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참 많은 것을 잃어버린다. 지금은 아이패드를 어디에서 보관중이다. 아이패드를 교회 사람의 차에 두고 내려, 가족오락관 퀴즈 코너(너댓 사람이 폭파장치가 되어있는 박스를 옆사람에게 계속 돌리면서 자기 차례를 면하고 면하다가 어느 순간 펑 하고 터져버리는 게임.)에 나오는 릴레이 시한폭탄처럼 이 부담스럽고 귀찮은 물건을 너가 좀 보관하라며 넘겨주듯, 이제 마침내 내가 함부로 대하곤 하는 한 전도사의 손에 맡겨져 보관중이다.
또한 물건은 아니지만 어쩌면 아이패드만큼 소중한 것일, 하나의 생각을 잃어버렸다. 드디어 갈 때가 다 되어 가는지 무언가 생각을 잃어버리는 일은 이즈음 내게 정말 흔한 일이 되고 있다. 그것은 이 글의 모멘텀이기도 했던 어떤 감상과 생각이었다.
나는 화장실에 앉아 『김영하 여행자 도쿄』라는 책의 224,5,6 페이지 어디쯤을 보다가 불현듯 삶 자체에 대한 의욕이 생기며 나가고 싶다고, 그래야겠다고 느꼈다. 그러니까 책의 어느 지점이 이 글의 발착 지점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모먼트가 어디였는지, 무엇이었는지, 책의 한 부분이 생에 대한 의욕과 어떤 연관성으로 연결된 것인지, 그것들이 다 무엇인지, 도무지 생각이 안 나 한 동안 답답했다.
그러한 일들이 이제는 너무도 많다. 아무리 메모하고 메모하려고 해도, 나는 신선한 생각이라고, 좋은 느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그 생각이 무엇이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생의 느낌, 쓰고 싶었던 글, 누군가에게 보내고 싶었던 메시지. 포착해 놓고 싶었던 것들의 상당한 부분을 아마 나는 앞으로도 손가락 사이로 떨어지는 모래처럼 놓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렸을 때 붙잡아 두고 싶었던 것은 거의 사람이었다. 4학년 9반에서 전학간 아파트 여자애. 엄마가 회사 간 사이 낮 내내 나랑 놀아주셨던 옆집 아줌마. 천하일품이란 델리 주점에서 맥주와 소주를 순서도 없이 연거푸 마시다가, 밖에 나와서 1층 앞에 나란히 쪼그려 앉아서는, 주정처럼 고백해 끝내 사귈 수 있었던 스무살 때의 스무살 여자친구(그러고 보니 다 여자다).
그러다가 조금 더 커서는 물건으로 바뀌곤 했다. 이십 대부터 서른 넘어 어느 시점까지 사람은 차라리 물건보다도 더 흔한 것이 되고 있었다. 언제라도 다시 얻을 수 있을 것 같았고, 또 그렇지 못하더라도 새로운 사람들이 그 자리를 메워주었으므로, 때로는 버거울 정도로 많기도 했으므로, 나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물건은 사람보다 비쌌고, 귀했고, 잃어버리면 끝이었다. 지하철 선반 위에 올려 두었다가 사라진 노트북 가방 안의 노트북과 무거운 외장하드(들- 벽돌같은 외장하드들이 두서너 개는 함께 들어있었다.). 아빠가 힘들게 구해서 고쳐서 타게 해 준 자전거(들- 역시 수없이 많았다). 언제 어떻게 안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게 보이지 않는 텀블러와, 예쁜 커피 유리컵과, 머그컵들. 그리고 오늘날의 아이패드까지.
그리고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것은 이제 점점 내 밖의 것들에서 내 안의 것들, 내가 살고 경험하고 있는 것들로 옮겨간다. 점점 내 밖의 것들보다 내 안의 것들을 담아, 이렇게 그려두고 싶은 마음이 든다. 사람이라면 내 안에 담을 수 있는, 담고 싶은 사람들만을 담아두고는, 만나고 싶을 때마다 소중히 만나 꼭꼭 눌러 담고 싶다. 그래야 떠나갈 때, 떠나보낼 때 고요해질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가만히 나인, 나로서 고요히 기억시키고, 그를 영원 속에서 매만지고 차분히 추억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의 안팎에서 일어나는 '분실'의 모든 것들은 공기와 같아 다 주워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아득히 폭파해버리는 행성처럼 나의 모든 것들을 잃어버리고 다음의 삶의 세계로 넘어가야 할 지도 모른다.
유럽 여행 중에서 특히 너무나 신선하다못해 감격적이었던 알프스에서의 한 순간의 공기를 작은 밀폐 봉지 안에 담아 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전체의 여행에서 인상적인 모든 순간들의 공기를 다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모든 것들은, 이제 내면에 담는 것이 어쩌면 최선일지도 모른다. 그저 느끼고, 그 순간의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고 마는 것이 생을 만끽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정말 소중한 것은, 어쩌면 돈보다 훨씬 더 귀중한 것은 시간, 지금 이 순간,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흔한 금언을 떠올린다.
이하는 아까 화장실에서 속기한 메모다. (물론 오타 등을 약간 수정하고 얼마의 문장을 덧붙였다. 떠올랐던 모든 생각을 밀봉하지 못해 화장실 공기인지 알프스 공기인지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질이 아닌 양으로만 보면 떠올랐던 생각들의 80 퍼센트 이상은 거의 그대로 담아 살린 메모 조각이다.)
‘나가야겠다’ 화장실에 앉아 김영하의 도쿄 여행자란 책을 보다가 문득 혼잣말을 했다. 마침내 나가고 싶어졌다. 나가야 한다는, 나가야겠다는 생각은 계속 하고 있었지만, 내 안의 나는 칭얼거리며 나가고 싶지 않아 하고 있었는데. 문득 나가고 싶어진 것이다.
이야기란, 참 얼마나 설레는 어떤 것인가. 이토록 지치고 두려워하는 나에게도 힘을 주다니. 그것은 정말 사람의 마음을 자극하며, 힘을 주고 설레게 하기도 하는 무엇이다. 힘이다. 책을 읽다가 문득, 나는 그걸 힘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설교문이 온다와 설교자가 온다. 책이 온다와 작가가 온다. 목사의 말이 온다와 목사가 온다. - 중에서 더 설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언제나 후자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것이기만 하다면 사람과 존재를 만나는 것보다 더 설레고 신나는 일이 어떻게 또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니까 나가야겠다. 똥은 그만 싸고,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