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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심연

by jungs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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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나 지금이나 불의한 사람들은 티가 난다. 미련한 사람도 그렇다. 부정직한 사람도 그렇다. 그런데 악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너무도 교묘하여 그 실체가 눈에 잘 보이지 않고 안개처럼 묘연하다.


대통령도 국방부장관도 초라하고 순한 양처럼 보였다. 정말이지 옆집 중국집 아저씨 같기도 하고 센스 없는 부장님 같기도 했다. 하지만 권능을 손에 움켜쥐었을 때는 무시무시한 악이 될 수 있었다. 스스로 악이 될뿐 아니라 그것의 힘을 아주 멀리까지 보낼 수 있었다.


법정에 앉은 그들은 영락없이 평범한 아저씨였다. 희끗희끗한 머리칼. 한껏 튀어나온 배. 하지만 그들의 한마디 말은 특수 훈련을 받은 군인들이 무장하고 국민들에게(국민을 대의하는 곳으로) 달려가게 할 수 있었다. 그 힘은 마침내 흥분한 특수부대 군인이 젊은 여성 정당 대변인에게 화(대관절 그것이 어떤 화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를 내며 총부리를 겨누는 시늉까지 하게끔 할 수 있었다.


전두환도 그랬을까. 그도 연희동에서 노년기를 보낼 때는 가여운 동네 할아버지처럼 보였는데. 그도 젊은 시절 힘을 갖고 있을 때는 광주로 헬기를 보내고, 기관총을 쏘게 했을까. 대학생과 시민군이 아스팔트에 머리를 쳐박고 피를 토하며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게 했을까. 누군가의 피 같은 아들과 딸들을 말 한마디에, 전화 한 통에 가슴에 묻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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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는 재판정의 아이히만을 보며 ‘악의 평범성’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회사원처럼 성실하고 침착해 보였다. 김용현이나 이진우나 문상호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이 국민을 위해 헌신하다가 작은 실수를 한 평범한 공무원처럼 보이는 것처럼. 얼핏얼핏 그저 보수적인 정치 사상을 가진 고위급 공무원이나 신념 있는 군인인 듯 보이는 것처럼.


악은 불의하거나 미련하거나 정직하지 못해서 선택하는 것일까. 악랄해서 불의한 결의를 감행하는 걸까, 악해서 미련함이 드러나는 걸까, 악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어쩌면 악은 그것들과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불의함과 부정직함, 미련함은 악이라는 얼굴이 가지는 다양한 표정들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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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한보사태 때나 80년대 오공 시절의 증인들은 다 선명하게 나빴다. 이따금 처연할 정도로 순박해 보였다. 20세기의 증인들이 그렇지 않았던 것처럼 21세기에 재판정에 선 이들도 호랑이 얼굴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평범해 보이기는 매한가지인데 금세기의 증인들에게서는 어딘지 비릿함이 느껴졌다.


21세기 법정과 20세기 청문회의 다른 점은 비릿함에 있었다. 피에 기름이 낀 고지혈증의 감각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극우 유튜브를 많이 봐서일까. 고도화된 정보 지식과 매너와 현란한 말들로, 보는 이로 하여금 악의 정맥을 짚지 못하게 했다. 21세기의 악은 더 복잡하고 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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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퍽 온순하여 처벌이나 처단 같은 말에는 큰 이물감을 느낀다. 저들에게 무기징역을! 법정 최고 형벌을! 평범해 보이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분노에 찬 시민들이 외치는 광장의 흔한 구호도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대신 나는 저들과 동질감을 느낀다. 불의, 부정직, 미련, 나를 돌아볼 줄 모름. 그것들은 내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들의 비릿함은 나의 비릿함일 것이다. 나는 자신이 그들처럼 악하거나, 최소한 그렇게 악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그렇게 고백하지 않는다면 나는 자신의 평소 신념과 욕심만큼 스스로 정직하지는 못한 사람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 추상적이고 종교적인 어거스틴의 원죄론적 아이디어가 아니라 실제적이고 실존적인 눈으로 나는 운이 좋아서 죄를 덜 지을 수 있었고 좀 더 안전한 삶을 누리게 된 사람이라고, 진지한 사유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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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거리에서 자신을 들여다보면서도 거의 변화는 없는, 이토록 지루한 자기 성찰을 넘어 거리를 두고 좀 차갑게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다만 오늘 대한민국의 내란, 소요 재판과 나치 전범 재판은 나로 하여금 악의 심연과 원근을 생각하게 한다. 다음은 아이히만에 대한 1차 판결문의 일부 내용이다(위키). <1961년 12월 11일, 재판장은 판결문을 낭독했다. ‘그가 자신의 ’손‘으로 사람을 직접 죽이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차원에서 그리고 다양한 행동 방식으로 참여한 범죄의 경우, 실제로 사람을 직접 죽인 행동을 했는가 하지 않았는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와 반대로, 이 경우에 일반적으로 살상도구를 자신의 손으로 사용한 사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책임의 정도는 증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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