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완전하지는 않지만 긍정적인 방향

by jungsin



글 한번 쓰기가 참 어렵다. 타자기 모양의 키보드와 아이패드에 노트북. 각종 충전선과 간단한 간식들과 커피를 챙겨 레인코트를 입고 나왔다. 잔뜩 메고 이고, 추적추적한 날씨를 뚫고 나온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이렇게 글쓰기의 시공간에 도달해, 마침내 안착했다. 달콤하다. 글을 쓰기 시작하니 바로 달달한 감각이 온 몸과 영혼에 퍼진다.

타다타닥- 특히 타자기의 느낌을 주는 이 키보드의 감각.


옥상의 아담한 방에 갇혀 한번 나오기가 어려운 무기력이 계속 되고 있었다. 엔트로피 법칙을 거슬러 질서의 세계 속으로 들어온, 이런 느낌이 달콤하다. 무질서로 내달려가는 나의 세계의 한구석을 붙들어 다시 질서의 세계 속으로 데려온 작은 시공간이 안식의 감각을 준다.



보통 토요일에서 주일에 이르는 시간은 꼬박 밤을 새는 편이다. 밤늦게까지, 심하게는 새벽녘까지 말똥말똥한 정신이 유지된다. 짧게는 30시간에서 길게는 36시간 정도를 각성의 상태로 보내는 것이다.그리고 월요일은 기절한다. 그리고나서 얼른 자신을 잘 붙들어야 하는데. 대개 그렇게 하지 못했다. 가속 액셀을 무리해서 밟다가 퍼진 자동차처럼 되어, 무기력한 상태가 목요일, 금요일 정도까지 이어지곤 했다. 이완이 연속되면 쉼이 아니라 고통이다. 건강한 생기는 긴장과 이완, 일과 안식,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변증법적 왕복 구간 어딘가에 있다. 그러나 최악의 무기력증에 빠진 나는 이완, 이완, 이완, 이완, 이완, 이완, 긴장의 파멸적 리듬을 겨우 유지할 수 있을 뿐이었다.

무력감의 악령은 내가 가진 모든것을 해체시키고, 절벽을 붙들고 있는 마지막 손가락도 떼내어 마침내 모든 희망을 말살시키려는 듯한 막강한 힘을 가진 것 같았다. 두려웠다. 그 악마에게 영영 집어 삼켜지지 않으려면 안간 힘을 쓰며 나름의 씨름을 해야 했다. 그리고 오늘, 이 질서의 유니버스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또 다시 모종의 스트레스들에 부딛히며 지쳐버렸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기절해 버리는 개복치처럼, 절연 장치가 고장난 전자제품처럼, 나는 이내 무기력해졌으며, 나의 몸 한구석에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불쾌한 전류처럼 흐르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실로 오랜만에 심야 영화 한 편과 맥주 한 캔을 나에게 선물로 줄까 한다. ?

딱 그 정도의 이완이 달콤하다.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나. 그런 말들, 다 조용한 허무(쾌락)주의 같아서 좋아하는 말들은 아닌데(나에게도 약간의 허무주의적인 방탕함의 감각이 있음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나도 어쩌면 허무주의적 선상에서일까. 나름대로 터득해 가고 있는 이완의 적정선이 생기고 있다. 아무튼 틀림없는 것은 긴장에도 이완의 함량이 필요하고 이완에도 긴장의 함량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진보라색 니트를 입은 젊은 여성이 공작새처럼 페미닌하고 요염한 티를 내며 대각선 맞은편에 짐을 풀고 있지만 바라보지 않는게 좋겠다(실패)(대실패). 그리고 이 글은 이 정도 길이가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