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 리뷰-
‘전쟁은 소수의 영웅이 아닌 다수의 일반인들이 하는 것이다.’ 실제 전쟁과 영화/드라마 등의 미디어에 나오는 전쟁과의 괴리감을 표현할 때 자주 쓰는 말이다. 고전적인 전쟁물, <람보>로 대표되는 영화들에서 전쟁과 전투는 몇 명의 초인적인 영웅들이 수행하는 것이었다. 일반 병사들은 그저 쓰러지는 엑스트라에 지나지 않았고, 사람들은 몇 명의 주인공의 영웅적 행동에 주목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류의 영화들은 ‘현실적이지 않다.’ 라는 평을 받으면서 점점 주류에서 밀려나기 시작했고, 그 뒤를 보다 현실적인 전쟁영화들이 차지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진주만>, 요즘에 이르러서는 <덩케르크>까지. 그리고 지금, 1917에 이르러서, 영화는 완벽하게 전쟁을 현실로 구현해내는 것에 성공했다.
시간의 미학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에서 놀란 감독은 시간을 주/일/시로 나뉘어서 절묘한 편집을 통해 세 가지 집단의 이야기를 절묘하게 전개했다. 시간을 다루는 그의 방식앞에서 결과를 알고 있는 전쟁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이야기가 되었다. 전쟁영화에서는 이런 식으로 시간을 다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한 영화가 바로 덩케르크였다. 그리고 이 영화, 1917에 이르러서 시간을 다루는 방식은 더욱 현실과 가까워졌다.
‘원 컨티뉴어스 숏’. 이 영화에서 쓰인 연출 기법으로, 영화 전체를 하나의 롱테이크로 찍은 듯한 연출을 하는 기법이다. 이 기법을 통해서 이 영화는 엄청난 사실성을 확보한다. 영화의 런닝타임내내 관객과 영화 속 주인공의 시간은 거의 비슷하게 흘러간다. 중간에 기절하는 씬을 제외하면 거의 실제 시간과 영화 속 시간이 똑같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거기에 촬영방식 역시 주인공의 시점을 계속해서 보여주는 식으로 촬영을 하며 마치 내가 실제로 저 전장의 한가운데에 있는 듯한 느낌을 계속해서 선사한다. 실제 시간과 똑같이 흘러가기에 긴장감은 배가 되고, 비장함은 커지며, 지루함은 사라진다. 놀란 감독이 세 개의 다른 단위의 시간을 겹침으로써 이야기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면, 맨데스 감독은 영화 속 시간과 실제의 시간을 똑같이 만듦으로써 이야기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마법을 선보였다.
일반인들의 이야기
리얼타임에 더해서 영화에 생명을 불어넣는 또 하나의 장치는 배우들의 존재다. 1917의 가장 주인공격인 두 명의 배우는 그렇게 유명한 배우들이 아니다. 거의 이번 영화를 통해서 이름을 널리 알린 것이 처음이라고 해도 큰 무리가 없는 배우들이다. 반면에 지나가는 식으로 출연하는 장군, 장교들은 모두 유명 배우들이다. 콜린 퍼스, 베네딕트 컴버배치 등 이름만 들어도 눈이 돌아가는 배우들로 출연진이 구성 되어있다. 하지만 감독은 이들 배우들을 지나가는 식으로 배치하고, 유명하지 않은 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좀 더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몰입감을 선사한다. 영화배우가 아닌 진짜 군인이 스크린에서 뛰고 있는 듯한 느낌. 거기다 두 명의 주인공중 한명을 영화 초중반부에 목숨을 잃게 만듦으로써, 더욱 사실감을 더한다. 실제 전쟁에서도 내가 주인공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어느 때든 목숨을 잃을 수 있다. 그런 간단하지만 무서운 진실을 감독은 영화에서 확실하게 보여준다. 전쟁은 모두에게 공평하며, 주인공이든 아니든 그것은 비껴가지 않는다는 것. 영화라기보다는 오히려 기록물에 가깝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독은 리얼한 전쟁을 연출해냈다.
최고의 클라이맥스
너무 칭찬을 많이 하는 것 같긴 한데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덧붙이자면, 이 영화는 근래 봤던 어떤 영화들보다 클라이맥스의 연출을 잘 표현해냈다. 주인공이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완전히 녹초가 된 상태로 도착했을 때 울려퍼지는 노래, 돌격을 막기 위해 소리치는 주인공의 절규, 전장을 가로질러 뛰어가는 주인공의 모습과 울려퍼지는 시계 초침 소리, 전쟁에 환멸이 난 대령의 모습과, 동생의 죽음을 받아들이며 눈물을 흘리는 형의 모습까지. 그야말로 상투적이지만, 최고의 클라이맥스 연출이 아니었나 라고 생각한다. 노래를 들을 때부터 형을 만날 때까지 정말 숨도 못쉬고 영화를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칭찬을 많이 했지만 아쉬운 점은 있다. 먼저 스토리라인이 평이하다. 물론 정말 실제와 가깝게 만들었지만, 그러다보니 약간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그런 느낌의 스토리라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잘 만들어진 전쟁영화의 요소를 가지고 있는 이상 피할 수 없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거기에 중간에 나오는 프랑스 아기와의 만남은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뭔가 전쟁안에서도 생명은 피어난다라는 상투적인 교훈을 주는 그런 느낌... 개인적으로는 그 장면이 없었다면 더욱 실제에 가까운 느낌이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했다.
역대 최고의 전쟁영화
좋은 점도 많고, 아쉬운 점도 있지만, 한 가지 단언할 수 있는건 이 영화가 정말 잘 만든 전쟁영화라는 점이다. 앞으로 시간이 더 흘러도, 아마 1917과 비슷한 영화는 나올지언정, 1917만큼 전쟁을 리얼하게 표현한 영화가 또 나올지는 의문이다. 영화와 기록물 그 사이 어딘가, 1917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