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봉 조감도 : 2024년 3월
아래 내용은 '상봉 조감도' 뉴스레터의 2024년 3월 호입니다. 뉴스레터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다면 여기를 클릭해 주세요.
어떤 연구들에 따르면, 하루 평균 우리가 꺼내는 단어의 개수는 약 12,000개라고 합니다. 그중에서 마음에 울림을 주는 단어를 솎아내는 것은 꽤나 흥미진진합니다. 종종 그 단어가 나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짙은 잔상을 남기기 때문이죠. 이번에는 범위를 넓혀 하루가 아닌 이번 한 달 동안 기억에 남았던 단어나 대화를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혹자는 의문을 품을 수 있습니다. 내가 말한 단어나 상대방과 나눈 대화가 과연 라이프스타일을 큐레이션한다는 상봉 조감도의 방향성에 부합하는지 말이죠. 또 혹자는 말합니다. 그것 역시 라이프스타일의 수많은 가지 중 하나이며, 오히려 그 언어적 정보들이 개개인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힌트가 될 수 있다면서요.
참, 뒤늦게 이번 뉴스레터 인사를 건네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혹자입니다. 위 내용처럼 이쪽저쪽 갈피를 못 잡다가 '하고 싶은 거 해보자'는 마인드로 다시 돌아왔네요. (그 비하인드는 나중에 잠시 꺼내놓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나도 너처럼
첫 번째로 기억나는 순간은 오랜만에 만나는 중학교 친구와 저녁도 먹고 카페에서 꽤나 진득하게 이야기를 나눴던 이번 달 초였습니다. 요즘은 인스타그램으로만 서로의 근황을 확인하곤 했는데요. 성인이 된 이후로는 그 날처럼 오랜 시간 대화를 한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각자가 켜켜이 쌓은 세계를 거부감 없이 천천히 내놓으면서, 친구가 이야기 하더군요. '어떤 글을 읽으면서 머리가 띵한 것처럼 충격을 받았던 적이 딱 두 번 있었다'면서요. 하나는 군대에 있을 때였답니다. 같이 생활하던 동기가 적었던 글(지금 기억하기로는 시였던 것 같아요)을 우연찮게 보고는 '헉'했대요. 절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하고 유려한 표현 때문에요.
또 하나는 (부끄럽지만) 제 뉴스레터를 보고 느꼈답니다. 우선 쉽게 읽을 수 있었고, 특히 저번 2월 호에서는 아티스트에 대한 배경 설명을 듣고 나니 노래도 더 잘 들을 수 있었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결론은 그러한 충격 덕에(?) 친구도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 어느정도 있었고, '나도 너처럼 그런 글쓰기를 시작해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껏 많이 써보지 않아서 첫 걸음을 떼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해줬어요. 저 또한 그 과정을 온전히 겪어봤기 때문에 공감과 가벼운 조언을 건네며, 그 날 하루를 신기함과 고마움과 열정으로 마무리했습니다.
대화의 효율
두 번째 순간은 회사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속한 조직은 흔히 이야기하는 애자일(Agile)한 조직인데요. 기민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터라, 팀원들의 방식을 빠르게 흡수하는 게 사실 쉽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정신 없이 하루를 보내던 와중에도 성과를 만들어 내기 위한 효율적인 대화 방식 요소를 발견할 수 있었어요.
먼저, '100%에 가까운 정보 공유'입니다. 어떤 순간에도 사내 메신저를 활용하여 관련 내용을 기록합니다. 업계와 조직의 차이는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동의 목표를 이해하고, 빠른 실행을 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각자의 의견과 정보를 기록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죠.
그 다음은 '질문을 잘 한다'는 것입니다. 팀원들을 보고 있자면, 모두가 열정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성향이 짙은데요. 그러다 보니 각자의 눈앞에 있는 이슈를 다각도로 살펴보고, 해소되지 않은 부분을 정확히 짚어 질문하는 습관이 밴 듯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깔끔한 거절과 인정'입니다. 위와 같은 특징을 가진 조직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어떻게 업무가 나에게 올 지 알 수 없습니다. 본인의 업무량에 따라 도움을 요청하기도, 또 받기도 하는데요. 여력이 되지 않으면 쿨하게 거절합니다. 또 그 응답에 구태여 의미를 더하지도 않고요. 중요한 것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가능하면 서로를 도와 기어코 성과를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좋아, 그럴 수 있지
이번 달, 아니 어느 순간부터 삶 속에서 가장 많이 내뱉는 말인 듯합니다. "오히려 좋아"와 "그럴 수 있지." 이 두 문장을 쓰는 이유는 책임 없는 쾌락을 위해서가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도 합니다. 물론 빠르게 대화 주제를 전환하고 싶을 때에도 사용할 수 있는, 아주 유용한 도구이지요. 그러나 특히 제게는 의미 있는 말입니다.
좀 더 무게감을 덜고 싶었거든요. 대화를 할 때나 어떤 행동을 할 때나, 이외에 삶을 바라보는 다양한 순간에서 말입니다. 두꺼운 옷차림일 때 어깨에 느껴지는 무게처럼, 언제나 크고 작은 고민에 여유가 없었습니다.
진지함, 신중함, 사려 깊음, 배려, 한결같음, 고지식함, 선비, 노잼 등의 키워드는 저를 떠올릴 때 옆에 항상 따라다니는 꼬리말입니다. 과거 이런 단어들에 종종 감정적으로 대했던 적이 있지만, 이젠 한결 가볍게 웃어 넘길 수 있습니다. 그저 삶을 가볍게 재밌고 행복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도구가 둘이나 있으니까요.
결국 기브앤테이크
위의 순간들을 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기브앤테이크가 아닐까요. 동시에 대화와 관계라는 라이프스타일을 설명하기에 아주 알맞은 말이기도 합니다. 중학교 친구와 '주고 받은' 따뜻함, 회사에서 '나눴던' 수많은 기록들, 그리고 스스로에게 '선물한' 일종의 가벼움까지 모두 해당되겠네요.
취향이 짙어지면 라이프스타일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사람들과 관계 맺고, 대화를 주고 받는 것 또한 라이프스타일이라 칭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기브앤테이크를 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어쩌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만큼 무엇이 먼저인지 모를 주제인 듯합니다. 받는 만큼, 그보다 더 건네주겠다는 마음이 (인간 관계 등의) 삶의 여러 부분에 작용하는 것일 수 있지요. 반대로 대화와 관계의 (주고 받는) 매커니즘이 삶에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더욱 주고 받으려는 마음이 커지는 것일지도요.
결국, 한 달이라는 시간에 걸쳐 나타난 제 취향을 여러분들께 전해드렸습니다. 이 모든 것은 '기록'에서 출발했습니다. 기록하니 기억할 수 있었고, 기억하니 또 기록할 수 있었으니까요.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드시겠죠. "아니,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대화는 주고 받는 거고, 관계에서도 오는 게 있어야 가는 게 있는거지..." 맞습니다. 당연한 것이죠. 하지만 우리가 희미하고 어렴풋이 느끼고만 있을 그 당연함 속 보배로움이 라이프스타일의 한 종류이며 각자의 취향이 녹아든 정수임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여러분들의 대화의 취향, 관계의 취향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그것을 유심히 관찰하는 방법으로 앞으로의 4월 동안 나누고 얻었던 단어들을 한번 떠올려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누군가에게서 떨어져 나온 그 몇 글자가 나에게는 벚꽃과 개나리처럼 새뜻하게 다가올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