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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sin Mar 19. 2023




뜻밖에 잔잔한 설렘을 느꼈다. 글이 삶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무기력에 빠져 있는 나에게는 그 자체로 희망이 되었다.

무언가를 써서 돈을 번 일이라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창작 영역의 글쓰기는 아니지만 아마추어 번역 작업으로 약간 번 적이 있었고, 지인의 부탁으로 간단한 영상 대본을 쓰는 일을 할 뻔한 적이 있었지만 작업이 취소되었었다. 또 돈은 아니었지만, 서평 이벤트 당첨으로 책을 후원받은 적은 여러 번 있었다. 서평은 한 번도 쓴 적이 없다. 읽은 척하고 쓰거나, 기한을 넘겨 아예 안 쓰고 말았다. 사정을 다 쓸 수는 없다. 사정과 사연이 나름대로 있기는 했지만 이유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니까 반성하고 자숙하며 숨어 지내고 있다.


​간접적이지만 글쓰기와 연관해 돈을 벌었던 가장 처음의 경험은 교회와 관련된 일이었다. 언젠가 교회에서 일하면서 주말에 밤새 설교 원고를 써서(물론 읽기도 했다) 사례비를 받은 적이 있었다. 일주일에 네 번을 쓰고 칠십만 원을 받았으니까 원고 한 편당 이십만 원이 좀 안 되는 정도의, 글쓰기 분야에서는 꽤 높은 수입의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일이 너무 힘들어서 세 달 정도 만에 그만두었다.


그만두어야겠다고 결심을  상황과 장소가 지금도 선명히 기억난다.  대형교회의 교육관 화장실 안이었다. 일요일 오후나 저녁쯤이었을 것이다. 그날도 여느 일요일처럼 와이셔츠에 양복 바지를 입고 오전부터 오후까지  개척 교회에서 일정한 사역 임무를 마친 길이었을 것이다. 나는 세면대 앞에  있었다. 그런데 거울에 비친  모습이, 뭐랄까, 너무 물기가 없었다. 그렇게 얼굴과 몸에서 완전히 물기가  사라진  모습을 보는 것이 그때까지 처음이었다(지금은  많은 물기가 사라졌다). 지치고 물과 김이  빠져 일그러진  모습. 중요한 힘이 완전히 사라지고. 어떤 매력도 찾아볼  없는, 그런 내가 너무나 낯설었다. 정말 내가 아니었다.


교회의 일이란 것은 사실 일이기보다 소명에 가깝다. 세 달 만에 그만두는 것은(초중등 학생들과 선생님들 앞에서 고작 열 번 남짓의 설교를 하고) 세상의 일로써도 그렇지만, 교회 관례상으로는 더욱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더욱이 나의 케이스는 당시 그 작은 개척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채용한 젊은 사역자였을 것이다. 교회는 보수적인 곳이어서 아무리 젊은 초임 사역자라도 교회 연역에 히스토리로써 박제되곤 한다. 교회에게나 나에게나 조기 사임을 한다는 게 그렇게 좋은 일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마음의 결심도 고민이 필요했고, 마음의 결정 후에도 실제로 사임하겠다고 입을 떼는 것은 여전히 힘겨운 일이었다.


​내가 세속이든 교회에서든 아무렇지 않게 관례를 무시할 정도로 예의가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의 사람에 가까웠다. 주변인들의 반응이나 조언에 따르면 나는 예의를 너무 지나치게 지키려고 애써서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그런 답답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놀라울 정도로 쉽게, 쾌속으로 결정할 수 있었다. 그만큼 내가 힘겨워 보였다.



세수를 하다가 본 세면대 거울에 비친 내가 문득 낯설게 느껴져서 그날따라 멈춰 서게 됐던 것 같다. 원래 걸리는 동작이 없이 연속적으로 할 일을 하고 화장실을 나서는 편인데. 그때는 가만히 서서 꽤 오랫동안,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불과 몇 달 만에 머리카락의 한 삼분의 일은 사라진 것 같았다. 피부는 힘이 없었고, 낯에서는 거의 어떤 빛도 찾을 수 없었다. 표정은 축 처진 채 굳어 있었다. ​원래 내가 알고 있는 나와 거울 속의 나. 내가 기대하는 내 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 두 개의 내가 충격적일 만큼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거울 속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낯선 남자의 모습이 이미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러다가 더 큰 일들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놀라고 절망적이었지만 너무나 명쾌해서 한편으로는 통쾌하기도 한순간이었다. 아니라는 것. 아니라는 것 말이다. 어디로 가야 하나, 무엇이어야 하나, 그러한 것은 아직 모호했을지라도.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 명쾌했다. 그래서 통쾌했다.


월요일이었던 그다음 날인가, 바로 목사님을 찾아뵈었다. 어설프게 교회 앞에서 페어웰 선물이랍시고 화장품을 사갔었다. 담임 목사님의 책상을 사이에 두고 목사님과 마주 앉아 몸을 베베 꼬면서 어렵게 운을 뗐는데, 다행히 목사님이 내 뜻을 순순히 받아들여 주셨다. 날아갈 듯이 기뻤다. 토요일마다 밤을 새워서 설교문을 짜내는 일을 이제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었다. 내 안에 없는 나를 짜내고, 진액을 짜내며 내가 아닌 나로 매주일 거듭 변모해가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이즈음 탄생이래 가장 ​완벽하게 무질서한 시공간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하지만 가느다란 희망도 공존한다. 달이 태양을 가려도, 태양이 달을 가려도, 먹구름이 가득 끼어도, 완전히 검은 하늘이 되지는 않는다. 한밤중의 깜깜한 하늘에도 어스름한 빛의 기운은 배어 있다. 먹구름 뒤의 블루 스카이. 시간이 지나고 공간이 바뀌어 다시 가슴 벅찬 블루 스카이 앞에 설 날을 기다린다.



혼돈 속에 빠져있다는 것은 아직 희망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만 경쾌한 희망보다 무겁게, 또 간절하게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것을 희망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까 카오스는 아직 완전한 절망은 아니다. 카오스의 시간 동안 끙끙 앓면서, 그리워하고, 조용히 꿈을 꾸는 것이다. 검은색 크레파스에 가려진 총천연색 희망의 꿈, 소년이었고 지금도 소년인 나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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