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 sharp questions

사역자가 가져야 할 날카로움에 관해

by jungsin



“여러분이 가진 희망을 설명하여 주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답변할 수 있게 준비를 해 두십시오.”

- 베드로전서 3:15






사역자는 날카로워야 한다. 몽툭해서는 안 된다. 그만은. 다른 모든 신앙인들이 뭉툭할 때도 그만은, 날카로워야 한다. 외과의사의 날카로운 메스처럼 날카로워야 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아우성. 멍든 마음. 애통하는 마음과 절망적인 비명. 그것들과 맞닿아 공명할 수 있는 날카로운 울림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당신은 종교입니까? 당신은 법칙입니까? 당신은 공포와 두려움입니까? 당신은 고난과 은혜를 왕래하는 변증법입니까? 당신은 다시는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절망적인 상실의 더 크고 높고 깊은 대체물입니까? 아니면 당신은 고작 훈련과 성숙입니까? 비통함과 공포스러운 어둠에 빠져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묻는 사람들에게 뭉툭한 종교적 공식을 내놓는 사역자는 사역자가 아니다. 그는 종교인이다. 뭉툭한 답은 종교에 머무를 뿐이다.


그럼 날카로운 답이란 길고 어지러운 수학 공식 끝의 분명한 정수 해답으로써의 1과 0 같은 것일까? 때로는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아직 답을 모른 채 하염없이 아파하는 마음. 단지 사랑으로 쩔쩔매며 끙끙 앓는 마음. 밤새 이리저리 뒤척이며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알 수 없는 마음. 세상 사람들이 모두 관심을 갖는 흔한 뉴스에도 마음을 기울일 힘이 없을 만큼 자신의 상황에 갇혀 절망하며, 길을 찾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마음. 그러한 마음들이 더 날카로운 마음이다. 하나님이 정말 언제나 온전히 좋으신 분이라면, 그의 선하심의 묘미는 바로 그러한 지점에 있을지 모르겠다.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누군가의, 삶을 향한 암울하고 비관적인 질문에 한 사역자가 늘 재킷 안주머니에 품고 있던 종교적인 교리로써의 지식을 바탕으로 명쾌하고 명랑한 대답을 준다면, 물음을 갖고 있던 이는 어떤 기분이 들까? 그는 성직자뿐 아니라 개신교에 대해, 급기야 하나님에 대해 실망하고, 하나님의 세계가 그 대답처럼 얄팍한 것이라고 느끼게 되지 않을까? 사역자는 오랜 시간의 깊은 고민이나 절절한 경험 없이도 소외의 한 복판에서 오돌오돌 떨며 질문하는 이에게 뜨끈한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세계의 모서리 끝 가장자리의 추위를 모르는 사역자는, 한 영혼의 얼어붙은 가슴을 과연 어떻게 자신의 종교로 메울 수 있을 것인가?


그러니까 아마도 사역자라면 이런 느낌을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는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목사들보다 조금 더 깊은 아픔과 조금 더 먹먹한 희망이어야 하고, 좀 더 뜨거운 사랑이어야 한다. 어쩌면 그는 정답을 모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그는 하나님을 변호할 생각을 말고, 차라리 사람을 변호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의 편에 서서 하나님을 향해 과감히 삿대질할 수 있는 사역자. 그러니까 그는 푸르른 희망이기보다, 차라리 검푸르딩딩하게 멍든 희망이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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