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언어는 삶의 집이다. 사람은 거미처럼 언어의 실을 뽑아 거미줄을 치고, 그 안에서 노닌다. 우리는 자신의 입으로 뽑은 언어의 거미줄 밖을 짚을 수 있는 재간이 없다. 존재와 삶을 넓히는 거의 유일하고, 가장 직접적이고 확실한 방법은 언어의 세계를 넓히는 것이리라. 그렇게 굳게 믿었다.
공부를 하거나 대화를 하거나 글을 읽거나 쓰는 기회는 최대한 많이 잡으려고 했다. 낙서를 하든 감정을 정리하는 글을 쓰든 논리적인 글을 쓰든. 책을 읽든 책의 표지를 쓰다듬든. 혼자 중얼중얼 독백을 하든. 그야말로 언어 능력과는 아무 관계도 없어 보이는 다양한 방법까지. 마구잡이로, 대책 없이 언어의 세계 주변을 맴돌며 언어와의 접촉면을 늘려온 것 같다.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겠다. 무언가에 홀린 듯 이끌려 그렇게 되었다고, 우선 그렇게 말해 둬야겠다.
원래 난 어렸을 적부터 숫기도 정말 없었고,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일에도 자신이 없었다. 언어에 재능이 있는 사람은 부러움의 대상, 아니 나와 너무 멀리 있어서 그다지 부럽지도 않은 판타지일 뿐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조금씩 달라지더니, 어느새 발표를 잘한다든지 대화하면 재밌다든지 글을 잘 쓴다든지(실제로는 정말 그렇지 않지만) 하는 생경한 이야기를 듣곤 했다.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언어가 삶을 넓히고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조금 더 분명하게 보여갔다. 사람들은 언어가 가난했던 이전의 나와 이후의 나를 조금 다른 느낌으로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확실히 이야기꾼은 인기가 많았다. 현실의 삶에서 언어처럼 나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활력과 성취, 행복, 인정. 언어는 그 모든 것들로 가는 하나의 유일한 길이었다. 공부나 취미로서 언어를 넓혀가는 일에 점점 더 흥미와 열정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이 어느덧 내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고 있었다. 집착과 욕심은 더욱 강렬해져 갔다. 그것은 나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의 글과 말은 내가 보기에도 건조했다. 한계였다. 내 입에서 더 이상 새로운 언어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내가 뽑은 거미줄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럴 때마다 언어의 세계와 관련된 막연한 꿈으로부터 멀어질 것만 같아서 암담한 기분에 휩싸이곤 했다.
사랑
사랑의 세계가 있었다. 언어의 세계 너머. 이미 이 세상에는 언어의 실은 조금 부족한 수많은 거미들이 언어 너머의 사랑을 뽑아가며 튼튼한 거미줄을 치고 있었다. 사랑의 실에는 한계가 없었다. 사랑은 늘 같은 언어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힘이 있었다. 뽑아도 뽑아도 나오는 사랑을 영혼에 품은 사람은 그 자체가 새로운 언어였다.
언어의 세계는 위대하지만 그것이 전부일 때는 한계에 부딪히게 되고, 어느새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버린다. 언어는 사랑과 깊숙하고 은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사랑이 없는 언어는 점성을 잃은 거미줄이었다. 사랑이 없이는 생기 있는 존재의 집으로서의 언어의 기능을 못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나의 열정은 언어를 드러내는, 언어가 지시하는 근원적인 사랑을 향해야 했다.
만남. 대충돌. 무시무시한 위험. 사랑은 그런 것일 테다. 사랑의 거미줄을 입에 한가득 물고 억척스럽게 쫓아오는 존재에게 포획되면, 평생 끈적이는 거미줄에서 허우적거릴 것이다. 하지만 내던져버리고 싶었던 단단하고 무거운 껍질, 기꺼이 맡기고 거미줄에 돌돌 말려 내 옹골찬 영혼 알맹이, 끈질기고 집요한 사랑의 거미에게 붙들려 잡아먹힌다면. 그때 내 영혼, 허물을 벗은 듯 가벼워질 것이다. 논리와 언어의 허물을 드디어 벗어버릴 것이다. 목말라하던 자유와 안식에 성큼 가까워질 것이다.
안부를 물어올 때마다 거의 형식적인 대답으로 넘겨 버리기 일쑤였다. 물론 하와유에 논문을 쓰기는 그렇지만. 으레 하는 물음일 뿐이지만. 호응하는 언어가 내 안에 없다고 느끼며 나의 동공은 많이 흔들렸다. 그런데 이 정도면 나는 정말 진심으로 대답한 것이다. 이만하면 어느 정도 안부에 대한 본질적인 이야기는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