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some personas
선크림이 자꾸만 눈을 찔렀다. 눈이 시려서 더 이상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어디 눈두덩 같은 데서 흘러내린 것인지, 눈을 깜빡일 때 속눈썹에 묻은 선크림이 눈에 들어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 눈 안 빨게? 선크림이 눈에 들어갔나 봐. 자꾸만 눈이 따갑네. - 괜찮아 보이는데요. - 아 근데 눈이 너무 따가워서, 아마 선크림이 눈에 들어간 것 같아.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찬 물로 눈 주변을 씻으니 좀 괜찮아졌다. 평소에는 잘 안 바르던 선크림을 너무 많이 발랐나 보다. 눈 주변에는 바르면 안 되는 선크림인가 보다. 아니, 모든 화장품은 눈 주위에는 바르면 안되는 것인가. 아무튼 내게는 선크림이 일종의 화장 같은 것이었다. 피부를 위해 햇볕을 가리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이 선크림은 화이트닝 효과가 있어 얼굴이 하얘지고 조금 더 잘 생겨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한참 어린 후배였지만. 어쨌든 실로 오랜만에 단 둘이 만나는 이성이어서 좀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계속 선크림은 눈동자 안으로 파고 들어오고, 눈물은 새어 나오고, 신경이 쓰여 대화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사실은 잘 보이려고 면티와 셔츠도 샀었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간 옷가게였는데. 성공적인 의류 구매였다고 자평을 했다. 그밖에 담백하게 몇 가지 더 신경을 썼었다. 모두 외모와 관련된 것이었다.
마스커에게는 가면mask이 필요했다. 나는 가면극의 배우masker였다. 나의 가면 주머니에는 여러 개의 가면persona이 있다. 꼭 먼 관계나 사회적 관계에서만 가면을 쓰는 것은 아니다. 친구 사이에서도 가면을 쓴다. 배려하기 위해. 우정이 깨지는 공포를 피하기 위해. 그날의 약속을 친절하게 마무리하기 위해. 어른이 될수록 가면은 늘어난다. 가면은 꼭 써야만 하는 것이다.
남녀 사이에서라면 훨씬 더 섬세하고 두터운 가면을 써야만 한다. 이성을 만날 때, 특히 그녀가 처음 만나는 이성이라면 상황에 맞는 가면을 바꿔 쓰느라 정신없이 분주하다. 예쁘다. 아닌 것 같다. 멋있다. 추접스럽다. 마음에 드는 순간. 마음에 들지 않는 순간. 모든 것을 숨기기 위해 호로록 면을 들이켜고, 윙봉을 뜯고, 물을 삼킨다.
아무리 친해도 거의 대부분의 관계는 적당한 가면을 쓴 채 이루어진다. 그토록 피로한 수많은 관계들 중에 드물게 가면을 벗어젖히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너무나 소중하다. 아이처럼 솔직해질 수 있는 관계는 정말 특별한 관계다. 우리가 목말라 있는 궁극적인 관계란 서로에게 아이가 될 수 있는, 언제나 아이여도 괜찮은, 그래도 서로를 오해하지 않을 수 있는 관계일 것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현실은 우리가 가면을 벗는 것을 그렇게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서로를 아이로서 만나는 일에 우린 수없이 실패한다. 그 속에서 학습하고 배우게 된다. 어른이 되면 이제 영혼의 어린아이는 작은 뒷방 안에 얌전히 앉혀두어야 하는 거구나. 나의 아이는 4월의 캠퍼스 강의실 창 안으로 새어 들어오는 봄바람처럼, 봄바람이 불어올 때 한 번씩 나비의 날갯짓처럼 나부끼는 커튼과 같이 보여 줄 수 있을 뿐이다.
어른의 세계에서 솔직함은 때론 지성과 교양의 부족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긴장감이 있어야 하는 이성관계에서 너무 천진난만한 솔직함은 실망을 불러일으키는 모먼트가 되기도 한다. 존재의 실재와는 상관없이 그런 실망감은 남녀 사이에서 수도 없이 진동한다. 네가 성숙한 어른이 됐으면, 어른다운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어. 판타지와 같은 기대는 불필요한 실망만 양산하고, 실망의 대상은 억울해하고, 화를 참게 되고, 미움이 싹트고, 사랑을 망쳐버린다.
모든 것은 나에게서 시작된 것이다. 나의 문제다. 나의 잘못된 기대가 모든 것을 그르친 것이다. 우린 모두 아이가 아닌가. 처음부터 아이로 태어나 평생 그 아이를 품고 살아가지 않나. 모두가 아이면서 그렇게 서로에게 어른을 기대하고, 오해하고, 실망하고, 발걸음을 돌이킨다. 더 엄격하게 어른처럼 보이는 사람을 만나지만 그도 어른인 체하는 또 다른 아이일 뿐이다. 그는 이전의 그 사람보다 더 경직된 아이였을 뿐이다.
이런 관점으로 볼 때, ‘어른’이란 개념이 지시하는 실재는 이 세상에 아예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도 아이면서, 아이일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교제하는 상대는 기댈 수 있는 어른이기를 바라는 것은 모순적이다. 대신 우리 모두가 아이니까 서로 기댈 수 있을 만큼 어깨 폭이 맞는 아이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명하다. 오랫동안 찬 곳에서 냉기에 떨고 있는 나의 아이를 안아 녹여줄 수 있을 만큼 따뜻하고, 가능하면 넓고 깊은 영혼을 가진 아이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훨씬 성숙하고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 있는 태도일 것이다.
그런 사랑에 실패한 사람들이 자꾸만 에로스는 한순간이다, 결혼에 로맨스는 없다고 하는데. 그것만큼 에로틱하고 로맨틱한 만남이 또 어딨는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에로스와 로맨스에 대한 이해가 비뚤어지고 타락한 것이지.
운명적인 로맨스를 찾으면 나의 가면극이 끝날 수 있을까. 무거운 가면들을 언제 벗을 수 있을까. 성숙해지면 연극이 끝날 수 있을까. 순수한 아이의 영혼을 되찾으면 끝날까. 그런 생각들을 계속 하게 되었다.
그런 고민을 하며, 오이 비누로 세수를 했다. 평소에는 짜서 쓰는 고급 세안제를 사용하는데, 고민이 많다 보니 대충 세수하려고 무심코 집어 든 게 한낱 오이 비누였다. 의외로 오이 냄새가 너무나 상쾌했다. 오랜만에 맡는 오이 비누 냄새. 세수를 하면서 얼굴의 로션끼나 유분이 모두 걷어지는 것 같았다. 오이 비누로 세수를 한 맨 얼굴. 있는 그대로, 청순한 나였다. 언제나 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맑고 청순하게, 정직하고 솔직하게. 깨끗하게 맑게 자신 있게.
어른이 된다는 것은 화장이 두터워진다는 것이다. 화장뿐 아니라 사람을 만날 때 쓰는 인격적인 가면도 두터워지고, 지갑도 두터워지고, 차도 두터워지고. 모든 것이 두터워진다는 것이다. 좀 그냥 가볍게, 솔직하게 그렇게 경쾌하게 만날 순 없을까. 이제 그렇게 만나기는 영 틀려 버린 것인가. 아무 선입견도 조건도 없이, 스무 살처럼 가볍게 만날 수는 없는 것일까.
그 후배를 만나는 내내 난 시종일관 횡설수설 했다. 나의 삶에 대해 방어적 핑계를 늘어놓는다든지, 꼰대 같은 조언을 한다든지. 눈을 찌르는 선크림 때문이 아니었다. 변명을 좀 하자면 잠을 못 자고 나가서 피곤이 씻기지 않아 영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벗자 벗자 생각했던 페르소나가 벗어지지 않았다. 나의 가면은 너무나 두텁고 무거운 것이었다. 잘 보이려고, 또 배려하려고 하다 보니 도무지 있는 그대로 투명하고 솔직할 수 없었다.
처음 그 후배를 오랜만에 보게 되었을 때는 이십 대 때의 나로 돌아간 듯한 영혼으로 보고 싶었다. 두려움 없이, 어떤 사심도 없이, 자신 있게, 클린 앤 클리어처럼 보고 싶었다. 클린 앤 클리어의 영혼이 되어, 그렇게 바라보고 싶었다. 그러나 난 덕지덕지 가면을 쓰고서 먹고 말하고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맛있게 먹지 못했고, 아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아무것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집에 돌아오니 식당 화장실에서 어푸어푸 찬 물에 씻었던 선크림도 모두 녹아 있었고, 새로 산 린넨 셔츠도 축 쳐져 있었다. 나의 영혼을 보는 것 같았다. 셔츠만 대충 벗어 걸어두고서 입을 벌리고 프리미어 리그를 봤다. 그리고 방에 들어와 그대로 쓰러져 깊은 잠을 잤다. 혁대도 안 푸른 채. 스탠드도 켜놓은 채. 그대로 한참을 잤다.
다음날 일어나 오이 비누로 어제의 가면을 말끔히 씻었다. 괜찮다. 다시 나의 영혼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 그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내게는 한참, 끝도 없이 남아 있다. 한참 한참 남아 있다. 그러니까 이제 다시는 어리석게, 선크림이 눈을 찌를 정도로 바르지는 말자고, 촌스럽게 새 셔츠를 사고, 새벽에 잘 닦이지도 않는 구두를 닦지는 말자고, 맑은 영혼으로 나가 떨리면 떨리는 대로 순간에 집중하자고 스스로 다짐하지만. 잘 될지 모르겠다. 잘 안 될 것이다. 또 망할 것이다. 수백번을 망하고 나서 암막 커튼을 완전히 내리고 지쳐 쓰러져 울고 있을 때 홍두깨 부인 같은 여자가 나를 보쌈해서 데려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