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까만 크리스마스의 새벽들
토니 모리슨의 말처럼 읽고 싶은 글을 찾지 못하겠으면 내가 써야 한다. 내가 아니면 쓸 수 없는 글이 있다고 해도 나는 써놓고 엄마에게 가야 한다.
성탄절 이브와 성탄절에 교회를 안 간 것도, 두 날들 동안 꼬박 잠만 잔 것도 태어나 처음일 것이다. 적어도 처음 내 걸음으로 교회를 다녔던 선교원 이후로는. 내가 기억하는 한 그렇다.
어린 시절. 사 학년쯤이었을 것이다. 나는 빨간 나비넥타이를 매고, (아마 반바지에 흰 스타킹까지 신고) 완벽한 성극 옷차림으로 교회를 향해 갔다. 그때 교회로 가는 발걸음의 설레던 마음을 지금까지도 기억한다. 나에게는, 내가 좋아하던 한 살 많은 친한 형과 함께 성탄절 이브의 저녁 성극에서 중요한 역할이 맡겨졌다. 성극의 하이라이트가 되는 대사를 외치는 것이었다.
어린 나에게도 신비롭고 가슴 벅찰 정도로 장엄하게 느껴지는 대사를 외우고 또 외웠다. 무대 뒤로 걸어올라가 붉은 벨벳 커튼 뒤 새까만 공간에 서 있는데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드디어 우리 순서가 왔다. 고요한 성탄의 새벽. 잔잔히 거룩한 불빛을 밝혀줄 한 마디. 마음속으로는 계속 내가 맡은 대사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틀리면 안 돼. 떨지 마. 머리속이 아득히 까매졌다. 촥. 커튼이 걷혔다.
앞으로 한 걸음 나가서,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신세계 백화점 외벽이 화려한 성탄 조명으로 발려 세상을 비추며 눈부시게 빛나고 있어도 나와는 조금도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동네 어느 교회에선가 교회 청년들이 몇 날 몇 밤 회의를 하고 정성껏 성탄 성극을 준비해서 성탄 이브의 밤에 공연을 했어도,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허름한 자취방에 틀어박혀 답답한 온풍기 공기 속에 갇혀 캄캄한 어둠 속에서 시름과 절망에 짓눌려 있는 나의 세상은 완전히 밀봉된 암흑이었다.
시끌벅적한 축제의 세상과도, 신학적 의미에서의 크리스마스와도 완벽한 단절. 정말 처음이었다. 차라리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에 나오는 스크루지의 성탄절이 더 나았다. 그는 야박한 마음으로라도, 깨어서 성탄절의 공기를 마시기라도 했으니까.
성탄절 다음날도 정확히 똑같은 날이었다. 오전 중에 끙끙 거리며 나가려다가 조금만 쉬어야지 하며 몸을 뉘이고 있었는데. 또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온 세상이 캄캄해질 때까지 자고 말았다. 그러다가는 또다시 자정이 다되어 패딩 조끼 위에 롱패딩을 뒤덮어 입고 거리로 나섰다. 오늘은 대형 마트 24시간 코너에 가야지, 가서 떡볶이 떡과 우유와 계란 같은 것들을 좀 사 와야지.
대형마트를 향해 걸어가다가 편의점이 보였다. 이전에 삼만 원 금액권을 사놓았던 것이 생각났다. 어디 있지. 캡처를 해두었는데. 이상하게 없었다. 찾다가 사진 앨범에서 엄마를 보았다. 그리고 걸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멈춰서 있어선 안될 것 같았다. 엄마도 이렇게 힘내서 잘해보려고 움직여 보려고 힘내 보려고 무언가 더 잘하고 나아져 보려고 하는데. 그렇게 선하게, 착하게 애쓰고 노력하는데. 내가 뭐라고. 나도 그래야지. 거리에서 크게 울 순 없었지만 이미 내 온몸은 거대한 눈물덩이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물방울에 갇힌 작은 개미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하나님은 무슨 하나님.. 하며 울먹였다. 영상 속의 엄마처럼 힘을 내야 했기에 걸음만은 계속 대형 마트를 향해 걸어갔다. 지나가며 마침 큰 교회 앞에 오직 예수라고 쓰여있는 바위 비석을 보면서 무슨 오직 예수 하며 훌쩍거렸다. 힘을 낸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필요가 정말 있는지, 무엇이 희망이 될 수 있는지, 정말 이제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몇 백 미터를 더 걷다가 멈춰 섰다.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벽에 등을 기대고 쪼그려 앉아 엄마의 영상을 보면서 훌쩍거렸다. 너무나 추웠다. 마음도 몸도 너무나 차가웠다. 찬 겨울 공기에 손이 시렸다. 간혹 사람이 지나가면 안 우는 척 소리를 줄이고 눈물을 뚝 그쳤다.
완벽한 어둠. 버려짐. 온 우주에 혼자라는 느낌.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것들이었다. 나는 언제나 너무나 충만했기에 알 수 없는 감정들이었다. 하지만 막연히 그런 순간에 대한 아득한 두려움의 느낌 같은 것은 미리 느끼곤 했던 것 같다. 또래의 교회 청년들과 함께 기도하고 예배하고 나눔을 하고 먹으며 희희낙락거리던 주말, 선교 훈련이 끝나고 토요일 밤늦게 마포대교를 건널 때면 불현듯 이상하게 마음이 울렁거리곤 했다. 아득히 어두워지고 속마저 울렁거리는 듯한 느낌. 엑스여자친구와 그토록 헤어지기 싫어했던 것도 어쩌면 이 정감을 뗄 수 없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상실에 대한 두려움은 우주에 혼자라는 절대적 고독감과 맞닿아있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낙천적인 사람이었다. 아 됐고, 모르겠고. 나에게는 그러나 그런 미래가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굳게 믿었다. 하나님을 믿고 이 따듯한 세상을 믿었다. 그래서 사랑으로 충만한 느낌 안에서 벗어나 완전히 홀로 떨어져 있어 본 적은 아예 없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성탄절 이브에도 성탄절에도 완전히 홀로였다. 이틀 동안 좋아하는 목사님들의 성탄 설교를 계속 번갈아가며 틀어놓고 듣다가 잠이 들곤 했다. 이 절대적 무력감과 절망감을 해결하기 위한 신학적 설득의 시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뭐가 그렇게 피곤했는지. 엄마 말처럼 하는 것도 없이 놀기만 하는데 뭐가 그렇게 피곤한지. 설교 몇 마디를 듣다 보면 나는 금세 또 잠이 들고, 잠이 들고 하기를 반복했다. 결국 어떤 설교도 한 편을 끝까지 듣지는 않았다. 잠에서 깨어서도 계속 들어보곤 했는데, 아직(지금도 계속 찾아서 들을 생각이다.) 주저앉아 있는 내 두 손을 잡고 벌떡 일으켜 세워줄 한 마디, 한 문장도 찾지 못했다.
우울감이란 말은 적절하지 않다. 우울하다는 것은 그래도 빛 속에 있다는 건데, 나는 완전히 캄캄한 방 안에서 혼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소년이 되어 무서워 벌벌 떨고 있다. 오래된 형광등처럼 어두침침하고 깜빡이는 빛조차 나의 내면에는 없는 것만 같다. 절대적인 고독과 절대적인 절망에 가까운 공포에 갇혀 있는 기분이다.
여기서 나갈 수는 있는지. 그것을 떠나서, 꼭 나가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가고 싶은 마음은 있는 것인지, 그 자체도 스스로 분명치가 않다. 교회의 진리든 인류의 사랑이든, 희망에 대해서 나를 설득할 사람이 있는지, 이렇게 캄캄한 영혼의 뜰안까지 침범할 수 있을 만큼 그렇게 눈부시게 빛나는 빛이, 그런 희망의 광원이 이 세계 어딘가에, 어떤 책 몇 페이지에 있을 수는 있는 것인지.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고. 정말 내가 알고 싶은 것인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어둠이 짙을수록 더 밝은 광원을 요구한다. 아이처럼, 엄마처럼 더 밝고 순수하고 원천적인 희망 같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