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그들을 '기분 나쁜 조선족'으로 만들었다
들어가며 / 당신에게 ‘조선족’이란?
2001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개그콘서트의 ‘수다맨’과 ‘연변 총각’ 캐릭터를 기억하는가? 개그맨 강성범이 ‘연변에서 온 사람’ 흉내를 낸다며 희한한 의상을 입고 나와 어눌한 한국어를 구사하였고, 이는 개그 캐릭터로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누군가는 이를 정말 웃긴 ‘장난’ 혹은 ‘개그’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서 이 캐릭터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괴상한 옷을 입은 사람이 나의 억양을 과하게 흉내 내며 나라는 존재 자체를 대중을 향한 유머의 소재로 사용한다? 당사자로서는 이를 그저 ‘조롱’과 ‘혐오’로밖에는 받아들일 수 없다.
비슷한 시기에 개그 듀오 컬투가 웃찾사에서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 그럼 손이 하나야? 팔 하나밖에 없는 병신이야?’라는 개그를 했을 때, 어떤 시청자는 ‘저희 아버지는 사고로 팔 하나를 잃었다. 장애인을 조롱하는 개그를 멈추어달라’며 이야기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구조적 약자성을 본인들의 입맛에 맞도록 쉽게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황해>, <범죄도시>, <청년경찰>등 다양한 영화에서 조선족은 천편일률적으로 지저분한 ‘범죄자’의 캐릭터로 소비되며, 맞서 싸워야 할 ‘악의 존재’로 묘사된다.
그렇다면, 정말 조선족의 범죄율이 다른 집단에 비해 높을까? 실제 한국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이 범죄를 일으키는 비율은 한국인들이 범죄를 일으키는 비율보다 낮다. (한국인: 10만 명 당 약 3500명, 중국인: 10만 명 당 약 2200명) 오히려 러시아, 몽골 등 다른 국적의 외국인 집단의 범죄율과 비교하면 중국인들의 실제 범죄율은 현저히 낮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매체에 노출된 우리는 조선족을 그저 범죄자 집단으로만 인식하기에 십상이다.
기존에 개봉한 영화와 달리 ‘청년경찰’은 대림동을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영화는 대림동 주요 상권인 12번 출구 일대를 우범지대로 다루고, 영화 속 택시 기사는 대림동을 가리키며 “여기(대림동) 조선족들만 사는데 여권 없는 중국인도 많아서 밤에 칼부림도 자주 나요. 경찰도 잘 안 들어와요. 웬만하면 밤에 다니지 마세요”라고 말한다. (BBC KOREA)
2017년 8월에 개봉한 청년경찰은 중국동포 밀집 거주 지역인 대림동에 근거지를 두고 여성들을 납치해 무자비하게 난자를 불법채취하고 살해하는 조선족으로 구성된 반인륜적 범죄집단과 맞서 싸우는 두 경찰대 학생의 활약을 그린 영화로 600여만 명에 달하는 관객을 동원할 만큼 인기를 끌었다.
영화 <청년경찰>이 개봉한 후, 이에 분노한 중국동포 단체가 영화제작사에 소송을 냈다. “청년경찰은 허구적인내용을 악의적으로 가공해 대림동이라는 구체적인 장소를 배경으로 영화를 제작해 국내 거주하는 특정 인종집단인 조선족에 대해 인종적 증오와 차별을 증진할 수 있게 선동하고 사실을 왜곡해 조선족에게 혐오감정이나 두려움을 확신시켜 부정적인 낙인을 찍거나 편견을 심화시키며 인간의 존엄성, 평등권, 인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이다.
법원에서는 해당 소송을 기각했지만, 이 사건은 우리가 평소에 사회적 약자 집단을 어떠한 방식으로 소비하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인 클리너 VS 중국인 클리너, 청소의 질에 전혀 차이가 없다.
고객에게 홈클리닝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에서 VOC (Voice of Customers, 고객의 목소리)를 관리하다 보면 다른 이유 없이 ‘조선족 클리너가 와서 불쾌했다’라는 후기를 매일매일 꽤 많이 맞닥뜨리게 된다. 거의 반반에 가까운 비율로 한국인과 중국인 클리너를 관리하는 회사에서 ‘조선족이라 그냥 시간만 때우고 간다’, ‘조선족이라서 청소 퀄리티가 낮았다’ 같은 설득력이 다소 떨어지는 논리를 가진 VOC를 마주하다 보니, 정말 ‘조선족 클리너들이 한국인 클리너들보다 청소를 못 할까?’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미소’의 내부 데이터로 비교했을 때, 두 클리너 집단 간이 제공하는 청소의 질 차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서비스 만족도 조사에서 두 클리너 집단의 만족도를 비교했을 때, 그 차이는 무의미할 정도로 근소하였다. 오히려 ‘조선족’에 대한 부정적인 첫인상이 사회 전반적으로 깔려있음을 고려했을 때, 조선족 클리너가 한국인 클리너만큼의 만족도를 이끌어냈다는 사실은 두 클리너 집단이 제공하는 청소의 질에 차이가 없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지점을 증명한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는 언제부터 중국동포 노동자에 대해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기 시작했을까?
‘우리’가 ‘조선족’을 혐오집단으로 만들었다.
본래 ‘조선족’ 단어 자체에는 혐오의 의미가 존재하지 않았다. 조선족은 단순 만주의 간도 지역으로 이주한 한민족을 가리키는 단어였다. 하지만 한국 사회 안에서 조선족 이주노동자들이 인식되고 소비되는 방식은 차별적이고 폭력적이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일반적 인식은 가난과 굶주림을 피해 한국에 일하러 온 사람들로 보는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사회에서 고통스러워하는 것 중의 하나가 자신들을 가난한 나라에서 굶주림을 피해 온 난민으로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시선이다.
(“타자 만들기”: 한국사회와 이주노동자의 재현, 한건수)
한국거주 조선족 이주노동자들의 법적, 경제적 지위를 종합해서 사회적 지위를 보면 이들은 고국의 환대를 기대하고 왔지만 사회적 지위가 낮은 일을 하면서 한국인에게 차별과 멸시를 받는 사회적 지위에 머물고 말았다. 그 이유는 조선족 이주노동자를 단순 외국인력으로만 보고 취업 범위를 제한하였으며, 이주노동 정책을 지속적으로 일관되게 추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거주 조선족 이주노동자들의 법적 경제적 사회적 지위 연구, 윤황, 김해란)
한국에서의 제한적인 노동환경과 차별적인 시선 때문에 조선족은 결국 사회 최하층의 집단으로 자리 잡고 말았다. 앞서 말한 청년경찰과 같은 미디어 케이스에서 볼 수 있듯, 한국 사회 내에서 어눌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조선족’의 이미지가 부정적이고 폭력적인 이미지로 재생산되었다. 이러한 이미지가 고착될수록 단일민족성을 지닌 한국 국민들이 조선족을 타자화시키고 사회에서 배제하기 시작하며 ‘조선족’이라는 단어는 곧 약자혐오적인 면모를 지니게 되었다.
조선족, 이제는 ‘중국동포’로
서울시가 국어바르게쓰기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약자혐오적 맥락이 깃든 ‘조선족’이라는 단어를 ‘중국동포’로 순화하여 사용하기로 했다.
조선족의 본뜻은 한민족 혈통을 가졌으면서 중국에 거주하고 중국 국적을 가진 주민들을 말한다. 사실 조선족이란 말 자체엔 비하의 의미가 전혀 없다. 그러나 이들이 한국으로 건너와 가사도우미나 식당 종업원 등 주로 서비스업에 종사하면서 ‘조선족’이라는 단어가 그들을 낮춰 부르는 데 쓰이게 됐다. (한국일보)
이외에도 정상인은 비장애인 (장애인은 ‘정상’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걸 암시)으로, 결손가족은 조손가정, 한부모 가정 (缺 결 — 모자란 가정임을 암시)으로 순화시켜 사회에 펴져 있는 다양한 약자 혐오의 맥락을 걷어내려 노력하고 있다.
특정 언어가 구조적 약자혐오에 기인하는 바가 이렇게나 크다는 방증이다.
출신과 민족성은 죄가 없다 — 우리가 꾸며낸 허상은 우리가 걷어내자.
한민족의 단일민족 신화는 허구라는 것이 밝혀졌다. 수많은 이주와 전쟁의 역사를 거치며 한반도에서 한민족은 곧 이민족과 그 역사를 오랫동안 함께 밟아왔고, 다양한 출신과 민족성을 지닌 구성원들이 이 사회를 함께 지탱해나가고 있다.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민족성이 아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공유된 가치를 품고 그 안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나아가야만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몇십 년간 폭력적인 미디어에 노출되며 직간접적으로 설계된 구조적 혐오는 쉽게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언젠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조선족 가사도우미라니, 무언가 훔쳐 갈 것만 같다. 집 안에 조선족을 들인다는 것이 불쾌하다. 조선족이라 청소를 더 못하는 것 같다. 조선족이라… 조선족이라… 그냥 기분이 나쁘다.
우리가 오랜 기간 철옹성처럼 쌓아올린 편견과 차별의 벽을 허물고 그들을 우리와 동등한 하나의 사회의 구성원으로, 하나의 사람으로 바라보자. 그러면 보일 것이다. ‘그들’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데이터가 이미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조선족’은 범죄집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중국인 클리너는 한국인 클리너와 비교했을 때 그 어떤 질적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는 마주하자. ‘기분 나쁜 조선족’은 오랜 시간 다양한 도구를 통해 우리 손으로 만들어낸 구조적 약자혐오의 결과물일 뿐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 손으로 이 높고 단단한 벽을 허물어 나가자. 그것이 내일로, 공존의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written and edited by 홍산 | san@getmis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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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타자만들기”: 한국사회와 이주노동자의 재현 — 한건수 / 서울대학교 비교문화 연구소
한국거주 조선족 이주노동자들의 법적 경제적 사회적 지위 연구 — 윤황, 김해란 / 비판사회학회
외국인과 동포 사이의 성원권 — 이정은 / 비판사회학회
귀환 조선족동포의 인정투쟁과 한국사회의 차별의 구조 — 이정은 / 전남대학교 세계한상문화연구단
한국 체류 조선족 ‘단체’의 변화와 인정투쟁에 관한 연구 — 박우 / 비판사회학회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서울시, 행정용어 13개 순화 / 중앙일보 / https://news.joins.com/article/22538660
그들이 조선족이 된 유래는? / 오마이뉴스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49396
무심코 쓰는 이 용어, 나만 불편해? / 조선일보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2/28/2016122801160.html
조선족 = 범죄자? 청년경찰, 범죄도시 영화 상영에 중국 동포들이 뿔났다. / BBC Korea /https://www.bbc.com/korean/41357319
한국내 중국인 범죄율 실제로 높은 걸까 /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9/13/0200000000AKR20170913168200797.HTML
“한반도 단일민족 신화는 만들어진 역사” / 동아일보 /http://news.donga.com/3/all/20081205/866695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