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에 관해서

우리를 끌어당기는 힘

by jungsin


매력은 확실히 개방성과 관련이 있다.

한번 생각을 해보자.



1

아주 아리따운 피아니스트가 연주를 하고 있다. 그녀는 지금 너무 정숙하지도 너무 파이지도 않은, 아주 적당히 아름다운 선을 가진 살구색 드레스를 입고 삼십 분째 연주를 하고 있다. 나는 앞에서 세 번째 줄 객석에 앉아서 하염없이 그녀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표현하기 어려운 어떤 감동을 받고 있다. 그녀의 연주가 예술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는 연주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문과생 출신이 보기에도 틀림없이 너무나 훌륭한 연주인 것 같다. 무엇보다 그녀가 연주를 하고 있는 자태가 너무도 신비롭고 아름답다. 그녀의 예술성. 그녀의 몸짓. 그랜드 피아노 안에서 울려 퍼져 객석 세 번째 줄의 내 몸까지 공명해 오는 피아노 선율의 파동. 모든 것이 완벽하다. 하지만 딱 한 가지. 결정적인 결핍이 있다. 그 무엇도 정말 내 것은 아니라는 것.


연주가 끝났다. 나는 다른 관객들과 함께 거대한 연주회장을 빠져나왔다. 바깥은 어스름한 어둠이 내려 앉았고, 어느덧 공기도 쌀쌀해진 것 같다. 한 십분 쯤 걷다가 하얀 커튼이 쳐져 있는, 작고 아늑한 한 개인 카페를 발견하고 망설임 없이 들어갔다. 따뜻한 라테 한 잔을 주문해서 창가를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가방에서 가벼운 철학 대중서 한 권을 꺼내 읽으며 커피를 즐기는 데 몰두했다.


딸랑딸랑. 커피를 반쯤 마시고 있을 즈음 문이 열리더니 한 여자가 성큼성큼 들어오는 것 같다. 이 카페에 손님이라고는 나 혼자밖에 없었기에 그녀의 움직임이 조금은 신경이 쓰였지만, 정말 나는 나와 아무 상관없는 그녀에게 거의 관심이 없다. 언듯 보기에 찢어진 밝은 색 청바지에 가죽 재킷 차림이다. 그녀 역시 따뜻한 라테를 주문하는 것 같다. 머그를 두 손에 꼭 쥐고 잠깐 자리를 찾는 것 같더니 창밖이 보이는 자리, 그러니까 바로 내 옆 자리로 걸어오는 것 같다. ‘어머, 안녕하세요.’ 그녀가 나에게 인사를 한다. 왜지. 뭐지. 누구지, 이 여자. 도대체 왜 모르는 사람한테 다정하게 인사를 하지. 전도하려 그러나.


당황하며,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아, 네... 안녕하세요..?’ 얼떨결에 반사적으로 인사는 했지만 도무지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편안하게 푼 머리. 화장끼를 지운 얼굴. 캐주얼한 옷차림. 그냥 상큼하고 싱그럽고 이상한 여자 같다.


‘한 곡 한 곡 끝날 때마다 앞쪽 자리에서 뜨겁게 박수쳐 주셔서 기억하고 있었어요. 제 연주 들으신 분 맞으시죠?’ 그제야 소설의 중요한 대목을 읽어나가듯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읽어 본다. 맞네. 맞아. 그 피아니스트. 아니 그런데 이렇게 입고 환하게 웃으니까 너무 다르네. ‘아아, 네. 몰라뵈서 죄송해요. 연주 잘 들었어요.’


‘네.’ 그녀가 짧은 대답에 뒤이어 거의 무방비 상태라고 느껴질 만큼, 혹은 온 세상의 모든 종류의 적개심을 음소거시켜 버릴 것처럼 환하게, 활짝 열린 미소로 싱긋 웃어 보인다. 나는 이때부터 조금씩 무너졌다. 어버버 하면서 이상한 말들을 했다. ‘열심히 연주하셔서 피곤하시겠네요.’ ‘아니에요. 연주회 내내 긴장해 있다가 이제 좀 살 것 같아요.’ ‘네.. 그렇군요.’ 그리고 또 한 번 싱긋. 그녀의 싱긋. 무서운 싱긋. 나는 도망쳐 버린다. ‘아.. 네. 그럼.. 좋은 시간 되세요.’ 너무도 떨리고 어색해서 고개를 창문으로 돌려버린다.


그렇게 대화가 끝난 줄 알았는데. ‘혼자 가끔 연주도 보러 다니시고 그러시나 봐요.’ ‘아니요 저는 그냥... 어떡하다가 그냥...’ 또 말을 걸다니. 뭐지. 이 여자. 왜 이러지 이 피아니스트. 이단 종교 교인이야 뭐야. 알게 뭐람. 그런데 어떡하지. 감정이 이상한데. 싱숭생숭, 울렁울렁. 망했다. 큰일 났는데 이거. 수백년 된 고목이 그렇게 쓰러진다. 태풍이 아니라 아프리카 불개미에 의해서 말이다.




2

매력은 힘이다. 힘은 오라aura, 그러니까 어떤 기품으로 표현된다. 어떤 독특한 힘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만의 특별한 기품이 있다. 그것은 사람마다 다른 느낌일 텐데, 사람들마다 다른 그 느낌들을, 우리는 보통 포괄적으로 매력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힘은 자연스럽게 개방성을 가지도록 한다. 야생의 초원에서 배를 보이며 늘어지게 잘 수 있는 종이라면, 그 동물은 이름이 무엇이든 맹수일 것이다. 순록이나 지젤이나 미어캣이 그럴 수는 없다. 약한 종의 세계관은 폐쇄적인 형태를 띤다.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보다 강한 종을 경계해야 하고, 따라서 폐쇄적이 될 수밖에 없다. 다른 동물들처럼, 사람들은 생명과 건강을 따라가기 때문에 힘을 숭배하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폐쇄적인 종에게서는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힘은 보일 수도 있고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보이지 않는 힘을 가진 사람일수록 자신감은 깊은 곳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자신감은 생명의 원천적인 힘에 속해 있는 무엇이다. 인간도 이러한 자연적 원리 안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가 갖고 있는 자신감의 향취에서 본능적으로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힘. 매력. 자신감. 그것을 가진 사람은 애써 자신을 꾸미지 않는다. 자신이 갖고 있는 힘에 만족하지 못하고 열등감에 빠져 있는 있는 불행한 존재는 어떻게든 그것을 짜내어 만들어내려 하고, 그 일이 잘 되지 않을 때는 꾸며서라도 힘이 있는 존재처럼 보이려 한다. 연약함을 덮고, 꾸미고, 치장하는 것이다.


지젤이나 순록과 같은 종은 조심스럽게 선택적인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하고,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그의 태도는 본능상 지극히 경계적이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렇게 자연스러운 태도는 자신에 대한 분별 있는 성찰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일종의 자신감이고, 그렇다면 그것은 힘도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계적인 것과 폐쇄적인 것은 다르다. 순록이 순록일 때는 경계적이면 충분하지만 순록이 맹수가 되고자 한다면, 경계를 넘어 조금 더 억지스러워지고 어색해져서 결국 폐쇄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순록이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무늬를 몸에 그리거나 털 색칠을 하고 초원으로 나가서 맹수처럼 보이기를 원할 때, 그는 반드시 폐쇄적이 되어야 한다. 나는 흑표범이야, 나는 라이온이야 외치고는 큰 나무 뒤로 숨어 버려야 한다.


반면에 힘이기도 하고, 매력이기도 한 어떤 자신감, 그것은 개방성을 갖는다. 맹수는 치장과 무장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만 허기짐을 갖고 어슬렁거린다. 힘은 비어 있는 미답지를 향해 삼투압 작용을 하고 싶어 한다. 자신을 개방하며 끊임없이, 열정적으로 세계를 탐구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서는 표현하기 힘든 매력이 느껴진다.




3

세줄 정도 객석의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피아니스트일 때 그녀의 느낌과 작은 카페에서 만난 그녀의 느낌은 어떻게 다른 걸까. 남자는 그토록 아름답고 매력적인 피아니스트이지만 이성적 가능성이 조금도 없다고 느낄 때, 그러니까 상대는 초원을 지배하는 맹수이고 나는 한 마리 순록 같다고 느낄 때 폐쇄적이 된다. 피아니스트로서 그녀는 비록 아름답고 매력 있는 연주자였지만 그것은 그냥 하나의 현상 같은 것이었다. 하나의 객체로서의 예술가였을 뿐이다. 나에게는 아직 폐쇄적인 대상이다. 아직은 반만 매력이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그녀가 편안한 차림을 하고 환하게 인사하며 개방적으로 나에게 다가올 때는 무언가 달라졌다. 그녀는 이제 화려한 무대에서 내려왔고, 나에게는 또 다른 힘을 보여줬다. 눈을 마주치면서 짤막하게 몇 마디를 주고 받는 동안, 그녀는 조금도 폐쇄적이지 않은 눈부신 힘을 가진 존재가 되었다. 힘으로써의 개방성과, 가시적이고 접근 가능한 관계적 개방성까지 모두 갖추고 다가온 곳이다. 좀 더 완전하고 좀 더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온 것이다. 남자는 그러한 과정을 겪으며 폐쇄성과 개방성 사이에서 큰 폭으로 수없이 미세한 감정의 파동을 느낀다. 남자는 이제 마음의 명도가 달라졌다. 그녀라는 피사체를 바라보는 남자의 시야가 환해졌다.




4

그리고, 다시 한번. 이러한 단어들에 관해서 생각해 본다. 자신감. 힘. 매력. 그것들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것들의 다른 이름은 사랑이 아닐까 한다. 누군가로부터 흠뻑 받은 사랑이 자신감을 만들어 내고, 힘을 축적시키고, 그로 하여금 신비로운 매력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모든 힘의 시작을 추적해보자면 결국.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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