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건

한 시대의 종언에 대한 최고의 헌사

by 간달프

뮤턴트, 세상을 흔들다.

2000년, 밀레니엄이 시작되면서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한 편의 영화를 만든다. 마블 코믹스 중에서 돌연변이들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다룬 ‘엑스맨’의 판권을 사와 뮤턴트들의 액션 히어로 영화로 처음 만들어낸 엑스맨은, 이후 21세기 폭스의 2000년대와 2010년대를 책임지는 가장 강력한 미디어 컨텐츠가 된다.

기본적으로 지구를 위협하는 위기로부터 세상을 구한다는 히어로물의 플롯은 따르면서 그 안에서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있는 뮤턴트들의 이야기를 녹여낸 엑스맨 시리즈는 그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시리즈를 대표할만한 캐릭터들도 많이 만들어내었는데, 엑스맨들을 이끄는 리더인 ‘프로페서 x’나 오리지널 트릴로지에서 가장 강력한 적이면서 목적에 따라 함께 활동하기도 했었던 ‘매그니토’ 등이 그런 캐릭터들 중의 한명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엑스맨 시리즈가 만들어낸 최고의 캐릭터를 꼽으라면 아마 모든 사람들이 단 하나의 캐릭터를 꼽을 것이다. 손에서 칼날이 튀어나오고 상처를 끊임없이 재생해내는 ‘bad-ass’의 상징, 바로 울버린이다.


여러모로 독보적인 그 이름 울버린

지금에 이르러서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성공으로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등의 히어로들이 훨씬 익숙해졌지만, 2000년대 까지만 해도 영화화된 히어로 중에서는 울버린이 가장 독보적인 인지도를 구축하고 있었다. 오리지널 엑스맨 1~3편에서 모두 야성미 넘치는 싸움 스타일과 성격, 그리고 진 그레이 한명만을 바라보는 순애보적인 면모 등이 합쳐져 그야말로 인기를 긁어모으는 히어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다보니 오리지널 시리즈가 끝난 이후에도 뉴 시리즈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하였고, 엑스맨 히어로 중에서는 유일하게 솔로 영화가 기획되어 세상에 빛을 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울버린 1편과, 2편은 흥행 면에서도, 작품성 면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런 와중, 17년 1월. 울버린 시리즈의 3편이자 마지막 이야기인 로건이 개봉하였다. 그리고 모든 것은 뒤봐 꼈다.


단 한명을 위해 준비된 120분

위에서 말했듯이 ‘로건’은 울버린 시리즈의 마지막 편으로, 거의 20년에 이르는 세월 간 엑스맨 유니버스의 한축을 담당했던 울버린의 퇴장을 그린 영화다. 여기서 말하는 ‘퇴장을 그리다.’ 는 뭐 영화 내에서 이 얘기도 하고, 저 얘기도 하고 이런 느낌의 퇴장을 그리다가 아니다. 로건은 정말 온전히 영화 한 편을 울버린에게 헌사한 영화이다. 물론 서사는 전개되고 이 영화를 위해 새롭게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은 오롯이 울버린만을 위한 캐릭터이고 이야기로 결국 연결된다.

일단 영화의 시작에서 ‘프로페서 x’ 와 ‘울버린’을 제외한 모든 x맨들은 죽음을 맞이한 상태다. 그리고 인류의 유전자 조작 식품 공격으로 인해 더 이상 새로운 뮤턴트들은 태어나지 않고, 남아있는 뮤턴트들도 그 능력이 약해져 있는 상황이다. 그야말로 처절하기 그지없는 배경설정이다. 이 처절함은 울버린의 능력약화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어떤 상처가 생겨도 회복하고 늙지도 않던 울버린은, 이제 늙어서 중년의 나이가 되었고 상처가 생겼을 때 회복도 거의 되지 않는다. 리무진을 운전하면서 살아가는 그는 치매에 걸린 프로페서 x를 모시며 돈을 모아 그와 함께 보트 썬씨커(sun seeker)를 사서 남들이 없는 바다위에서 한적한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 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그렇듯 그를 가만두지 않고, 그의 유전적인 딸인 ‘X-23/로라’ 가 등장하면서 자의로 타의로 마지막 여정을 떠나게 된다.


상처는 낫는 게 아니라 아무는 것

전체적으로 이 영화는 서부극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고독한 남자 주인공이 사명을 가지고 길을 떠나는 이야기. 그의 길을 고난으로 가득 차있고, 사명이 이루어질지 누구도 알 수 없는, 그런 상황. 하지만 사실 울버린의 일생은 항상 그러했다. 돌연변이 임을 깨닫고, 가족을 잃고, 적을 죽이고, 엑스맨이 되고 세상을 구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자기 손으로 죽여야만 했던 일생. 하지만 그럼에도 울버린이 그 삶을 계속 이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몸이 계속 회복되었고, 그의 의지와 그의 정신이 몸과 함께 회복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계속 멀쩡해졌기 때문에, 그의 속이 얼마나 썩어 들어가고 있다 하더라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못하고 계속 회복이 되어가는 척. 하지만 이번 작 로건에서, 처음으로 그는 자신의 상처가 낫지 않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로 인해 그 어느 때 보다 육체적/정신적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결국 상처는 낫는 게 아니라 그저 겉으로 보이지 않게 아무는 것일 뿐이었다는 것을.

하지만, 그렇기에 이번 작에서 그의 투혼과 정신적인 성장은 더욱 눈부시다. 정신적 스승이었던 찰스와의 유대는 더욱 깊어져 그의 죽음 앞에서 눈물 흘리고, 그 누구도 고려하지 않은 채 자기만을 위해 살아가려던 마음도 결국 히어로의 모습으로 떨쳐 일어나 새로운 시대를 위한 씨앗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게 된다. 너무나 영웅이 아니었지만, 그의 최후는 너무나 영웅적인 것이었다.


휴 잭맨과 제작진에게 헌사를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든 생각은 어떻게 이렇게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였다. 아무리 울버린이, 휴 잭맨이 대단한 캐릭터고 배우였다 하더라도 그를 위해 영화 한편을 온전히 헌사한다는 것은 정말로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수많은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다 죽인 채로 시작한다는 결정을 내린 제작진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휴 잭맨. 울버린 그 자체였던 남자. 그의 20년의 여정에 박수를 보낸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언제나 울버린이었으며, 그의 마지막 여정에 잠깐 이나마 동행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로 큰 영광이었다.

다시는 울버린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이 이상의 마지막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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