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모부터 전문 가사노동자까지 - 여성, 노동을 통해 걸어온 독립의 길
"우리는 파출부나 식모가 아닙니다. 우린 가정관리사입니다."
최근 비가시화된 영역이었던 가사노동이 조명을 받으며 가사노동자들도 어엿한 전문직 노동자로서 인정받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가사노동자들의 노동환경과 노동권을 보장해주기 위한 전국가정관리사협회(이하 전가협)가 설립되어 가사노동을 보다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전문직으로서의 자리를 굳혀가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전가협은 가정관리사의 업무를 ‘노동’으로 인정받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기본 4시간 노동에 대한 ‘직무분석’을 통해 7가지 기본업무와 고객이 추가 비용을 지급해야 하는 추가 업무를 구분한 ‘업무 매뉴얼’을 만들었다. 수원지부는 아예 협동조합 형태로 전환해 회원들에게 4대 보험을 적용한다. 가정관리사들은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탓에 일반 노동자들보다 보험료 부담이 크다. (한겨레)
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은 너무나도 멀다. 가사서비스 산업에서 일을 하다 보면 가사노동자들이 어떤 시선으로 평가되는지 매일매일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능력이 없어서 청소나 요리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 ‘돈 없고 가난한 노동자’, ‘어디 가서 말도 못 하는 부끄러운 일.’
비록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배우지만 국가와 사회는 직업을 상층, 중층, 하층 계급으로 분류를 하고, 개인은 자연스레 그러한 직업의 피라미드에 의거하여 노동자를 평가하게 된다. 가사노동자들은 직업 피라미드의 최하층에 위치하고 있다. 건설업 종사자, 운수 노동자, 택배 노동자와 같은 하층 직업군으로 분류됨에도 불구하고 가사노동자들은 건설업 종사자, 운수 노동자, 택배 노동자보다 더욱 낮은 계층인 '최하층' 직업군으로 분류된다. 같은 하층 직업군 중 왜 가사노동자들은 더욱 하대 받는 걸까? 이는 하층 노동에 '여성 노동'이라는 또 다른 맥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배웠지만, 어떤 역사적 자취가 여성 가사노동자들을 이러한 시선 속으로 내몰았을까?
*이 글에서 일컫는 '가사노동'군에는 청소노동과 식당 노동을 포함하고 있다.
전통적 사회에서는 가사노동을 '노비' 혹은 '하녀'가 담당했다. 하지만 광복 이후 신분 해체가 이루어지며 가사노동은 더 이상 종속적 관계의 노비나 하녀가 도맡지 않고 직업으로서의 식모가 탄생하게 되었다.
| 산업화와 식모 노동자의 등장
1960년대 이후 빠른 속도로 산업화가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더 많은 여성들이 경제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여성이 경제활동에 활발히 참여하게 되며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이라는 성별에 따른 분업 현상이 조금씩 해체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산업화와 더불어 신자유주의적 가치의 심화로 정리해고, 저임금, 비정규직의 증가와 같은 노동시장 구조의 양극화 현상이 심해졌고, 여성노동자들은 이에 따라 점점 더 열악한 노동환경에 노출되었다.
이 시절의 남성은 교육을 통해 출세하여 가문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목표였다. 따라서 모든 교육적 자원은 남성에게만 몰렸고, 여성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기회 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성이 교육을 받는 동안 여성은 오롯이 혼자서 가정의 생존을 위해 빈곤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따라서 빈곤 가정의 여성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노동을 시작했다. 남성들이 교육을 받으며 출세할 고민을 하는 동안 여성들은 자신의 배고픔과 가족의 허기짐을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법을 고민해야 했다. 그렇게 소녀들은 자신의 처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해 생계를 꾸렸다. 그렇게 직업으로서 가사노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신분 해체 이후 '하녀'라는 신분에서 계약관계의 식모로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교육을 못 받은', '어린', '여성'이라는 딱지가 붙어 인권과 노동권이 존중되지 않는 노동환경으로 내몰렸다.
여성들은 독립된 노동 공간도 보장받지 못한 채 노동을 이어갔다. 권위주의적이었던 국가, 그리고 주인은 식모들에 대한 일상적 폭력과 착취를 통하여 자신들의 안락과 일상의 편리함을 얻었다. 하지만 식모들은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의 행해졌던 고역의 노동을 고역으로만 소비하지 않고 '능력'으로 전환시켜나갔다. 주인집이 가사노동에 대해 오롯이 식모들에게만 의존하는 것을 기반으로 자신의 존재를 단순 '하녀'가 아닌 독립적인 '사회적 존재'로 확장시켜내며 전통적 하녀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냈다. (강석금, 2015)
| 식모난 현상에 따른 파출부의 등장
식모들은 고된 노동을 견디며 자신들을 필요로 하는 사회에 존재감을 각인시켰고, 이들의 존재는 사회적인 이슈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식모들에 대한 인권유린이 계속되며 여성 노동자들은 식모로서 종사하는 걸 꺼리게 되었고, 산업화 과정에서 성장한 제조업으로 대량 유입되었다. 이에 따라 식모난 현상이 가중되었다.
식모 고용인들은 너무나 많은 노동량을 식모들에게 전가시키며 식모들의 능력이 향상되는 결과로 이어졌지만, 동시에 고용인의 가사노동이 식모들에게 전부 의존될 수밖에 없는 결과로도 이어졌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는 식모에 대해 ‘나이 어리고 못 배웠으며, 힘들고 더러운 일을 수행하는 여자아이’라고 보았으며 식모 노동을 천한 노동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그러나 식모 노동이 천한 것이 아니라 그 노동을 그러한 관점으로 바라보는 권위주의 국가와 사회인식의 ‘천박’함이 드러난 것이다 (강석금, 2015)
식모들의 감소와 고용인들의 요청에 의해 시간제 식모 교육이 1967년 YWCA에 의해 처음 시행되었다. 식모 노동은 전일제 식모에서 시간제 식모(파출부)로 변화했다. 시간제 식모란 '식모가 없는 집이나 잔치 손님 초청, 김장 담그기 등 갑자기 일손이 필요한 집의 주문을 받아 나가서 일당을 받고 일을 해주는 출장제 가정부'이다.
YWCA는 가사노동을 정량화, 체계화하여 가사노동을 분석 및 평가 그리고 교육을 진행하였고, 전문직 노동으로서의 가사노동을 위한 기틀을 잡아나갔다.
| 여성의 경제적 독립을 가능케 한 가사노동
신분 해체 이후 파출부의 등장까지 가사노동의 성격은 가정을 유지해나가기 위한 '생계유지 생산노동'이었다. 하지만 여성들은 한 발짝 더 나아가 가사노동을 통해 주체적인 수입구조를 창출하여 남편과 자식으로부터 경제적 종속에서 벗어나길 바랐다. 이들은 직업으로서의 가사노동을 여성에게 적합한 노동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전문화, 능률화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가사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 경험을 현재에 머물지 않고 지속적으로 변화, 발전시켜가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한다. 기존의 통상적 노동, 청소, 빨래, 다림질하기 등에서 좀 더 확장하여 정리수납 교육, 가구·싱크대· 소파 외관을 깔끔하게 닦는 방법, TV처럼 정전기가 일어나는 가구의 경우 어떻게 하면 정전기를 줄이고 먼지를 없애면서 오래 깔끔하게 쓸 수 있는지 등 가사노동을 세분화 전문화시켜 고객들에게 전문성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능력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가사노동자 노동 주체와 노동 성격 변화, 2015)
가사노동자들이 전문성 확보를 통해 직업인으로서의 자신감과 정체성이 확립되었다. 또한 고용인의 개인적, 비가시적 관계를 통한 허드렛일 담당자로서 소비되기보다는, 사회적 생산노동의 일부가 되어 전문 직업인으로서 그 위치를 드러내었다.
식모 노동자로서의 여성은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소비적이고 비가시적인 존재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여성들은 그러한 조건에 순응하지 않고 이를 자신의 노동능력으로 전환시켜 그들의 존재와 필요성을 이 사회에 드러내었다. 자본주의 사회가 '무의미한 노동'으로 배제시킨 가사노동을 가시화하며 그들의 정체성을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적극적인 노동자로서 재정의하였다.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가 더욱 활발해지며 직업으로서의 가사노동자 역시 사회가 필요로 하는 가시적인 노동자로서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가사노동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영역의 노동이다. 여전히 가사노동은 '교육받지 못한 ', '빈곤한', '여성'의 '하찮은 일'로 그려진다.
그러나 종속적 신분의 '하녀'와 '노비' 시절부터 오늘날의 계약관계로 이루어진 전문직 가사노동자까지의 길을 걸으며 가사노동자들은 가사노동이 누구나 할 수 있는 노동이 아닌 전문직 의식과 능력을 필요로 하는 대체 불가능한 가치의 노동임을 우리 사회에 인지시켰다.
오늘날 사회의 역할, 또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인 우리의 역할은 하층 직업군이자 여성 노동군인 가사노동을 바라보는 인식을 변화시키고 구조적 제도를 개선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직업의 계급 분리와 귀천의식을 없애고 성별과 계층에 의거하지 않은 채 동등한 노동자로 그들을 오롯이 인정해주어야 한다.
소비자들이 비용을 지불하고 상품 혹은 서비스를 구매하며 만족감을 느낌과 동시에 모든 노동자들은 본인의 노동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모든 노동은 신성하고, 모든 노동자는 정당한 권리와 동시에 안전하고 행복한 노동환경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하기에.
참고문헌 |
가사노동자 노동주체와 노동성격 변화 - 강석금, 2015
한국의 가사노동자 규모와 그 의미: 노동시장 및 젠더체제 특징과 관련하여 - 김영순, 최성은, Margarita Estévez-Abe, 2014
저소득층 기혼여성의 노동의 의미에 관한 연구 - 소규모 식당노동 종사자를 중심으로 - 김효정,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