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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다인 Nov 10. 2021

왜 쓰는가에 대하여.

그 시 한 구절은 세상에 남은 마지막 순결함처럼 느껴졌다.

이십 대의 언젠가, 강남 교보문고 사거리에서 길을 건너다 무심코 위안을 받은 적이 있다.  맞은편 붉은 벽돌의 교보 빌딩에 걸린 ‘시’ 때문이었다. 그림처럼 걸려있던 그 시 한 구절은 자본으로 물든 세상에 남은 마지막 순결함처럼 느껴졌다. 어떤 문장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며 눈물을 훔치며 길을 건넜던 기억이 난다.


일주일 전쯤, 나는 다시 그 사거리를 건너게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문장 하나가 걸려있다.      

‘춤만큼은 마음 가는 대로, 허락은 필요 없어.’
- BTS -     


여전히 좋았다. 읽고 음미하는 순간부터 어딘가 시원하게 환기되는 느낌이었다.

 ‘저 자리에 걸 문장을 고르는 이들은 분명 눈이 아름다울 거야.’ 나는 이끌리듯 교보문고에 들어갔다. 그리고 신간 평대에 진열된 내 책을 샀다. 저자가 자신의 책을 사는 건 묘한 일이지만(흔히 있는 일이다), 오래전 사거리에서의 기억이 나를 구매 데스크로 잡아끌었다. 나는 책을 펴고 아무 부분이나 읽었다. 문장 하나가 제 집을 찾아가듯 가슴 안으로 파고든다.     


‘그 시선이 머무는 곳에, 삶의 의미가 있다.’


241쪽의 마지막 문장이었다.  문장에 나는  위안을 받는다. 내가  문장에 위안을 받는  오래전부터 그래 왔기에 특별할 것이 없다. 하지만 블로그나 이메일이 아닌, ‘이라는 그릇에 담긴  글은 왠지 새롭다. 책에 담긴 문장은 평소 내가 쓰던 문장에서   다듬어지고 무게가 더해졌다. 본래 책이라는 게 가볍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처음에  책이 출간되었다고 했을 , 사람들이 많이 놀랐다. "어떻게 책을  생각을 했어요?" 라며, 눈을 크게 뜨며 나를 대단한 사람인양 추켜세워주기도 했다.

 자기 위안을 위해 행해지던 글쓰기가 ''으로 갈무리된다는  사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세상에 내놓기가 두려웠던 글도 있었다. 그렇기에 나름의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글을 썼다.


돌이켜보니  인생 통틀어 ‘글을  써야 하나라는 의문을 품어본 적이 없다. 글을 배우기 시작할 때에도, 학교에서 ‘글짓기라는 과제를 처음 하게 되었을 때도, 술을 잔뜩 먹고 나서도, 실연을 당했을 때도나는 숨을 쉬듯 글을 썼고  글에 위안을 받곤 했다.     


그러다 새로운 일을 하게 되면서 오랜 기간 글을 쓸 수 없는 환경에 있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바빠도 뭐든 쓰면서 살아야만 숨통이 트이는 거였다. 책을 한 권을 쓰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숨을 고를 수 있게 되었다. 현재를 더 잘 살 수 있게 되었고, 앞으로 더 잘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왜 써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그러니 계속 글을 쓰자. 나로 살기 위해 글을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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