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게 머릿결을 빗어넘기고 기름칠을 한 여인. 꼿꼿한 자세로 행인들에게 무언가를 말하려 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너무 선한 기운이 있으셔서요-일지. 차비가 없어 삼천 원만 주실 수 있나요-일지 알 수 없었다. 그녀를 마주한 사람들이 보이는 태도의 공통점은 싸늘함이었다. 그녀가 말을 거는 사람들마다 다 싸늘하게 돌아섰다.
지나가며 들리는 그녀의 말투는 흔히 말하듯 ‘영혼 없는’ 것이었다. 머리속에 있는 대사를 읽어나가듯, 사랑합니다 고객님 말하듯, 초점 없는 눈동자로 무언가를 열심히 말했다. 좀비처럼 말이다. 그녀를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온전한 사람의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감히 생각했다.
이미 충분히 껍데기의 세계에 지쳐 있었다. 내 안의 현기증 나는 거짓에, 에이아이와 자동응답 고객센터에. 블로그 정보 글에, 고객 응대 메뉴얼에. 수많은 카톡 공지와 쇼츠와 앱테크에. 사방에서 죄여 오는 표피적이고 플라스틱한 세계의 우울감과 두려움에. 나지막이 가늘고 얕은 숨을 쉬었다. 늘 깊은 숨이 그리웠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나는 그녀를 보며 나의 글쓰기를 떠올렸다. 글쓰기는 부침이 심한 일상의 삶 내내 얕은 한숨만 내쉬곤 하다 마침내 들이마시는 깊은 숨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쓴 글을 사람들이 안 읽는다면, 그건 내가 깊은 숨을 몰아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글을 잘못 쓴 게 아니라 아예 쓰지 않은 것이라고 말이다.
이내 생각에 잠겼다. 올가 토카르추크의 이야기처럼 한 자리에 앉아 고집스럽고 고지식하게 잃어버린 영혼을 찾듯이. 화분이 수풀림이 되고 수염이 자라 땅바닥에 닿을 때까지. 나의 영혼의 아이가 나를 따라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 아무 타협도 없이 자기 안의 비밀스러운 우물에 고요히 고인 이야기만 퍼내야 한다는. 그토록 결기있게 말하고, 수많은 선택을 하고, 꾹꾹 눌러 써야 한다는 생각 같은 것이었다.
곱게 빗어넘긴 검은 머리. 에스컬레이터에서 지나쳐 걸어올라가며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흘깃 본 비단 머리결이 잊히지 않았다. 기름칠을 하고 꼬옥 옷핀을 꽂은 머리칼과, 그녀가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모습은 비대칭적이었다. 정성껏 머리를 손질하고 깨끗이 옷을 입는 만큼 자기 영혼을 돌아보고 사람들을 진정하게 대할 수 있었다면, 그녀는 지금처럼 외롭지 않았을 것이다.
재주로 쓰지 않고. 길어올리듯, 소금을 말리듯 그렇게 써야 한다.