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

영화 <카라바조의 그림자> 스포 없는 후기

by 상 봉

좋은 기회로 오는 1월 22일에 개봉하는 영화 <카라바조의 그림자> 시사회에 다녀왔다. '영화사 진진'에서 배급하는 영화로, 문화예술에 관심이 있는 많은 분들이 영화관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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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라는 인물을 잠깐 짚고 넘어가 보자면, 그는 바로크 시대의 문을 연 '빛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예술가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 사이에서 진동하며 이전에는 없던 '명암 대비가 강한' 기법을 사용,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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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왼)와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오)

[메두사],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 등 주변 배경은 어둡고, 대상을 강조하는 밝은 빛이 비춰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카라바조 화풍의 특징이다. 또, 카라바조의 본명은 '미켈란젤로 메리시'다. 우리가 흔히 아는 '그 미켈란젤로'와 구분하기 위해, 혹은 '카라바조'라는 마을 출신이라서 이름에 붙였다는 설이 있다. 카라바조의 생애나 관련한 이야기들은 검색하면 자세히 나와 있으니, 여기서는 영화에 대한 생각을 남겨 본다.




1. 당시에도 미술은 엘리트의 것.


당시 엘리트라 함은 종교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카라바조가 활동하던 16세기 후반, 17세기 초의 이탈리아는

교황의 권위가 상당했던 시기였다. 따라서 교회와 그를 둘러싼 인물, 이야기로 수많은 작품이 만들어졌으며, 반대로 이야기한다면 교회가 추구하는 가치 등에 반하는 작품들은 매장되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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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토마스의 의심(왼)과 성모의 죽음(오)


그런 점에서 카라바조의 작품은 다분히 교회를 '욕되게' 하고 있었다. '성 토마스의 의심', '성모의 죽음' 등으로 이름 붙인 그의 작품들에서는 성스러운 주인공들의 행색이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이면서 동시에 남루한 느낌을 내뿜고 있다. 엘리트 세계에서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영화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잘 표현되었다고 생각했다.


여담으로, 비슷한 시기 우리나라는 임진왜란(1592)으로 '생존'을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치고 있었을 텐데 유럽에서는 '문화'와 '예술'에 대한 담론과 '종교'의 다툼 등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게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2. 영감은 어디에나 있다.


카라바조의 작품이 교황과 교회를 둘러싼 엘리트주의에서 박해받을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영감의 원천'이다. 위에서 언급한 작품들을 그려낼 때, 카라바조는 실제 모델을 세워두고 그렸다고 한다. 영화에서도 비슷하게 연출한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그게 '영감의 원천'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카라바조의 삶은 술과 호색한, 파란만장한 사생활로 점철되었다. 일반적인 사람이었다면 방탕한 생활 속에서 점점 피폐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카라바조는 자신의 작품을 위한 영감을 결국 찾아낸다. 때로는 자신과 몸을 섞었던 매춘부에게서 '성모'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함께 작업하던 동료들을 보곤 '예수의 제자', '성인' 등의 모습을 투영시켰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은 성스러운 것만을 추구하려는 교회의 방향성과는 정확히 반대되는 결과물이었다. 신성모독인 셈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카라바조의 사실적인 표현을 통해 탄생된 작품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얼마간의 경탄을 불러일으킨다.




3. 어떤 관점으로 볼 것인가.


영화를 보면서 카라바조의 작품을 어떤 관점으로 봐야 하나 고민하게 되었다. 이는 카라바조라는 인물 내면과 그를 둘러싼 환경적인 부분에서 각각 생각해 볼 수 있다. 카라바조는 '에디터'로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을 세심하게 살피고, 이것들을 어떻게 재료 삼아 표현할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작품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의식적으로 주변을 통해, 때로는 무의식적인 영감과 본능을 통해 그림을 그려내지 않았을까. 영화에서 그려진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삶의 면면들은 불행과 억압 그 자체였는데, 그 속에서 피어난 그림의 영향을 생각하면 경이롭고 경외롭다.


카라바조.jpeg 카라바조 (미켈란젤로 메리시)


한편, 당시 유럽은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던 것으로 알고 있다. 때문에 글보다는 그림이나 조각 등이 대중들에게 더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또, 로마 가톨릭은 당시 종교 개혁의 발발로 신교와 대치하며 그 세력 다툼을 계속하고 있었다. 신교에서는 그림이나 조각이 우상숭배의 일환이라며 이를 배척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이를 역이용해서 일부 추기경은 카라바조의 사실적인 표현 방법과 빛을 이용한 명암 대비를 이용해 가톨릭의 힘을 되찾으려 했을 것이다. 종교 세력 다툼에서 사람들을 설득하는 수단으로 카라바조의 작품이 이용된 것도 흥미로운 관점인 것 같다.




연출의 측면에서 위와 같은 내용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영화였다. 아마 카라바조 전시와 발 맞추어 영화도 개봉한 것으로 알고 있다. 영화를 보고 전시장에 들어서서 작품들을 하나씩 음미하면 더욱 풍성한 느낌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카라바조의 그림자.jp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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