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여름이었다. 날 포함해 다섯 명의 청춘 남녀가 낭만적이고도 복잡다단했던 선교 여행을 마치고 마침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열기로 가득했던 필리핀에서의 시간들이, 무더웠던 하나의 계절이, 이제 완전히 끝나가는 비행기 안이었다. 비행기가 완전히 멈추고 도착을 알리는 기장의 안내 방송이 나오자 기내에서는 안전벨트를 푸는 소리, 짐을 챙기는 소리, 설렘과 안도의 말소리 등이 분주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다시 한국이 시작되었다. 삶이 시작되었다. 꿈에서 깨어나야 할 시간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기내에서 비행의 종료를 알리는 알람 음악이 흘러나왔다.
When the rain is blowing in your face. And the whole world is on your case. I would offer you a warm embrace. To make you feel my love.
나는 한동안 그대로 멍하니, 비좁은 좌석에 몸을 누이고 앉아 있었다. 음악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좋았다. 귀가 쫑긋해졌다. 영혼을 울리는 목소리와 야성적인 멜로디였다. 그대로 얼어붙어 오래도록 멈춰 있고 싶었다. 울고도 싶고, 웃고도 싶었다. 어떤 노래인지도, 어떤 뜻인지도 몰랐지만 일순간 알 수 없이 뭉클하고 아름다운 감정으로 스며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간의 선교 여행의 시간들, 앞으로 한국에서는 또다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또는 아직까지도 여운이 조금 남아있는 옛사랑의 기억. 기내의 소음과 함께 들리는 음악에 귀 기울이는 동안, 그와 같은 마음의 부유물들이 신기하게도 차분히 가라앉았다. 귀에 들렸던 일부의 가사를 검색해보고 어떤 노래인지 알게 되었던 것 같다. 휴대폰을 켜고 기내에서 검색했던가, 비행기에서 내려서 찾아보았던가. 아무튼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았던 것 같다. 밥 딜런의 Make you feel my love였다. 4년이나 지난 지금도 그대로 그 기내에 앉아 있는 것처럼 그 순간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신기하게도 그때가 매우 긴 시간처럼 느껴진다. 사실 정말 짤막한 시간이었는데. 그렇게, 슬로비디오처럼 흘러가는 기내 분위기를 즐기며 난 영원의 한 조각을 떼어낸 것만 같은 시간 속에 있었다.
When the evening shadows and the stars appear,
And there is no one there to dry your tears,
I could hold you for a million years
to make you feel my love.
그리고 한동안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작년쯤이었나, 언젠가 또다시 그 노래를 한 ccm 가수가 라이브로 부른 것을 보게 되었는데. 친절하게도 자막으로 한글 번역 가사가 나왔다. 그런데 가사를 읽으며 들으니 그때와는 또 다른 감동이 밀려오는 것이다. 그동안 켜켜이 쌓인 설움과 두려움, 억울함, 분노 등의 감정이 모두 풀어지고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당시 내가 서있는 삶의 자리는 4년 전과는 또 다른 시공간이었다. 무엇보다 어머니께서 큰 수술을 받으시고 여전히 투병 과정 중에 있으셨고, 그 일을 둘러싼 일들과 그로 인해 또다시 아팠던 마음들, 그리고 그 외에도 많은 일들과 또, 아무 일도 없음. 나는 마음을 내려놓을 곳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비바람이 네 얼굴에 몰아칠 때
세상 모든 이들이 널 비난할 때
내가 널 따뜻하게 안아줄게
내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어둠이 깔리고 별들이 나타날 때
너의 눈물을 닦아줄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내가 널 아주 오랫동안 안아줄게
내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지금 난 한 주 전 호흡과 의식을 잃으셨다가 만 하루 만에 하나님의 은혜로 깨어나신 어머니 곁, 동그란 철제 의자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어제는 어머니께서 괴성을 지르며 아파하셨다. 깨진 파일을 텍스트 문서로 열어 보았을 때처럼 알아듣기 힘든 말을 하시고, 아이처럼 애걸복걸하며 절규하셨다.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어머니의 몸에 꽂은 네 개의 링거처럼 매 순간 마음속에서 뚝 뚝 눈물이 흘렀다. 선명하게 바라보면서 똑똑히 배우고, 느끼고 있다. 영혼이 지르는 비명이 어떤 것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시편이 시간이 되고 삶이 되어 흐르고 있다. 어머니께서 의식을 잃으셨던 날 아침부터 깨어나시던 날 새벽까지, 그리고 오늘, 어머니의 두 볼과 이마와 입술에 수십 번의 뽀뽀를 했다. 마음은 수만 번 수억 번 별처럼 모레처럼 많은 뽀뽀를 하고 싶었다.
어머니가 편찮으신 일뿐만 아니라, 수많은 고민과 괴로움, 두려움, 한숨과 눈물, 오해가 있다. 괴로운 일이 10점과 9점, 8점, 7점, 1점, 과녁 밖에까지 다양하고 빼곡하게 날아온다. 희망과 기적은 무서운 화살들 옆에서 위태로운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기만 하다. 그런 중에도 촛불을 꺼트리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건 영혼 속에 흐르는 신앙의 시편이다. 시나 노래는 놀랍다. 이미 언어만으로도 기적이다. 그것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언제나 별처럼 조용히 빛난다. 가만히 따스한 빛을 내려 비추어, 자기 표정이 아닌 얼굴을 하고 살아가는 누군가의 언 마음을 사르르 녹인다.
난 배가 고플 수도 멍이 들 수도 있어
미친 사람처럼 거리를 배회할 수도 있어
그래 내가 하지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어
내 사랑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라면
비행기에서 처음 들었을 때나, ccm 가수가 부른 것을 다시 들었을 때는 하나님이 그렇게 나에게 노래하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내가 어머니께 그렇게 노래하고 있다.
I’d go hungry.
I’d go black and blue.
I’d go crawling down the avenue.
Oh There’s nothing that I wouldn’t do to make you feel my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