우발적인 살인이었다. 하지만 그의 우발적인 살인을 사람들은 추앙했고, 부조리한 사회에 대항하는 메시지라고 생각하였으며, 그는 싸이코패스 살인마가 아닌 고담 혁명의 상징으로 자리매김되어진다. 그의 우발적 행동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그를 상징으로 만든 것이다.
스스로를 상징으로 만든 자와 사람들에게 상징으로 떠받들어진 자, 이 둘이야말로 서로의 안티태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감독이 일종의 이스터에그로 넣은 토마스웨인과 마사웨인의 사망 장면, 브루스 웨인이 혼자 남겨지는 장면은 아주 의미심장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매번 시리즈마다 조커가 말했던 서로가 서로를 만드는 관계, 토마스 웨인에게 버림받은 마음의 분출로 조커로의 발걸음을 가속화했던 아서 플렉과, 조커로 인해 발생한 폭동으로 사망한 토마스 웨인과 마사 웨인, 그로 인해 탄생하게 된 배트맨 까지. 비록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를 통해서 앞으로의 배트맨과 조커 이야기가 전개 되지는 않을 확률이 높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 장면은 배트맨의 진정한 안티테제, 아치 에너미로써의 조커의 모습을 확실하게 보여준 장면이 아니었나 라고 생각한다.
DC 영화의 부활?
다크나이트사가 이후 항상 무언가 부족하고, 때로는 거대한 것이 부족했던 DC의 영화는 실로 오랜만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 아쉽게도 이 영화가 DCEU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영화가 나온다는 것은 DC의 미래가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상상을 하게 만들어준다. 비록 워너는 이 영화가 망할 것이라 예상했다기에 그런 식견을 가진 영화사에 계속 있는 프랜차이즈의 미래가 엄청 밝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그래도 한 번 더 기대해본다. 앞으로 나올 버즈 오브 프레이, 원더우먼 후속작, 더 배트맨등이 성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