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티

by jungsin



엄마

전화 거는 중….


지하철.

옆에 앉은 젊은 여자 청년이 스마트폰을 들고 바라본다. 슬쩍 엿보니 전화를 걸고 있다.

화면에 있는 두 글자. 엄마.

전화 거는 중…


빨간 티를 꺼내 입었다. 활기를 살려 외출을 하고 싶을 때 입는 티셔츠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형광빛이 도는 자몽색에 흰색 얇은 스트라이프가 옆으로 그어져 있고, 그 위로는 하얀색 망사 모양 천이 코팅되어있는 반팔이다. zara 할인 매장에서 샀는데, 유럽의 디자인이어서 아무래도 독특한 아름다움과 생기가 있다. 하지만 그만큼 컨디션이 건강하고 좋을 때 소화할 수 있는 옷이기도 하다.


빨간 티를 입고는, 오랜만에 여의도에 갔다. 젊음이 녹아있는 곳. 내가 다니던 동선의 전철을 혼자 조용히 한 번씩 밟아봤다. 교회에 늦게 가면 혼자 앉아 예배를 드리곤 하던 자리, 커피빈 뒤 화장실, 호텔 1층 로비를 관통해 스타벅스에 가기.


넓은 가게에 손님이라곤 나 혼자였다. 그나마 있던 커플 손님은 내가 주문한 미니 샌드위치를 받아 들고 자리에 돌아올 무렵 나갔다. 혼자 앉아 샌드위치를 먹으려니 외로움이 찾아왔다. 연락을 해서 급작스레 친한 부부를 만났다. 오늘은 좀 괜찮아 보이지 않아요? 물었는데 자매가 답한다. 보는 순간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고. 오늘은 내 모습이 그래도 좀 건강하고 괜찮아 보여서 빨간 티를 꺼내 입었는데.


불안은 숨길 수 없는 것일까. 영혼의 핵심은 정직한 것일까.


영혼의 핵심이라는 문제에 계속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다. 나보고 괜찮은지 다들 걱정을 하는데, 사실 나는 그럭저럭 괜찮고, 심지어 그 어느 때보다 더 삶이 깊어져가고 있기도 한 것 같다. 해결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기는 하다. 하지만 자꾸 모두 미루게 된다. 나에게는 그것이 가장 구체적인 현실이어서. 그러니까 영혼의 핵심의 문제에 나는 정말 진지한 관심이 있다. 집, 고향, 안식, 쉼.. 과 깊숙이 맞닿아있는 영혼의 핵심이란 문제에.


대기권을 벗어날 때 우주선이 격렬한 공기의 저항을 받으며 흔들리듯, 나의 불안은 오히려 문제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격렬해지는 진동일지도 모르겠다. 삶의 문제와 외로움, 결핍도 격렬해지고 있지만 그만큼 갈피를 잡아가고 있다고 느낀다.


일단 호흡은 조금씩 고라지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을 만나면 일어나는 긴장이 스트레스가 되기는 하는데, 적막했던 시간과 대비시켜보면 그건 활기를 찾아가는 과정 중에 겪는, 어느 정도는 기분 좋은 긴장일지도 모르겠다.


욕망보다 쉼을 더 사랑하게 되고 있다. 아직 노년과는 거리가 먼 나이에 그렇게 느끼는 것이 흔한 현상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단편적인 양상만 고려하여 우울증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깊이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 우주에는 남미적 열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슬란드적 열기도 있다.


이 기회에 내 문제뿐 아니라 사람들의 문제도 발견하고 있다. 나의 경험의 한계 안에서 하는 조언은 자기중심적인 말로 들릴 뿐 문제의 한복판에 서 있는 사람의 내면에 다가와 울림이 되지는 못한다. 정말 내공이 있는 사역자라면 겨처럼 흩어지는 많은 말 없이도 존재 자체로 희망과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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