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징검다리
사람이 사람에게 구원이 되어 줄 수 있을까. 아니. 사람은 사람에게 구원이 되어 줄 수 없다. 사람은 모두 똑같이 연약한 존재일 뿐이니까. 그러나 이렇게 묻는다면 답이 좀 달라질 수도 있다. 사람이 사람에게 빛을 비춰 줄 수 있을까. 그건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은 서로의 거친 영혼의 표면을 비춰주는 은은한 달빛이 되어줄 수 있다. 거센 계곡 물살을 건너는 징검다리가 되어 줄 수 있다. 사람은, 사람에게 어떤 길이 되어 줄 수 있다. 구원 그 자체는 아니지만, 구원의 길이 되어줄 수는 있다. 조금 더 힘 주어서, 핏빛 절개를 가슴에 품고 말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사람에게 구원의 길이 되어 줄 수 있는 건 사람일 뿐이라고.
나는 하나님이 바로 그 일을 사람에게 맡기신 것이라고 느끼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의 구원의 되어 줄 수 있는 어떤 재능의 구석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 같다. 겉으로는 또렷이 보이지 않는 어떤 재능을 통해 길을 찾지 못하는 사람에게 하나의 길이 되어 주고, 하나의 새로운 방편이 되어 줄 수가 있겠다고 느끼는 것이다.
얼마 전 사역하기로 한 한 교회의 전도사님과 둘이 늦은 밤에 한 형제를 만났다. 우리는 시원한 여름밤 길가에 캠핑 의자를 놓고, 작은 간이 테이블을 놓고, 그 위에 맥도널드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려놓았다. 그 형제는 자연스럽게 깊은 이야기들을 막힘 없이 풀어놓았다. 우리가 만난 지 30분도 채 안 되었을 때였다. 그가 차디찬 철구슬처럼 하나씩 떨어트려 놓는 이야기를 따라가며 몇 번이나 목이 매이는 것을 눌러 내려야 했다.
우리는 이야기가 잠시 멈추는 마디마다, 또는 이야기가 너무 진해서 무심하고 담담하게 듣는 척 서로를 배려해야겠다고 느낄 때마다 괜히 커피를 홀짝였다. 그러니까 커피는 크게 의미가 없는 오브제였는데, 테이크아웃 투명 플라스틱 커피잔을 집어드는 우리의 손마디가, 우리의 젊음이, 여름 밤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참 싱싱하고도 외로운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내용을 말할 수는 없지만, 그의 이야기에는 여러 사람들의 관점과 아픔, 외로움이 배어 있었다. 인물마다 각자의 입장이 있었고, 사랑과 분노, 애증, 절규가 있었다. 말해지지 않고 이해받지 못한 한 사람, 한 사람의 한 맺힌 한숨이 숨겨져 있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내 안에서 치유가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잘 알지 못하는 내게 그렇게 아프고 힘든 이야기들을 해주어서 고마웠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새 서로에게 구원의 징검다리를 놓아주고 있었다.
그가 나눈 어둠은 이토록 캄캄한 어둠이 이 세상의 전부는 아님을, 이 세계 어딘가에 우리를 비추는 은은한 빛이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어둠이었다. 우린 서로의 내면에서 반짝이는 윤슬을 보았다. 숨 막히도록 검푸른 바다가 달빛을 받아 넘실넘실 출렁이면서 은은하게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