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 한 구절은 세상에 남은 마지막 순결함처럼 느껴졌다.
이십 대의 언젠가, 강남 교보문고 사거리에서 길을 건너다 무심코 위안을 받은 적이 있다. 맞은편 붉은 벽돌의 교보 빌딩에 걸린 ‘시’ 때문이었다. 그림처럼 걸려있던 그 시 한 구절은 자본으로 물든 세상에 남은 마지막 순결함처럼 느껴졌다. 어떤 문장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며 눈물을 훔치며 길을 건넜던 기억이 난다.
일주일 전쯤, 나는 다시 그 사거리를 건너게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문장 하나가 걸려있다.
‘춤만큼은 마음 가는 대로, 허락은 필요 없어.’
- BTS -
여전히 좋았다. 읽고 음미하는 순간부터 어딘가 시원하게 환기되는 느낌이었다.
‘저 자리에 걸 문장을 고르는 이들은 분명 눈이 아름다울 거야.’ 나는 이끌리듯 교보문고에 들어갔다. 그리고 신간 평대에 진열된 내 책을 샀다. 저자가 자신의 책을 사는 건 묘한 일이지만(흔히 있는 일이다), 오래전 사거리에서의 기억이 나를 구매 데스크로 잡아끌었다. 나는 책을 펴고 아무 부분이나 읽었다. 문장 하나가 제 집을 찾아가듯 가슴 안으로 파고든다.
‘그 시선이 머무는 곳에, 삶의 의미가 있다.’
241쪽의 마지막 문장이었다. 그 문장에 나는 또 위안을 받는다. 내가 쓴 문장에 위안을 받는 건 오래전부터 그래 왔기에 특별할 것이 없다. 하지만 블로그나 이메일이 아닌, ‘책’이라는 그릇에 담긴 내 글은 왠지 새롭다. 책에 담긴 문장은 평소 내가 쓰던 문장에서 좀 더 다듬어지고 무게가 더해졌다. 본래 책이라는 게 가볍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처음에 내 책이 출간되었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많이 놀랐다. "어떻게 책을 낼 생각을 했어요?" 라며, 눈을 크게 뜨며 나를 대단한 사람인양 추켜세워주기도 했다.
자기 위안을 위해 행해지던 글쓰기가 '책'으로 갈무리된다는 건 사실 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세상에 내놓기가 두려웠던 글도 있었다. 그렇기에 나름의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글을 썼다.
돌이켜보니 내 인생 통틀어 ‘글을 왜 써야 하나’라는 의문을 품어본 적이 없다. 글을 배우기 시작할 때에도, 학교에서 ‘글짓기’라는 과제를 처음 하게 되었을 때도, 술을 잔뜩 먹고 나서도, 실연을 당했을 때도… 나는 숨을 쉬듯 글을 썼고 그 글에 위안을 받곤 했다.
그러다 새로운 일을 하게 되면서 오랜 기간 글을 쓸 수 없는 환경에 있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바빠도 뭐든 쓰면서 살아야만 숨통이 트이는 거였다. 책을 한 권을 쓰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숨을 고를 수 있게 되었다. 현재를 더 잘 살 수 있게 되었고, 앞으로 더 잘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왜 써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그러니 계속 글을 쓰자. 나로 살기 위해 글을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