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외모지상주의. 영화 <서브스턴스> 관람 후기
어쩔 수 없이 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서브스턴스>를 보지 않으셨다면, 영화를 먼저 보고 아래의 내용을 읽어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정말 미친 영화다. 영화 개봉 후 포스터를 보면서 "이 영화는 무슨 내용일까?" 작은 궁금증이 들었는데, 한 켠에 적혀 있는 '미친 영화'라는 키워드를 그냥 쉽게 지나쳤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미쳤다'는 단어가 이렇게 서늘하게 들어맞을지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정말 하나도 빠짐 없이 '주제 의식을 향해'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배우들의 연기력, 촬영 기법, 사운드, 시각 효과, 칸 영화제에서 수상의 영예를 얻은 각본까지. 맹렬한 기세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포스터나 SNS에서의 개인적인 후기들을 살펴봐도 '미쳤다'는 이야기밖에 없어서, 괜히 기대감과 설렘과 아드레날린 등의 호르몬이 분비된다. 영화를 보는 중에도 오감을 거세게 자극하고, 영화가 끝나고도 짙은 여운과 대화의 소재로 남게 된다.
잘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는 영화는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이지 않을까. 촘촘하게 짜여진 각본을 기반으로 모든 것이 톱니바퀴처럼 하나의 목적을 위해 기능한다. 작품의 주제 의식이라는 존재 이유가 명확하며, 그 하나의 이유로 흐른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대사를 정할 수 있다면, "기억하세요, 당신은 하나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엘리자베스(데미 무어)와 수(마가렛 퀄리)는 일주일마다 몸을 바꿔가며 삶을 이어나간다. 본체는 엘리자베스다. 하지만 어느 순간 수에게도 마치 또 다른 자아가 생겨난 것처럼 본체인 엘리자베스로 돌아가는 것을 꺼려한다. 초반에는 엘리자베스의 옷을 그대로 입으며 밖을 돌아다녔지만, 언제부터인지 에어로빅 복장이나 다른 화려한 옷을 입으며 '수' 그 자체로서의 정체성이 확립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 정해진 시간에 몸의 교체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수는 이를 거부하며 안정제를 추가로 투입해 하루를 더 살아가게 된다. 이렇게 규칙에 어긋난 행동을 하면서 결국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위와 같은 일련의 상황을 보면서, 영화관 밖의 실제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진정한 '나 자신'이 아닌 '관계에서의 나'를 다르게 규정하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더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좋은 평가와 평판, 명성 등을 위해 선을 넘는 행위를 하기도 한다.
이제는 뻔한 소리가 되었지만, 인터넷의 발달과 SNS의 탄생 등으로 온라인에서 이와 같은 양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영화를 보면서 이 작품에 녹아들어 있는 주제 의식의 일부가 특히 우리나라에서 많이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너나 할 것 없이 비교하는 사회 전반적인 행태, 그런 환경에서 자라난 '나', 그런 환경의 관계에서 스스로 정의하는 '관계에서의 나'.
한편, 영화의 주제 의식 중 또 다른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외모지상주의'와 '여성'이라는 키워드라고 생각했다. 작품의 곳곳에서 불편하게 느껴지는 대사와 장면들이 많았다. Dress to impress(기억에 남을 만한 옷차림), "저 흉측한 코 대신에 가슴이 더 달려 있는 게 낫겠다", "예쁜 여자는 언제나 웃어야 해" 등과 같은 대사와 암시들. 그 불편함은 성별의 차이로 인해 불쾌한 언행을 들어야만 했던 여성들, 반대로 노동과 생산 등에서 '힘'을 가질 수 밖에 없던 남자들, 또 '꼭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나'라는 생각 등 여기저기서 피어났다.
한편, 동창이었던 친구가 "넌 지금도 가장 예쁘다"라는 말을 해줬던 장면도 오히려 '외모가 전부'라는 사회적 인식을 비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엘리자베스는 그 말을 듣고 다시 힘을 내보려 하지만, 수의 외모를 보고 다시 자기 비하의 깊은 구렁텅이에 빠져 화장을 전부 망가뜨린다. '젊음, 생기'는 물론 멋지고 아름다운 것이다. 하지만 인생의 황혼기에서 피어나는 특유의 진한 향기와 또 다른 아름다움 역시 존재한다. 늘 '젊은 것이 좋은 걸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장면.
후반부 클라이맥스로 갈수록 상당히 잔인하고 기괴한 장면들이 많았다. 일부 관객들은 뜬금없는 '크리처물'로 느껴졌다는 평을 내놓기도 했다. 그 불편한 기괴함과 넘치는 잔인함이 오히려 주제 의식을 더욱 부각시켰다. '나는 그대로인데, 사람들이 '다르게' 본다'는 시각과 그 '다르게'가 철저히 외형적인 부분에만 치중되어 있다는 메시지. 또 그 조명이 '여성'에게만 비춰져 왔다는 메시지.
앞서 말했던 것처럼, 영화라는 하나의 작품 안에서 연출, 연기, 각본, 촬영 기법, 사운드, 시각 효과 등이 단 하나의 주제로 계속 나아가면 이러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든 <서브스턴스>였다.
이에 더해, 영화를 보기 전 어떤 영화일지 궁금해 하거나 관련 정보를 찾아보고, 실제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보며, 영화가 끝나고 밑에 숨겨진 메시지를 추측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까지가 영화를 완성시키는 요소라고 생각했다. 만족스러운 영화임에는 틀림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