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 피고 새 우는 내 집뿐이리.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벗 내 집뿐이리.
1
따듯함
지난 금요일 밤에는 외박을 했다. 새벽 3시가 다 될 때까지 친구네 아파트 옥상에 앉아 친구와 이야기를 했다. 대화를 하자고 한 것은 나였다. 그날 저녁, 예배 중에 어떤 마음이 들었는데, 그것은 아주 진지한 꿈에 관한 것이었다. 그 생각을 친구에게 이야기해야 했다. 꿈을 정한 것부터, 어떻게 그 꿈을 이룰 수 있을지까지 섬광처럼 불과 몇 초 만에 일련의 짜임새 있는 생각 뭉치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난, 태어나서 입 밖으로 꺼낸 이야기 중 가장 간절하고 심각한 이야기를 친구에게 할 터였다. Hwap 교회의 예배 후 귀가 시간은 언제나 산만했다. 누가 어디에 타고, 어디에 누가 타고의 문제로, 살아있는 공동체의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아이들을 포함한 친구의 가족 다섯 명과, 서른을 코 앞에 둔 자매 두 명과 한 차에 끼어서 타게 되었다.
그중 한 자매는 얼마 후 먼저 내렸다. 이후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게도, 나머지, 마치 몽골의 명절 대이동을 방불케 하는 일행 전체가 함께 친구의 어느 동역자 가정집을 향하게 되었다. 그렇게 7인의 대가족 일행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한 가정집 현관문 앞에서 당당히 초인종을 누르게 된다. 열시를 훌쩍 넘 시간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깊은 밤에 이럴 수 있다니. 선교지에서의 문화 충격과 비슷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살아있다는 것은 이런 건가. 복작복작의 삶이 신기하기도 했고 신나기도 했다. 오들오들 떨고 있던 내 영혼이 어딘지 노곤해지는 듯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고, 아무튼 싫지는 않았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큼지막하게 그대家라고 쓰여있었다. 어딘지도 잘 모르고 따라갔던 아파트의 이름이 참 예뻤다. 아마 친구는 그 가정에서 바득바득 주겠다고 한 추석 선물세트를 받으러 가게 되어 있었나 보다. 잠시 후 안경을 쓰고 인상 좋아 보이는 건장한 체격의 젊은 남자분이 현관문을 열어주시더니, 우리를 향해 들어오라고 손짓하신다.
정말 들어가는 거구나. 그렇게 얼떨결에 들어갔다. 집에 들어가자 그 시간에도 환한 웃음으로 환영해주시는 젊은 부부 내외 분들과, 보너스로 더해 귀여운 개구쟁이 남자아이 둘이 몽골 일행을 반겨준다. 우리는 의자에 앉아 음료를 대접받으며 어느 기업의 대표라고 소개받은 그 가정의 가장이신 형제님과, 소박하고 아름다운 사모님과 함께 그렇게 거의 한 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런데 왜 우리 몽골 대가족이 일제히 그 심야에 함께 그곳에 들어가야 했는지, 그리고 그 가정집에서는 그 늦은 밤 어떻게 이 대일행을 환영하며 집에 들어오라고 하시며 친절을 베푸셨는지, 아직 알 수는 없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얼마나 비지니스 사역에 열정을 갖고 있는지, 오랫동안 직원들에게 얼마나 열심히 성경 공부를 시켜주고 양육을 하려고 애써왔는지는 알 수 있었다. 나는 듣는 것을 좋아했고, 다만 우리를 환영해준 형제님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었다. 흥미진진한 비지니스 사역 이야기와 형제님의 입담에 빠져 정신이 몽롱해져 가고 마음과 달리 눈의 초점이 자꾸만 맞지 않아 죄송해져 갈 무렵, 일행이었던 자매의 귀가 시간을 명분으로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떨결에 영문도 잘 모르고 들어간 ‘남의 집’. 그런 뜻밖의 상황에서 마주 하게 된 그 가정이 왜인지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 형제님의 신앙에 대한 열정과 진지함과 밝음. 그리고 자매님의 온화한 웃음과 인격에서 베어 나오는 푸근함. 세상을 향해 활짝 열려있는, 그 가정의 어떤 평화로움. 그런 것들이 내 마음을 너무나 따듯하게 했다. 그리고 내 영혼까지 정화시켜 주는 듯한 맑고 순수한 눈빛의 귀여운 남자아이들까지. 다복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주 잘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친구와 나누려던 대화의 주제는 정말 진지하고 비장한 것이었다. 그건 충만함보다는 결핍에, 시작보다는 끝에, 삶보다 죽음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런데 그 그대가 가정에서 느꼈던 분위기가 너무나 따뜻하고 화목해서 친구에게 하려던 이야기가 쏙 들어가 버렸다. 행복하게 산다는 것에 대해서 잠시나마 넋을 잃고 생각해 보았다.
2
추움
나에게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많은 친구가 있지만, 그 이야기는 그 친구와 해야 했다. 그런데 유독 그 친구는 진지한 대화를 충분히 하기 힘들 만큼 항상 바쁘고, 뭐랄까, 아무튼 정말 내가 좋아하지만, 좋아하는 만큼 정신없는 vibe도 강렬하게 느껴지는 친구였다(미안해 친구야). 야생에서 뛰어다니는 치타를 붙들고, 앉아, 일어나, 손을 훈련시켜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서울 출신 동물원 조련사의 막막함이 느껴진달까. 그럼에도 내가 그를 좋아하고 그에게 깊은 이야기를 하게 되는 까닭은 우선 그는 영혼이 맑고, 또 정직하고, 결정적으로 묘하게 인격적으로 기대게 되는 매력이 있다. 아마 가진 것 없는 그 볼품없는 목사의 주변에 수많은 청년들이 득실거리는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어쨌든 나는 그 밤의 다사다난했던 일정 내내 친구에게 오늘 우리가 과연 대화를 할 수 있는 거냐고 끊임없이 묻고 확인을 해야 했다. 일전에도 친구와 어렵게 약속을 하고 만났지만 이마트 24에서의 킹크랩 맛살 원 플러스 원 논란 등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분주함으로 가득 찬 시간을 보내다가 대화라고 할 수 있는 말은 한마디도 못 하고 만신창이가 되어 헤어졌던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결국 그날 친구와 나의 만남은 분주함의 도미노 현상 끝에, 야외에서 컵라면을 먹으려고 편의점에서 텀블러에 담아왔던 뜨거운 물을, 나 스스로 내 팔목 위에 쏟으며 화상과 마상만을 남겼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지난 금요일 밤은, 기나긴 시간의 미로를 지나 결국 둘이 있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자매가 아닌 누군가와 둘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이렇게까지 간절하게 원한 적이 있었던가. 다른 차로 갈아타 둘만 앉아 있던 소형차 안에서 내가 이야기의 운을 뗐을 때 친구는 (엄청 오랜만에) 전율을 느꼈다고 했다. 이미 그때 심각성을 느껴서였는지 친구는 집에 오자마자 일사천리로 나와 단 둘이서만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었다. 우린 두 발짝만 옆으로 가도 엄마를 만날 수 있는 곳에서 화로 같은 것을 피우고, 그 위로 냄비를 올려놓고 건라면을 끓여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약간은 추운 듯 쌀쌀한 가을 밤바람. 계절의 정취. 달빛 아래 고공 옥상에서 먹는 라면 맛. 이렇게까지 드라마틱할 필요는 없었는데. 난 정말 단순한 생각인데. 잠깐이면 끝나는 이야긴데.
친구가 잠깐 앞접시를 가지러 집에 내려가서 아슬아슬한 시간과 공간에 혼자 있게 되었을 때는 가을밤의 그곳이 너무 몽환적이어서 잠깐 딴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그건 정말 상상일 뿐이었다. 나에게는 그보다 훨씬 진지한 계획이 있었다. 난 심각하고 분명하고도 간절한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대체로 듣기만 했다. 나의 이야기가 자칫하면 허세나 지나치게 감상적인 것으로 느껴질 수 있는 내용이라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지만 나는 한치의 가식도 없는 진심이었다.
나는 아이도 반려자도 없고, 복잡하게 유착된 사역 관계나 경험도 없어서 사역자로서는 정말 최고의 꿈을 꿔볼 수 있는, 최적의 홀가분한 신분이다. 물론 지금도 사춘기 여고생처럼 하고 싶은 것도 너무나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너무나 많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만나고 싶은 사람들도 너무나 많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단순하고 분명해졌다. 이전까지, 자꾸 우연히 듣게 된 설교 등을 통해 들려오거나 나 스스로 떨쳐버리려 했던 생각, 즉 주님께 나의 전부를 드려야만 할 것 같다는 낭만적 소명의식을 이제 피비린내 나는 구체적 현실로 살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글을 쓰고 생각하면서도, 지금도 허황된 것처럼 느껴지는 생각들이다. 나는 절대로 꿀 수 없었던, 결코 내가 꿀 리는 없는 꿈들이다. 지금도 잠꼬대하듯, 꿈꾸듯 꾸는 꿈이다. 모든 것이 꿈만 같다. 늘어지게 자던 한 숨 낮잠의 꿈이었으면 하고 절실히 바라는, 꿈 속의 이야기 같은 시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