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안 해본 게 참 많다. 그중에 하나가 영화관 가기였고 더 오랫동안 안 해본 게 혼자 영화관 가기였다. 더 더 오랫동안 안 해본 것은 혼자 동네 심야 극장에 가서 청춘 멜로를 보는 일이었다.
오래전 동네에 있는 백화점 정문의 왼쪽 끝 모퉁이에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문이 하나 있었다. 11층 시네마로 올라가는 문이었다.
백화점은 한참 전에 문을 닫아버렸고, 이제 세상의 아무 문도 열려 있지 않을 것 같은 막막한 심야에도 백화점 한구석에서만큼은 언제나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오늘처럼 추운 겨울밤 같은 날. 거짓말처럼 안에서 따듯한 색의 빛이 빼꼼히 비추이는 문을 밀고 들어가면 백화점 실내의 온기가 사나운 마음을 부드럽게 달래곤 했다. 신비로운 비밀 미로처럼 꼬부라진 통로를 따라 걸어 들어가면 말짱하던 사람도 뒤숭숭해지게 만드는 금빛 초고속 엘리베이터 두 기가 대리석 벽 안쪽으로 위엄 있게 박혀 있었다.
고개를 돌리고, 두세 쌍의 연인들과 함께 어색한 공기를 몇 초만 참고 올라가면 금세 꼭대기 층에 닿았다. 문이 열리고, 몇 걸음 앞으로 가다 왼쪽 모퉁이로 돌아 걸어나가면 눈이 휘둥그레지는, 높은 천장의 메인 홀이 나왔다.
극장도 백화점도 내 것은 아니었지만. 나의 동네 한편에는 온 세상이 까만 밤에도 언제나 따듯한 불을 밝히고 있는, 이토록 환하고 멋진 공간이 있다는 선명한 사실. 이상하게도 그 감각이 마음 한구석에 무척 또렷한 위로와 희망이 되었다.
까만 밤. 세월도 마음도 새까만 밤. 왜인지 자꾸 그 공간이 생각나 마음을 간지럽혔다.
L 시네마는 그대로였다.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놀라우리만치 그대로였다. L의 그러한 감각들은 묘하게도 나의 동심과 개기일식되어 느껴졌다. 청춘물은 그런 맥락에서 더할 나위 없는 장르였다. 나는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소녀가 누구였는지 봐야만 했다.
영화는 십 분 전에 시작했다. 3관의 입구 통로에 멈춰 서서 표를 꺼내 좌석을 확인했다. 대사 소리가 넓은 극장 안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스크린 빛이 걸어 올라가는 나의 등을 비추는 듯해 더 움추러들었다. 새까만 계단 아래로 빛나는 알파벳 표시 등을 보며 허리를 한껏 숙이고 H06으로 찾아가 앉았다.
어차피 영화관에는 J열쯤의 앳된 커플 두 쌍 정도와, 쉴 새 없이 팝콘을 집어먹으며 아무것도 아닌 장면에도 폭소를 터트리는 I열의 여중생들과, 절정으로 흑화한 H열의 나뿐이었다.
여중생들이 볼까봐 조마조마해하며 뜯은 편의점 팝콘은 옆으로 북 찢어지고, 바닥에 내려놓은 가죽 숄더백에서 나뒹굴며 엎질러진 아아는 구두 발바닥에 축축하게 밟히고, 골은 배에 팝콘과 차디찬 아아로 얼룩진 화장실의 감각이 나를 괴롭혀도. 나는 다 잃어버린 듯한,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소녀와, 그 시절의 나를 찾고 싶었다. 평점도 설익은 연기도 미스캐스팅도 다 상관없었다.
무엇을 봤는지는 기억이 안 나고, 내가 아주 오랜만에 혼자 영화관에 다녀왔다는 인식이나, 극장 안의 검음이나, 고등학교 시절 학생식당에서 한 번쯤 본 듯한 여주인공의 앳되고 투명한 피부나, 해맑은 표정. 배우들의 맑음과 밝음 같은 것이 남았다. 폴더폰의 기계식 문자 감성, 싸이월드 사진첩. 그것들을 경험한 적도 없었을 애젊은 배우들의 풋풋한 연기톤 같은 것들이 잔상에 엷게 남기도 했지만 오래갈 만한 여운은 아닌 것 같았다.
가장 진하게 남은 것은 영화가 끝나고 화장실 거울 앞에서 한참을 서서 자기 외모를 단장하고 살피던 스물몇의 남자애다. 염색 머리에 귀걸이를 한 남자애는 외모 단장에 여념이 없었다. 머리칼 몇 가닥을 집어서 세우거나 넘기기도 하고, 아직 매서운 겨울 추위에 걸쳐 입은 얇은 재킷을 괜히 들췄다 푹 덮고, 툭툭 슥슥 옷매무새나 머리 스타일을 한참 동안 꾸미고 있다가 내가 다가갈 때에야 억지로 자리를 떠났다. 나 같았다. 어떤 시절과 시간의 나 같았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에 민감하고, 단단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던. 견고한 자기의 희망의 세계에 조금만 흠집이 나도 견딜 수 없이 예민하게 느끼던, 스물 무렵 거울 앞의 나 같았다. 뭉클하고 이상했다.
나의 소년은 눈부시고 뜨거운 햇볕과 땀, 운동장을 좋아했는데. 이제 까만 밤의 아늑함이 좋다. 그렇게 철저히 새까맣거나 아니면 정반대로 아예 눈부시게 화려한 금빛 같은 것이 안식의 감각을 준다. 심야 영화는 그 두 가지의 감각을 충족시켜 준다. 파란 하늘빛이나 해맑게 밝은 원색, 또는 벚꽃 빛깔 같은 것은 당황스럽고, 왜인지 어지럽고 현기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