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헤와 사랑
또다시 동네의 유명 중고 서점에 들렸다. 엄마의 품과 같을 순 없지만, 아주 약간은 엄마와 비슷한 편안함을 제공하는 곳. 수천 수만 권의 책이 꽂혀 있고, 그 사이를 천천히 걷는 느낌. 서점에서만 할 수 있는 여행이 있다.
이곳에서 책을 뽑고 만지고 펼치고 읽고 쓰다듬다 다시 넣어두기를 반복하면서, 길을 잃어버리고 싶다. 마냥 길을 잃어버리고 싶다. 그렇게 계속 길을 잃어버리고 잃어버리다 그냥 다만 엄마를 만나고 싶다. 지금 내 소원, 정녕 그것 뿐이다.
난 책을 잘 읽지 않는다. 사고 빌릴 뿐이다. 몇번인가 농담처럼 말한 적이 있다. 연애를 하지 않고도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 책을 읽지 않고도 책을 사랑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그러나 어찌 아예 안 읽을 수 있겠는가. 읽지는 않은 채 들고 다니기만 하고 커피를 쏟기를 몇 차례 반복하다 보면, 억울해서 책을 읽기도 한다. 사놓고 꽂아둔 후 보고 또 보다가 유혹을 견디지 못하면 괜히 뽑아서 만지고, 펼치고, 그러면 궁금해서 읽게 된다.
그렇게 조금씩 문자에 문장에 글의 세계에 물들어 가고 있을 뿐이다. 책을 읽지 않는다. 공부를 하지 않는다. 외우지 않는다. 성공하지 않는다. 학위를 따지 않는다. 안달하지 않는다. 멍청이가 되어버린다. 사랑의 똥멍청이가 되어버린다. 무엇을 애써 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냥 사랑하는 것이다. 그냥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것이다.
이러한 식의 생각은 내가 무언가를,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식에 있어, 중요한 주제가 되어가고 있다. 이것도 하나의 법칙이 되면 안 되겠지만. 물들고 물들이면서, 이해하고 이해시키면서 사랑하는 방식. 그냥 선하게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사는 것. 그 매혹적인 사랑의 방법에 대해서만 골몰히 생각하는 것이다.
사랑은 유일한 사제다 라는 식의 말을 어떤 책에선가 방금 보았는데. 책을 읽지 않고 책을 좋아하는 것처럼, 나는 사랑을 하지 않고 생각과 말로만 사랑하고 있다. 어쩌면 나는 이렇게밖에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한계는 빨리 인정하는 것이 좋을텐데. 이 이중적인 껍질을 벗어 버리고 싶기는 하다.
너무나 분명한 것은 이해와 사랑. 오직 이해와 사랑이다. 그것은 하나이기도 하고 둘이기도 할 것이다. 이해하면 사랑할 수 있을 것이고, 사랑하면 이해가 안 돼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무튼 그것들은 내게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되어가고 있다. 허락되는 날마다 늘 그 주제를 고민할 것 같다. 만일 내가 계속해서 삶을 산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